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한 하루를 보내기 좋은 영화
오늘은 아내와 휴가를 맞춘 마지막 날 금요일이다. 새로 알게 된 동네 카페에서 브런치를 먹으며 낮에 볼 영화를 골랐다. 무슨 영화를 하고 있나? 아내는 리즈 위더스푼의 영화 <홈 어게인>이 평이 안 좋다고 했다. 나는 집에 남자 여럿을 들이는 영화를 휴가 마지막 날 여보와 보고 싶지는 않다고 맞장구를 쳤다. 일단 낮술과 영화감상을 동시에 할 수 있는 Arclight에서 상영 중인 영화를 검색해봤다. 제니퍼 로렌스가 주연한 영화가 있었다. 제목은 'Mother!', 감독은 대런 OOO스키. 음... 대런? 어디서 들어봤는데? 검색해보니, 무려 <블랙스완>의 감독이다. 이 영화를 한 다섯 번 봤나? 이 감독의 표현 방식이 좋아서 여러 번 봤다. 이 감독은 '정신분열'로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비시각적 현상/사건을 시각적으로 기가 막히게 표현한다. 따라서 배우의 감정표현이 중요한 도구이다.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에서 제니퍼 로렌스가 연기를 잘 했다고는 하지만, 대런 감독 스타일의 표현도 잘 해낼 수 있을까? 그리고, 그 감독은 'Mother!'에서 무엇을 어떻게 표현했을까? 캐스팅을 보니, 에드 해리스와 미셀 파이퍼도 나온다. 오. 도널 글리슨까지. 배우들이 아주 짱짱하다. 우리는 이 영화를 보기로 했다.
맥주 한잔을 들고 영화관에 들어갔다. 평일 오전이라 참 썰렁했다. 난 이런 분위기가 좋다. 한산한 분위기. 영화는 제니퍼 로렌스가 아내로, 중년의 남자(아빠뻘)가 남편으로 나온다. 아내는 가정주부고, 남편은 유명(했던) 작가다. 그 둘은 어느 시골의 오래되었지만 큰 집에서 함께 살고 있다. 그녀는 어지럼증이 조금 있어서, 자주 약을 먹는다. 아내가 조금은 주눅 든 분위기. 그러던 중 에드 해리스가 집에 오면서 조금씩 갈등이 시작된다. 다음날 그의 아내 미셀 파이퍼도 집에 들어온다. 도널 글리슨은 그들의 무개념 아들이다. 점점 영화는 막장이 된다. 영화의 전개 자체가 좀 어이가 없어서, 보는 동안은 무슨 상징/비유 투성이겠거니 했다. 개념 없이 행동하는 사람들이 계속 나오다가, 집단으로 미친 짓을 하다가, 마지막에는 섬뜩해진다. 영화가 끝나고, 아내와 나는 서로를 바라보며, "대체 이게 뭐임?" 하며 웃었다. 나는 굳이 해석을 하며, 셀러브리티와 그 가족에게 너무나도 가혹한 현대인을 풍자한 블랙코미디 같다고 했고, 아내는 결혼한 커플이 애를 낳기 전과 후에 느끼는 것을 표현한 것 같다고 했다. 뭔가 개운치 않았다. 그러다가 인터넷에서 사람들의 리뷰를 읽어보던 중, '아! 이거였구나' 하는 실마리를 찾았다.
그 실마리를 바탕으로 아내와 생각나는 장면을 풀어보았다. 사건 하나하나다 다 상징이어서, 저녁을 먹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서까지 그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가 아내의 종교 이야기도 하고 (아내는 천주교), 가족에 대한 이야기로까지 이어졌다. 각자의 삶의 작은 단편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 어떻게 느꼈는지, 무엇이 좋고 싫었는지를 나누었다. 이렇게 휴가의 마지막 날은 도란도란하게 채워졌다. 나는 이런 되새김질형 영화를 좋아한다. 곱씹고 또 곱씹으며,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그러면서 서로의 경험과 평소의 생각도 물어보고, 그러다가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떠오르면 함께 웃고. 이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면, 왠지 서로를 조금 더 알게 된 것 같고, 좋은 추억 한 블록을 쌓아 올린 기분이 든다. 이런 내 성향을 자연스럽게 받아주고 함께 즐기는 아내가 고맙고 좋다. 오늘 하루 종일 퍼즐 맞추기는 실컷 했고, 이 영화를 다음에 다시 볼 때엔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