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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수연 Sep 18. 2017

‘아이를 잘 키웠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MBC는 요즘 공정방송을 위해 파업중이다. 파업을 맞아 MBC 노동조합에서는 지난 시간 동안 정권에 부역했던 ‘언론부역자’들의 면면을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내가 속한 라디오국이 배출한 ‘언론부역자’도 있다. 라디오PD 출신 중에서는 아마도 최근 몇 년 간 가장 높은 자리에까지 올라간 사람일 것이다. 그를 두고 어떤 선배와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저 사람을 보면, 정말 자식 잘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돈도 많고 높은 자리에 올라갔지만, 저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언론에 해악을 끼쳤잖아요. 저게 ‘성공’이 아니라는 걸, 아이에게 잘 가르쳐야겠어요.”

“야, 모르는 소리 마. 진짜 많은 사람들이 저 사람 보면서, ‘자식 농사 잘 지었네’ 생각할껄? MBC에서 임원까지 됐지, 돈도 많지, 자식은 좋은 학교 나왔지, 다 가졌잖아. 저게 사람들이 생각하는 성공이지 뭐겠어.”


선배의 그 말이 며칠째 머릿속을 맴돌고 있다. 성공... 성공..... 성공. 성공이 뭘까. 우리는 자식을 어떻게 키우고 싶은 걸까. 내 아이가 어떤 어른으로 자라길 원하고 있을까. 공부 잘 해서 좋은 대학에 갔으면 좋겠고, 돈 많이 벌었으면 좋겠고, 이왕이면 돈 많은 배우자와 결혼했으면 좋겠고, 훗날 손자도 좋은 대학에 가서 자식 역시 ‘자식 농사 잘 지었다’는 소리 들으며 완벽한 인생으로 마무리 되었으면 하는 마음, 나에게도 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저기 있는 저 사람이다. 내가 매일 “물러나라!”고 소리 높여 외치는 저 사람들이,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성공한 사람’이다. 성공한 저 사람들 때문에, 나와 동료들이 오랫동안 고통받았고 MBC는 무너졌고 한국의 언론자유는 후퇴했다. 


한 대 얻어맞는 기분이 들었다. 성공에 대한 내 기준, 내 가치관이 제대로 정립돼 있지 않으면 ‘자식 농사 잘 짓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는다. 아무리 돈이 많고 높은 자리에 올랐어도, 권력의 수족이 되어 언론을 망친 사람들은 성공한 사람이 아니다. 그렇게 단언할 수 있어야, 나부터 그렇게 살지 않을 수 있어야 내 자식도 그런 사람으로 키우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그저 그런 도덕교과서 문구로 ‘높은 자리에 오른다고 성공한 건 아니지’라는 말을 들을 때는 와닿지 않던 이야기였는데, 바로 내가 그 ‘높은 자리에 올랐지만 성공하지 않은 사람’ 때문에 고통받는 입장이 되고 보니 이건 아이에게 필사적으로 가르쳐야 하는 주제임을 알게 됐다. 


내 딸들이 자라는 동안 기회 될 때마다 일러두어야 겠다. 


얘들아, 블랙리스트는 나쁜 거야. 

불합리한 지시를 받게 되면, 그게 청와대든 국정원이든 복종하면 안 돼. 

방관해서도 안 돼. 

그렇게 함으로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갔대도, 그건 성공이 아니야. 

박근혜 씨는 대통령이 됐지만 성공한 사람이라고 볼 수 없잖니.

직원의 95%가 물러나라고 말하는 사장이 성공한 사람일 수 있겠니.


차라리 저항하다 가난해지렴. 

김재철, 안광한, 김장겸, 최기화, 김도인 이런 사람들보다

이우환, 정영하, 이근행, 이용마, 김민식, 최승호 이런 사람들이 훨씬 성공한 사람들이야. 

해고당했어도, 가난해졌어도, 쫓겨났어도, 경호원들에게 밀쳐지며 망신당했어도, 그 좋아하는 프로그램 제작을 못 하게 됐어도, 

저게 성공이란다 딸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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