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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수연 Oct 27. 2016

하율이는 왜 하율이가 되었나

이름 짓기의 어려움

하율이를 낳고 산후조리원에 머물 때였다. 식당에서 산모들이 함께 모여 식사를 하는 스타일의 조리원이어서 '동료 산모'들과 자연스럽게 친해지게 됐다. '자연분만이에요 제왕절개에요? 진통은 몇 시간 했어요? 무통주사는 맞았나요? 병원은 어디였어요? 젖은 잘 나오나요?' 이런 단골 질문들을 주고받는 동안 우리 사이에는 '전우애' 비슷한 게 생겼다. 조리원은 그런 공간이었다. 남성들이 군대 이야기 하듯이, 산모들은 출산 후기를 나누며 '서로 같은 처지'라는 데서 오는 뜻모를 애틋함을 느꼈다.
어느 날 아침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옆자리에 앉은 산모의 표정이 좀 안 좋았다. 중학교 선생님이었던 그녀는 결혼하고 몇 년만에 아이를 낳아 양가 집안의 격렬한 환호를 받고 있다고 했었다. 전날 시부모님이 조리원에 면회를 왔다 갔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나는 조심스레 무슨 일 있었느냐고 물었다.
"시아버님이... 아기 이름을 지어오셨는데..."라고 울먹이며 그녀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해는 2012년 흑룡의 해였고, 그녀의 아이는 딸이었다. '흑룡의 해에 태어난 딸'이라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신 그녀의 시아버지가 '해외로 뻗어나가는 이름을 지어야 한다'며 매우 글로벌한 이름을 두 개 가져오셨는데, 힐러리 클린턴의 '힐러리', 로라 부시 여사의 '로라'였다는 것이다. 문제는 남편의 성이 '조'씨라는 데 있었다. 조힐러리, 음 뭐 그래 그렇다치고, 조로라... 조로라?...음.... 조...로...라......
비질비질 삐져나오는 웃음을 삼키며 그녀를 위로했다. "에이... 설마 진짜 그렇게 지으시겠어요..? 남편한테 좀 말려달라고 해보세요..." 그녀의 표정에서 충격과 공포, 불안의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후에 조리원을 퇴소하고 나서 그녀에게 전해들은 아이의 이름은 '조안나'였다. '글로벌한 이름'을 고집하는 시아버지로부터 그 정도의 양보를 얻어낸 게 남편으로선 최선이었다고 그녀는 말했다.
내 이름은 '장수연'이다. 나는 어릴 적부터 내 이름이 참 별로였다. 특별한 의미도 없고 부르기에 예쁘지도 않은데, 흔하기까지 했다. 고등학교 때 반장을 한 적이 있었는데, 12개 반의 반장들 중 '수연'이라는 이름이 나를 포함해 세 명이었다. 장수연은 절대 영화나 소설의 주인공이 될 수 없는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친척 동생 중에 이름이 외자로 '미'인 아이가 있다. 장미. 아... 나는 그 아이가 정말 미칠듯이 부러웠다.  나중에 아이를 낳으면 꼭 특별한 이름을 지어주겠다고 다짐했었다. 후보도 있었다. 하이안, 이가을, 뭐 이런 것들.
불행히도 내 남편은 하씨도 아니고 이씨도 아니다. 발음 예쁜 한씨나 민씨도 아니다. 딸의 이름을 짓기엔 너무도 딱딱한 발음, 권씨가 내 아이의 아빠가 되었다. 출생신고 기한인 한 달 내내 남편과 격론을 벌였다. 나는 특별하고 예쁜 이름, 들으면 쉽게 잊히지 않는 이름을 짓고 싶어 했는데 남편은 평범한 이름을 좋아했다. 남편이 얘기했던 이름은 '권지수'였다. 지수. 영어로 하면 index. 이 아이가 자랄수록 지수가 성장하는 거라며, 얼마나 기분이 좋겠냐고 말했다. 주식에 미쳐있는 아빠는 이토록 위험한 것이다.
