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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수연 Aug 26. 2016

영화 <어바웃 타임>을 보는 세가지 관점

혹시 영화 <어바웃 타임>을 보셨는지. 과거로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부자(父子)의 인생 이야기. 최근 배철수 아저씨와 이 영화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MBC 라디오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배철수 아저씨의 호칭은 '철수 아저씨' 혹은 '배 선배님'이다. 나는 평소대로 그냥 '아저씨'라고 부르겠다.) 아저씨는 "이 영화는 보는 사람에 따라 여러 관점으로 해석되더라"며 재미있어 하셨다. 본인처럼 연세 지긋한 분들에게 <어바웃 타임>은 말할 필요도 없이 시간에 관한 영화인데, 젊은 사람들에게는 이게 '로맨틱 코미디'로도 보이는 모양이라고 말이다.     


스토리도 재미있고 OST도 좋고 울림을 주는 대사도 많은 영화여서, <어바웃 타임>을 좋아하는 사람이 주변에 꽤 많다. 이 영화가 개봉한 직후에 가수 정지찬 씨와도 한참 얘기를 나눴던 기억이 난다. 두 아이의 아빠인 정지찬 씨는 주인공 아버지의 모습이 인상 깊었다고 했다. 이 아버지는 나중에 폐암에 걸려 죽게 되는데, 본인이 죽는 날짜를 알고 나서는 과거로 돌아가 하는 일이, 직장에서 은퇴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내와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낸다. 

정지찬 씨가 이 이야기를 했을 때 나는 ‘그런 장면도 있었나?’ 했다. 최근에 이 글을 쓰기 위해 다시 영화를 보았더니, 아버지의 짤막한 대사로 상황이 설명되고 있었다. “50살 나이에 은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들이랑 더 자주 탁구치길 원하는 암 걸린 시간여행자 뿐이야.” 지찬씨는 이 장면이 참 좋았다며, 언젠가는 죽을 우리 모두에게 가장 중요한 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최대한 많은 시간을 보내려 노력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영화 초반, 주인공 팀이 자신의 가족을 소개하는 내레이션에도 아버지에 대한 묘사가 나온다. “아빤 좀 더 평범하셨다. 항상 시간이 남아도는 분이셨다. 50세 생신 때 대학에서 학생들 가르치는 걸 그만두면서 이젠 얘기도 하고 나한테 탁구도 져 주시면서 여생을 여유롭게 사시게 됐다” 팀의 아버지는 시간여행의 능력이 있다. 그러니까 이 ‘여유로운 삶’은, 그가 자신의 죽음을 알고 과거로 돌아가 다시 산 버전이다. 첫 번째로 살았던 삶은 어땠을까. 영화에 나오지는 않지만, 아마도 나나 다른 평범한 사람들처럼 일할 수 있는 나이의 끝까지 일을 하지 않았을까. 50살 나이에 은퇴할 수 있는 사람은 암 걸린 시간여행자 뿐이라는 말, 순식간에 지나가는 대사지만 오래도록 머릿속에 남는다.     


내 남편은 '아기를 낳고 나서 과거로 갔다오면 현재의 아기가 바뀌어 있다'는 영화 속 설정을 매우 재미있어했다. 과거를 바꾸면 현재도 변하는데, 아기를 낳은 후 시간여행을 한 경우 아이 역시 다른 아이가 되는 것이다. “정확한 정자랑 정확한 순간이 이 아이를 만들어낸 거니까 조금이라도 다르게 하면 다른 아이가 생기는 거지”라고 팀의 아버지는 설명한다. 

