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쓰였던 건 작고 초라한 살림이 아니라, 밤마다 간절히 기도하는 어머니의 굽은 등이었다. 그 오랜 기도가 만들어내는 고요함 가운데 어머니의 흐느낌이 시작되면 나는 화가 났다.
- 채사장, <열한 계단> 60p
책을 읽다가 이 부분에서 나도 모르게 탄성을 냈다. '나, 이거 뭔지 알 것 같아!'
우리 엄마도 나와 동생들을 위해 늘 기도하는 어머니였다. 새벽기도를 가시기도 했고, 잠든 나와 동생들의 이마에 손을 얹고 기도하기도 했고, 가정예배를 드리면서 기도하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엄마는 자주 우셨다. 나를 위해 울면서 기도하는 엄마를 볼 때 나는 이 책의 저자처럼 종종 화가 났다. 나는 모태신앙인이고 어린 시절 교회는 내 세계의 거의 전부였다. 엄마는 신앙인의 모범적인 예였다. 그래서 '기도하는 엄마'를 못마땅해 하는 내 감정에 죄책감을 느꼈고, 깊숙이 감춰두었다. 엄마에게든 그 누구에게든, 심지어 스스로에게도 '나를 위해 울면서 기도하지 마세요'라는 마음을 드러내진 않았다. 그런데 오늘 채사장의 책 <열한 계단>에 불쑥 등장하는 저 문장이 나를 잡아세운다.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 자식들이 원하는 걸 충분히 해 주지 못 한다고 엄마는 늘 안타까워 했다. 피아노 학원을 다녔던 나는 종종 학원비 납부를 밀렸고, 엄마는 내게 몇 번쯤 "수연아, 선생님한테 학원비 며칠 있다가 드린다고 해"라고 겸연쩍게 말씀하셨다. 그렇게 말해야 했던 엄마는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지, 그렇게 어려워도 꾸역꾸역 학원을 보냈던 엄마의 집념은 얼마나 대단했던 건지, 생각할수록 뭉클하다. 엄마의 아픈 마음은 기도에서 고스란히 드러나곤 했다. 엄마의 미안함, 엄마의 슬픔, 엄마의 고통이 느껴졌다. 나는 그게 불편했다.
엄마의 울음이 나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됐다는 생각 때문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자녀에게 부담을 주지 말자'거나 '자식에 대한 과도한 미안함은 불필요하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할 수는 없다. 그 시절 내 엄마의 눈물은 참거나 조절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본인의 삶의 무게와 자식에의 사랑과 인생 본연의 슬픔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이를테면 땀 분비와도 같은 거였다. 미안함과 안타까움에 눈물을 참을 수 없을 만큼 거대한 사랑을 부담 없이 받아내기가, 가능할까. 여기에 부모-자식 관계의 본질적인 슬픔이 있는 것 같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원래 그렇게 어긋나는 사랑인 것은 아닐까, 이 사랑은 애초부터 비극의 요소를 품고 있는 장르가 아닐까, 하는 의심을 그래서 하게 된다.
나는 요즘 하율이와 하린이가 미칠듯이 예쁘다. 너무도 사랑스러워서 어떻게해야 할지 모르겠을 때가 있다. 18개월 하린이가 자면서 코를 곤다. (세상에, 이 아기도 코를 고네?) 걸음마를 시작하면서 발냄새가 난다. (어머, 발냄새도 나!) 똥을 누면서 얼굴이 새빨개지도록 힘을 준다. (오빠! 얘 힘 쓰는 것 좀 봐~) 앞니로 오물오물 콩나물대가리를 씹는다. (어금니도 없는게, 먹고 살겠다고) 인간이 하는 이 당연한 행동 하나하나가 경이롭고 신기하다. 이런 당연한 걸 신기해 하는 나도 신기하다. 하율이가 컸듯이, 하린이도 곧 자라서 말하고 뛰어다니고 잘난척 할 걸 생각하면 하루하루가 아쉽기도 하다. 아마 내 부모님도 이런 식으로 나를 사랑했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이런 주체할 수 없는 사랑의 감정을 부모님에 대해서 느끼기 시작한 건 불과 얼마 되지 않았다. 엄마 아빠의 죽음이 현실로 다가오면서부터이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아빠가 병원에 장기 입원 하시면서, 나는 대상 잃은 사랑의 감정을 추스르느라 힘들어졌다. 딸들을 보면 자꾸 부모님이 떠오른다. 부모-자식간의 사랑은 이렇게 필연적으로 타이밍이 어긋날 수밖에 없는 걸까.
불가능한 상상을 자꾸 한다. 서른 살의 내 딸과 서른 다섯 살의 내가 같이 영화를 보고, 여행을 하고, 맥줏잔을 기울이며 담소를 나누는 상상. 지금 당장, 서른 즈음의 내 딸을 만나고 싶다. 내 딸이 서른 살 쯤 됐을 때, 동년배의 내가 이야기 나눠 주고 싶다. 엄마와 나와 하율이, 하린이를 생각하면, 그런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이 들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