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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수연 Jul 10. 2017

옥자와 미자, 희봉

영화 <옥자> 단상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를 보고 들었던 몇 가지 생각. (스포일러 있습니다.)


1.

할아버지 '희봉'과 손녀 '미자'는 산 속에서 10년 간 옥자와 함께 살았다. 그런데 미란도 그룹 사람들이 옥자를 데리러 왔을 때, 왜 할아버지는 순순히 옥자를 내어주고 '미자'는 옥자와의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했을까. 심지어 할아버지는 미자에게 "엄마 아빠 산소에 가자"며 함께 자리를 뜨는데, 이건 마치 미자가 미란도 그룹 사람들에게 격렬히 저항할 것을 예상하고 미리 '손을 쓰는' 것처럼 보인다. 옥자와 10년의 세월을 함께 보낸 건 할아버지나 손녀나 마찬가지인데 왜 이럴까. 왜 할아버지는 '돼지의 팔자'를 받아들이며 순순히 옥자를 넘겨주고 (심지어 옥자를 데려가기 용이하도록 손녀를 봉쇄하기까지 하고), 손녀는 도저히 그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걸까.


2.

이동진 평론가의 <옥자> 리뷰에 따르면 ([이동진의 어바웃 시네마] '옥자' 횃불이 아니라 불씨 http://magazine2.movie.daum.net/movie/36625) '미자와 옥자는 그들을 둘러싼 세상으로부터 철저히 끊겨 있'는데, 이건 '미자와 옥자 편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조차 예외가 아니'라서, 할아버지 희봉이 마이크와 스피커까지 동원해 미자를 부르지만 미자와 옥자는 잠들어 있어서 듣지 못한다. 미자와 옥자의 편이지만, 그네들에게 가 닿지는 못하는 인물이 희봉이다.


3.

할아버지는 손녀를 위해 닭을 잡아 백숙을 끓인다. 생명의 소중함과 존엄을 이야기하는 영화에서, 손녀를 먹이기 위해 백숙을 끓이는 것이 할아버지의 역할이다. 이건 내 눈에, 매운탕을 끓이기 위해 물고기를 잡으면서도 작은 고기는 풀어주는 미자의 행동과 대조적으로 보였다.


4.

희봉은 미자가 서울과 미국에서 겪은 일들을 끝내 알 수 없을 것이다. <괴물>의 마지막 장면처럼 <옥자>도 등장 인물들이 소박한 밥상을 마주하는 것으로 끝나지만 그래서 좀 다르다. <괴물>의 밥상에는 모든 것을 함께 겪어낸 두 '동지'의 공감이 있지만, <옥자>에서 희봉은 끝내 무지하다.


5.

하율이와 하린이가 주인공인 영화에서, 나는 조연일 것이다. 내가 주인공인 영화에서 내 부모님의 비중이 크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나는 기를 쓰고 자식을 먹이고 키우겠지만 바로 내가, 하율이와 하린이가 세상을 향해 모험을 떠나는 계기가 될 것이며, 그네들에게 벌어지는 중요한 일들을 나는 알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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