팀은 딸의 첫 번째 생일날 여동생 킷캣을 위해 먼 과거로 다녀오는데, 와서 보니 자신의 아기가 전혀 다른 모습인 걸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아이를 낳아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 이 장면을 이해 못 하는 경우도 있었다. 어차피 ‘내 아이’인 건 똑같지 않으냐는 것이다. 논리적으로는 그 말이 맞을지 몰라도, 아이를 낳아본 사람들은 안다. 이 아이는 이 아이고, 저 아이는 저 아이다. 하루만 같이 있다 해도 아이와의 추억이 쌓이거늘, 하물며 1년을 키운 아이가 바뀌어 있다면 그건 결코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어쩌면 '대체'라는 건 사람에게 쓸 수 있는 단어가 아닐지도 모른다.

출산 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규칙을 알고 나서 팀은 신중해진다. 첫 아이를 낳고 나서는 첫 아이 태어난 날까지만, 둘째를 낳고 나서는 둘째가 태어난 날까지만 돌아가는 것이다. 문제는 셋째가 태어나는 장면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도 이따금 과거로 돌아가 아버지를 만나곤 했었는데, 셋째가 태어나게 되니 이제 더이상 아버지가 살아계실 적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됐다. 아기가 태어나기 직전, 팀이 마지막으로 과거의 아버지를 만나는 장면, 아버지 앞에서 눈물을 줄줄 흘리며 말한다. "떨이로 얻은 시간의 마지막이에요. 이제 곧 셋째가 태어나거든요". 

아이를 낳는 건 많은 제약을 동반한다. 남편은 말했다. "이 영화의 주제는, 아이를 낳고 나면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거야" 시간여행의 의미가 아니더라도 참 곱씹을만한 설정이다. 아이를 낳고 나서는, 여러 가지 면에서, 낳기 전으로 결코 돌아갈 수 없다.     


나에게 가장 인상깊은 대사는 이거였다. "아이를 낳으면, 형편이 되든 안 되든 더 큰 집으로 옮겨야 한다" 영화관에서 봤을 때는 분명 이런 자막이었는데, DVD로 보니 번역이 달라져 있었다. “형편도 안 되는 집으로 이사해야 하는 순간이 어찌나 빨리 다가오는지 놀랄 정도다”. 원래의 번역이 훨씬 와 닿는 표현인 것 같다.

   

여주인공 메리와 연인이 되기 위해 여러 번 과거를 오갔던 팀은 아이를 낳고 나서 말한다. “갑자기 시간여행이 불필요하게 느껴졌다. 인생의 한 순간 한 순간이 모두 너무나 즐거웠기에.” <어바웃 타임>을 누군가는 시간에 관한 영화로, 누구는 사랑에 대한 영화로 보지만, 내게 이 영화는 육아에 관한 이야기이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에 관한 잠언이 수도 없이 등장한다. 영화의 마지막 대사는 그대로 육아서의 한 구절이다. “인생은 모두가 함께 하는 여행이다. 매일매일 사는 동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최선을 다해 이 멋진 여행을 만끽하는 것이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하루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즐기는 것이다. 설사 그게 과거로 돌아가 두 번째로 사는 삶이라 해도, 더 잘 즐기는 것 이상의 방법은 없다.    


둘째를 키우는 요즘, 첫 아이 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라 마치 시간여행을 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어젯밤만 해도 8개월 하린이 때문에 새벽 내내 잠을 설쳤다. 4년 전 하율이를 키울 때로 시간을 되돌린 것만 같다. 며칠 전에는 하율이가 인형놀이를 하면서 그러더라. “에효~ 언제 키우나~?” 내가 하린이를 보며 가끔 하는 말인데, 아마 하율이 앞에서도 말한 적이 있었던 모양이다. 영화에서 팀의 아버지는 행복을 위한 공식으로 ‘똑같은 하루를 다시 사는 것’에 대해 가르쳐 준다. 처음엔 긴장과 걱정 때문에 볼 수 없던 세상의 아름다움을 두 번째 살면서는 느낄 수 있다고 말이다. 흐음. 팀 아버님, 두 번째 아이를 키우고 있지만 아이의 아름다움보다는 저의 퀭한 눈이 먼저 보이네요. 그래도 한번 노력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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