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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수연 Sep 07. 2016

우리 부부 이야기 (1)

(복직해서 회사를 다니려니 아무래도 글 쓰기가 쉽지 않네요.

'육아'에서 '가정 생활'로 주제를 확대해야겠습니다 ㅎㅎㅎ )


나와 남편은 거의 모든 면에서 다르다.

나는 몽상가이고 그는 지독한 현실주의자이다.

내가 주로 읽는 책은 소설이나 에세이인데, 그가 좋아하는 책은 실용서나 과학 서적이다.

최근에 남편이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은 엑셀 프로그램 활용서였다. 내가 최근에 산 책은 <인생학교-일에서 충만함을 찾는 법>이었는데, 내가 너무 감명 깊게 읽은 나머지 남편에게 그 내용에 대해 열변을 토하자 그는 '아니 세상에 그런 쓸모없는 책이!'라는 표정을 미처 감추지 못해 나에게 타박을 받았다.

그는 하루 종일 숫자와 씨름해야 하는 금융회사에서 일하고, 나는 내 월급도 제대로 계산 못 하는 숫자치이다.    

연애시절, 내가 MBC 입사시험에 합격하고 나서 그가 축하한다며 했던 말은 이거였다.

 "나는 니가 떨어질 줄 알고, 우리는 외벌이 부부가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처구니없지만 나는 이 말에 감동했었다. 말도 안 되는 경쟁률의 입사시험에 대책 없이 도전하는 나를 보며, 그는 실패할거라고 생각하면서도 말리거나 조언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혼자 벌어서 생계 꾸려야 겠군’ 했을 뿐이다. 이게 뭐랄까, 현실주의자의 로맨틱함으로 느껴졌다고나 할까. (이제 와 생각하니 그저 내가 미쳤던 건지도...)    


그는 모든 물건을 사용한 그 자리에 두는 스타일이고, 나는 뭐든 제자리에 정리하는 게 몸에 배 있다. 결혼 초, 내가 정리해 둔 거실 서랍을 보고 남편이 "군대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해야 해?"라고 한 적도 있다. 양말은 뒤집어서 세탁바구니에 넣어 두라고 잔소리를 했을 때 그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그냥 빨고, 나중에 내가 뒤집어서 신으면 안 돼?”라고 물었다. 


지난 주말 나들이에서 돌아와 그가 현관 앞에 던져둔 카메라가방이 오늘까지 그 자리에 있다. 그는 아마 매일 출퇴근할 때 그 앞에서 신발을 신으면서도 그 가방이 거기에 있다는 걸 인식도 못 할 것이다. 결혼 초였다면 아마 한바탕 잔소리를 해댔겠지만 오늘은 며칠째 저 자리에 있는 가방이 좀 재미있다.


내가 정리 좀 하라고 할 때마다 남편은 억울하다는 듯이 이렇게 항변한다.

 "어질러놓은 거 아니야. 그냥 바닥에 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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