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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잘 키웠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by 장수연

MBC는 요즘 공정방송을 위해 파업중이다. 파업을 맞아 MBC 노동조합에서는 지난 시간 동안 정권에 부역했던 ‘언론부역자’들의 면면을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내가 속한 라디오국이 배출한 ‘언론부역자’도 있다. 라디오PD 출신 중에서는 아마도 최근 몇 년 간 가장 높은 자리에까지 올라간 사람일 것이다. 그를 두고 어떤 선배와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저 사람을 보면, 정말 자식 잘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돈도 많고 높은 자리에 올라갔지만, 저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언론에 해악을 끼쳤잖아요. 저게 ‘성공’이 아니라는 걸, 아이에게 잘 가르쳐야겠어요.”

“야, 모르는 소리 마. 진짜 많은 사람들이 저 사람 보면서, ‘자식 농사 잘 지었네’ 생각할껄? MBC에서 임원까지 됐지, 돈도 많지, 자식은 좋은 학교 나왔지, 다 가졌잖아. 저게 사람들이 생각하는 성공이지 뭐겠어.”


선배의 그 말이 며칠째 머릿속을 맴돌고 있다. 성공... 성공..... 성공. 성공이 뭘까. 우리는 자식을 어떻게 키우고 싶은 걸까. 내 아이가 어떤 어른으로 자라길 원하고 있을까. 공부 잘 해서 좋은 대학에 갔으면 좋겠고, 돈 많이 벌었으면 좋겠고, 이왕이면 돈 많은 배우자와 결혼했으면 좋겠고, 훗날 손자도 좋은 대학에 가서 자식 역시 ‘자식 농사 잘 지었다’는 소리 들으며 완벽한 인생으로 마무리 되었으면 하는 마음, 나에게도 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저기 있는 저 사람이다. 내가 매일 “물러나라!”고 소리 높여 외치는 저 사람들이,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성공한 사람’이다. 성공한 저 사람들 때문에, 나와 동료들이 오랫동안 고통받았고 MBC는 무너졌고 한국의 언론자유는 후퇴했다.


한 대 얻어맞는 기분이 들었다. 성공에 대한 내 기준, 내 가치관이 제대로 정립돼 있지 않으면 ‘자식 농사 잘 짓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는다. 아무리 돈이 많고 높은 자리에 올랐어도, 권력의 수족이 되어 언론을 망친 사람들은 성공한 사람이 아니다. 그렇게 단언할 수 있어야, 나부터 그렇게 살지 않을 수 있어야 내 자식도 그런 사람으로 키우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그저 그런 도덕교과서 문구로 ‘높은 자리에 오른다고 성공한 건 아니지’라는 말을 들을 때는 와닿지 않던 이야기였는데, 바로 내가 그 ‘높은 자리에 올랐지만 성공하지 않은 사람’ 때문에 고통받는 입장이 되고 보니 이건 아이에게 필사적으로 가르쳐야 하는 주제임을 알게 됐다.


내 딸들이 자라는 동안 기회 될 때마다 일러두어야 겠다.


얘들아, 블랙리스트는 나쁜 거야.

불합리한 지시를 받게 되면, 그게 청와대든 국정원이든 복종하면 안 돼.

방관해서도 안 돼.

그렇게 함으로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갔대도, 그건 성공이 아니야.

박근혜 씨는 대통령이 됐지만 성공한 사람이라고 볼 수 없잖니.

직원의 95%가 물러나라고 말하는 사장이 성공한 사람일 수 있겠니.


차라리 저항하다 가난해지렴.

김재철, 안광한, 김장겸, 최기화, 김도인 이런 사람들보다

이우환, 정영하, 이근행, 이용마, 김민식, 최승호 이런 사람들이 훨씬 성공한 사람들이야.

해고당했어도, 가난해졌어도, 쫓겨났어도, 경호원들에게 밀쳐지며 망신당했어도, 그 좋아하는 프로그램 제작을 못 하게 됐어도,

저게 성공이란다 딸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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