내가 주장했던 이름은 '권율'이었다. 예능PD인 동기 언니가 지어준 이름이었는데, 그 언니 이름은 '허항'이다. 본인 이름만큼이나 독특하게 지어 주지 않았나. 나는 '권율'이라는 이름이 참 마음에 들었다. 남자같기도 하고 여자같기도 하고, '율'이라는 발음은 부드러운듯 안정감이 있다. 절대 잊히지 않을 이름이고,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이름이다. 영어나 일본어로도 '유리'라고 하면 읽기 쉬울 것 같았다. 나는 '권율'로 하자고 강하게 얘기했다. 그런데, 웬만하면 내 의견을 많이 따라주는 남편이 이 이름만큼은 극렬히 반대했다. 친구들이 놀린다고, 만약에 아이가 덩치라도 크면 어쩔거냐고, 덩치 큰 여자애가 장군 이름을 갖고 있으면 얼마나 싫겠냐고 말했다.
우리는 격렬히 토론했다. 어릴 적 놀림받는 게 뭐 그리 대수냐고, 그 모든 게 이 아이의 정체성이 될 거라는 게 내 의견이었고, 남편은 위축된 어린시절이 미치는 악영향에 대해 이야기했다. '권하영'은 어떠냐는 그의 말에 내가 빽하고 소리쳤다. '촌스럽게 영이 뭐야 영이!!' (세상의 모든 권하영 씨, 죄송합니다. 저의 개취입니다. ㅠㅠ) 드디어 디데이가 왔다. 내일까지 출생신고를 하지 않으면 벌금을 내야 하는 마지막 날, 한치의 양보도 없던 우리 부부는 남북대타협 만큼이나 극적인 합의를 보았다. 권하영의 '하'와 권율의 '율'을 한 글자씩 따오기로. 그래서 우리의 첫 딸은 권하율이 되었다.
둘째 하린이의 이름은 보다 수월하게 지었다. '하'자나 '율'자 둘 중 하나는 넣어서 자매 이름의 라임을 맞추고 싶었는데, '율'을 넣자니 좀 흔한 감이 있었다. 고민하던 중 술자리에서 캐스커의 이준오 씨가 '하린'이는 어떠냐고 툭, 던져주었는데, 다같이 오! 하면서 감탄했다. 이틀 뒤, 친정엄마와 남동생이 아기를 보러 집에 왔는데 동생이 "누나, 나랑 엄마랑 이름 좀 생각해 봤는데, '권하린'은 어때?"하는 게 아닌가. 남편도 '하린'이 괜찮다고 해서 땅땅땅, 둘째아이를 권하린으로 부르기로 했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 이름을 엄마 아빠가 직접 짓는 경우가 생각보다 적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작명소에서 받아오거나 할아버지가 지어주시는 경우가 훨씬 많은 것 같다. 우리는 양쪽 집안이 모두 콩가루집안이라 아버지의 권위가 세지도 않고 꼭 넣어야 하는 돌림자도 없는데, 뒤늦게 그게 얼마나 다행인가 싶었다. 이름을 지으며 남편과 투닥투닥 언쟁을 벌이던 시간은 지금 생각해도 매우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를 대신해 앞으로 수없이 내릴 중요한 결정들 중 첫번째 결정을 내리면서, 이 아이가 정말 우리의 자식이구나, 이름을 지으며 격론을 벌였듯 우리는 앞으로 계속 이렇게 투닥거리면서 하율이를 키워가겠구나, 생각했다.
물론 그 중요도에 비해 좀 허무하게 이름이 결정되긴 했다. 한 명은 엄마아빠 어느 쪽도 양보하지 않은 결과로, 한 명은 술 마시다가. 나중에 아이들이 자라면 은근슬쩍 개명을 종용할까 한다. 하율이는 권율, 하린이는 권린으로. 나는 아직 외자 이름에 대한 로망을 버리지 못했다. 율아. 린아. 입 안에서 굴러가는 리을 발음이 참 예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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