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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수연 Nov 13. 2018

유치원 면담을 준비하며

- 교사에게 페미니즘 교육을.. 제발...

선생님, 언제나 사랑으로 저희 하율이를 돌봐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저, 궁금한 점이 있어요. 월요일에 유치원 졸업사진을 찍을 때 여자 친구들이 드레스를 입었다고 하던데 맞나요? 흰색, 진주가 달린 긴 공주드레스였다고, 한 명씩 돌아가면서 그 드레스를 입고 사진을 찍었다고 아이가 이야기하더라고요. 그럼 혹시 남자 친구들은 어떤 옷을 입었나요? 유치원 졸업사진을 찍는데 ‘공주 드레스’를 입게 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졸업 사진 촬영은 유치원의 공식 행사잖아요. 그것도 사립 유치원이 아닌 병설 유치원, 그러니까 국가 공립 교육기관의 공적인 행사에서, 어린이들에게 ‘특정한 옷’을 입게 한 것은 그 자체로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교복이나 학사모처럼 말이죠. 그런데 그 ‘특정한 옷’이 ‘공주 드레스’였다는 건, 글쎄요, 아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게 될지 부모로서 좀 신경이 쓰입니다. 한 해 동안의 유치원 생활을 마무리하는 의미 있는 사진에  드레스를 입히신 게, 이 유치원의 교육 목표가 ‘공주 양성’인가 하는 오해를 살 수도 있고 말이죠.
그리고 좀 더 중요하게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그 드레스를 갈아입을 때, 남자 친구들도 다 같이 있는 곳에서 메리야스도 벗고, 팬티만 입은 채고 옷을 갈아입어야 해서 부끄러웠다고 저희 아이가 그러더라고요. 바쁜 일과 시간 중에, 많은 아이들을 통제하면서 사진을 찍으셔야 했던 상황이었으리라고 충분히 이해합니다만, 선생님, 그래도 사실 좀 아쉽습니다. 어린이집 시절 유아 성교육 시간에, 그리고 가정 내에서도 아이는 ‘몸의 소중한 곳은 다른사람에게 보여주지 않는다, 그건 내 몸의 보호를 위해서일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 대한 예의다’라고 배워왔습니다. 그런데 그 배움이 유치원에서, 선생님이라는 중요한 교육 권위자에 의해서 부정당한 셈이니까요. 저는 이것을 아이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원래 알몸은 보여주지 않는 건데 유치원 선생님이 벗으라고 할 때는 괜찮다고 해야 할까요?
고민 끝에... 저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하려고 합니다. 아무리 선생님이라고 해도 네가 부끄러운 마음이 들면, 여러 사람이 있는 곳에서 옷을 갈아입지 않아도 된다고. 그건 틀린 게 아니라고. 오히려 부끄러운 마음이 드는데 꾹 참고 선생님께 아무 이야기도 못 하는 게 용기 없는 행동이라고 말이지요.
/// 어제가 유치원 졸업사진 촬영일이었고, 내일 정기 학부모 면담이 있다. 내일 면담 때 선생님께 어떻게 말씀드려야 하나 연습중이다. 한국 사회의 교육기관을 거치게 될 내 아이에게 ‘선생님 말씀 잘 들어라’라고 가르치는 것보다, ‘네 마음의 목소리를 무시하지 말거라, 용기를 내어 권위 앞에 당당하거라’라고 가르치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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