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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수연 Dec 08. 2017

소수자의 문제는 설득으로 해결된 적이 없습니다

만만한 부모, 만만한 사회

<차이나는 클라스>라는 프로그램을 보았습니다. 이번 주 주제가 페미니즘이라고 해서 처음으로 챙겨보았는데, 중앙대 이나영 교수님이 강의 도중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소수자의 문제는 설득으로 해결된 적이 없습니다.”


20세기 초 영국의 참정권 운동인 ‘서프러제트’에 관해 설명하던 중이었습니다. 자료화면으로 영화 <서프러제트>의 한 장면이 나오더군요. 여성들이 달리는 말에 몸을 던져, 죽음으로써 자신들의 의견을 표현하는 부분이었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본 적이 없습니다. 전속력으로 달리는 말이 사람을 치받는 모습을, 저는 태어나서 처음 보았습니다. 그건 사람이 자동차와 부딪히는 장면 이상으로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렇게 과격하게, 그렇게 극단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이나영 교수님은 한 문장으로 설명하셨습니다. “소수자의 문제는 설득으로 해결된 적이 없습니다.” 폭력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어떤 사람들은 강자가 아니라 약자입니다. 너무 약해서 과격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상대에게 자신들의 목소리가 들리게 하기 위해 울고 소리지르고 심지어 단식을 하거나 목숨을 내놓는 선택을 하기도 합니다. 일제시대 독립운동가처럼, 전태일 열사처럼, 민주화를 위해 화염병 던지며 시위했던 학생들처럼 말이죠. 


‘소수자의 문제는 설득으로 해결된 적 없다’는 말을 곱씹으며, 설득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정도로 약한 사람은 이제 우리 사회에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어떤 소수자에게도 ‘설득할 엄두’는 열어놓는 사회였으면, 극단적인 선택은 하지 않을 정도, 최소한 그 정도로는 우리 공동체가 만만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네, 너무 유아적인 바람이지요. 저도 압니다. 비현실적인 이야기지요.


그래서 조금 소박하게 기도를 바꿔보았습니다. 내 아이가 나와 갈등할 때, 나를 설득하려고 했으면 좋겠다고요. 아이가 나를 설득할 수 있다고 믿었으면, 그 정도로는 내가 만만했으면 합니다. 네가 소리지르지 않아도, 물건을 던지거나 문을 쾅 닫거나 다른 어떤 폭력적인 방법을 쓰지 않아도 너는 나를 설득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서로 설득을 주고받는 사이가 되기를, 어느 한쪽이 상대에게 너무 강자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 덧붙여 드리는 말씀. 지금도 우리 사회에는 차마 설득의 말이 닿지 않아 극단적인 방법으로 간절히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언론노동조합 KBS본부(KBS 새노조)도 그 중 하나입니다. 12월 7일, KBS는 파업 95일째를 맞았고, 김환균 언론노조위원장과 성재호 KBS본부장은 무기한 단식에 들어갔습니다. 공영방송 정상화를 위한 이들의 요구에 우리 사회가 조금 더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방송통신위원회, 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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