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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수연 Jul 30. 2016

하율이의 귓속말

적극적인 간판 노출. 사장님 스릉흡니다...



사랑받는 여자의 이 의기양양함이라니. 우리 하율이, 여잘세 여자야. 하율이가 머리 깡둥 올려묶은 초등학교 5학년 쯤 됐을 때, 아니면 중학교 교복을 입은 단발머리 소녀가 됐을 때, 내게 “엄마, 우리 반에 어떤 남자애가 있는데, 나한테 자꾸 샤프심을 빌려달라고 하는거야~”라고 재잘거리는 상상을 했다. 그런 날이 오면, 나는 얼마나 재미있을까. 얼마나 벅찰까. 


애덤 그랜트의 책 <오리지널스>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래드클리프 칼리지(어디 있는 학교인지는 모르겠지만 문맥상 유명한 명문 대학인가보다.)를 졸업하고 30대가 된 여성 수백 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한 결과, 이들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들도록 헌신하는 데 부모의 영향은 1퍼센트가 채 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 반해 정신적 스승(롤모델)은 14퍼센트 정도 기여했단다. 

“부모는 자녀들에게 분명한 가치관을 형성하도록 장려함으로써, 공교롭게도 부모 자신의 영향력을 제한하는 효과를 야기한다. 부모는 자녀의 독창성을 북돋워줄 수 있지만, 자녀는 어느 시점에 다다르면 자신이 선택한 분야에서 자신만의 정신적 스승으로 삼을 수 있는 인물을 스스로 찾아내야 한다. ....(중략).. 자녀들의 독창성을 길러주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각기 다른 여러 명의 롤모델을 자녀들에게 소개해줌으로써 자녀들이 목표를 높이 설정하도록 해 주는 방법이다”

 -애덤 그랜트, <오리지널스> 288p


‘부모의 영향력은 1퍼센트 미만’이라는 대목에서 나는 환호했다. 어느 시점이 되면 하율이에게 ‘가르침을 주는 부모’는 필요 없어진다는 말이 아닌가. 내 경우를 생각해 봐도, 10대에 들어서서는 이미 엄마의 말이 ‘잔소리’였던 것 같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빨리 그 날이 왔으면 좋겠다. 내가 하율이와 동등한 입장에서 의견을 나눌 수 있는 날.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내 자식의 삶이 달라진다’는 무거운 책임을 비로소 벗는 날. 내가 내 인생 앞에 선 개인일 뿐이듯, 너 역시 니 삶을 짊어지는 단독자라고 말할 수 있는 날. “내 역할은 여기까지야. 이제부터는 니가 스스로 찾아가야 해. 육아서적이 아니라 경영학 책에서 과학적으로 연구한 결과야”라고 의기양양하게 말할테다. 롤모델 삼을만한 책들이나 적선하듯 툭툭 던져줘야지. 

그리고 같이 맥주나 마시러 다니고 싶다. 적당히 시끄러운 술집에서 하율이의 찌질한 남자친구들 이야기에 박장대소하고 싶다. 자기 예뻐하는 사람 귀신같이 알아내는 그 눈치로, 나중에 연애 잘 하렴. 하율이의 귓속말을 들으며 힘껏 응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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