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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수연 Sep 25. 2016

첫 섭외의 기억

그 때 나는 입사 3년차였다. <김미화의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 이라는 프로그램의 조연출로 발령을 받았고, <문화야 놀자>라는 주1회 방송되는 프로그램의 연출을 같이 하게 되었다. 그 때의 나는 지금보단 생기발랄했다. 내가 라디오PD가 되었다는 사실에 여전히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상태였고, 일주일에 적어도 3일 이상은 취하도록 술을 마셨으며, 마시지 않은 날도 취한 듯이 살았다. 기운이 뻗쳤다. <문화야 놀자>의 진행자를 교체하기로 마음먹은 건 어쩌면 내가 너무 기운이 뻗쳤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왜 진행자를 바꿔야 하는지, 내가 생각하는 진행자 후보는 누구인지, 장문의 이메일을 담당 부장에게 보냈다. 그 때의 나는 그렇게 시키지도 않은 일을 곧잘 했다. 1순위는 영화평론가 이동진이었다. 섭외해 보라는 허락이 떨어졌다.


대학 시절부터 이동진 평론가의 팬이었다. 그의 글이 참 좋았다. 글을 통해 내가 상상했던 그의 이미지는 ‘각혈하는 일제시대 지식인’이었다. 예민하고 우울할 것 같았다. 비쩍 마른 남자일 거라고 생각했다. 어릴 때부터 내 이상형은 지적이고 예민한 마른 남자였다. 한 번도 그런 남자와 연애를 해 본 적은 없지만.

빈 스튜디오로 들어가 문을 닫고 전화를 걸었다. 떨렸다. 그는 처음에 게스트 섭외 전화인 줄 알고 거절하려 했다. 진행자 제안이라고 다시 설명하자 단정한 말투로 “그 이야기는 제게 무척 흥미롭게 들리네요”라고 말했다. 그 대답은 내게 무척 애매하게 들렸다.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의 작업실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인사동에 있는 그의 작업실에 가기로 한 날 아침, 신중하게 옷과 신발을 골랐다. 너무 어리게 보이면 안 될 텐데. 호피무늬 니트 상의와 검은 치마를 입고, 하이힐을 신었다. 팬이었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기로 했다.


6개월 동안 <이동진의 문화야 놀자>를 연출하면서, 그와 조금은 편하게 대화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평론가라는 직업 때문인지 그가 평소에도 무척 방어적인 화법을 구사한다는 걸 눈치챘고, “그 이야기는 제게 무척 흥미롭게 들리네요”라는 말이 그로서는 사실 굉장한 긍정 표현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노래방에서 2NE1의 노래를 부르는 그를 보며 나는 각혈하는 지식인 어디 갔냐고 절규했고, 그는 호피무늬 옷에 하이힐을 신었던 내 모습을 놀려댔다. 내가 처음 연출을 맡았던 프로그램이었고, 내가 처음 섭외했던 DJ였다. 그게 내가 오랫동안 팬심으로 바라보던 사람이라니, 다시 생각해도 참 복이다.


이동진 평론가는 여전히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인생 전체는 되는대로’ (이동진의 블로그 <언제나 영화처럼> 대문 글) 바쁘게 살고 있는 듯하다. 팟캐스트나 방송, 글을 통해 그를 마주칠 때, 문득 2010년의 내가 떠오른다. 선망하고, 설레고, 긴장하고, 흥분하던, 스물 몇 살의 나. 

그 뻗치던 기운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요즘은 아침에 일어나기도 힘들다.



(다음에 올릴 글을 위한 '사전설명'격의 글입니다. 방송국에서는 보통 '니주 깐다'고 표현하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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