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만의 아지트를 찾았어요
오늘은 미국의 독립기념일. 사람들은 여기저기서 성조기를 흔들며 휴일을 즐기고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저 빨간 날일 뿐. 마치 여느 일요일처럼, 오랜만에 엘에이에 들른 친구와 코리아타운 중국집에서 점심을 먹고 낮잠을 잤다. 일어나 보니 벌써 오후 5시가 되었다. 그제야 이렇게 허무하게 오늘을 보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뭔가 특별하지만 번잡하지 않은, 휴식시간을 갖고 싶었다. 무엇을 할까?
2006년 샌디에고에 살 때는 나만의 장소가 있었다. 모든 것을 잊고 그저 쉬고 싶을 때, 맥주 한 캔 챙겨 들고 찾아가는 곳. 벤치에 홀로 앉아 태평양에 떨어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가만히 멍 때리다 보면, 잡념이 사라지고 기분이 좋아졌다. 엘에이에서 산지 거의 10년이 되어 가지만, 이 곳에는 나만의 장소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보, 저 오늘 휴일처럼 제대로 뭔가 하고 싶은데... 우리 나갈까요? 뭐 하러 갈까요?
음..... 볼드윈 파크 언덕에서 불꽃놀이 볼까요?
'음.... 왠지 쉬는 느낌이 별로 안 들 것 같애. 거긴 너무 북적거려.'
내 생각을 찰떡같이 읽어낸 아내는 다시 물었다.
아니면 우리 캠핑 의자 챙겨서 비치에 갈까요?
오! 좋은 생각이에요 여보.
'산타모니카 비치까지 고작 5분밖에 안 걸리는데, 그 생각을 못했네.'
저녁 6시 반쯤 산타모니카 비치 근처 윌 로저스 주립 공원에 도착했다. 이 곳에는 특별한 추억이 있다. 나와 내 아내는 2014년 엘에이 마라톤을 함께 뛰었는데, 주로 이 주변에서 훈련을 했다. 덕분에 부상 없이 풀 코스 마라톤을 잘 뛰었다. 그 뒤에 하프 코스인 할리우드 마라톤도 뛰었는데, 그 훈련도 이 곳에서 많이 했다. 여기 주차장에서 출발하여 베니스 비치나 마리나 델레이를 넘어서까지 갔다가 돌아오면, 10마일이나 20마일 정도가 된다. 이왕 힘든 훈련을 하는 김에, 경치가 좋은 곳에서 달리고 싶었던 것 같다. 힘들지만 즐거운 추억이 있는 곳이다.
여보. 우리 어떻게 여기서 20마일을 뛰었지?
그러게 말이에요. 이제는 상상도 안돼요 ㅎ
내 딸아이는 엘에이 마라톤을 마쳤을 때 바로 아내 뱃속으로 찾아와, 그다음 해에 건강히 태어났다. 그래서일까? 바닷가를 참 좋아한다. 기본적으로 물을 좋아하는데, 바다에는 물이 많다는 이유다. 바다만 보면 신나서 "아구아~ 아구아~"를 외쳐댄다. 우리는 이런저런 장난을 치면서 모래사장을 거닐며 해가 지기를 기다렸다.
해가 지고 난 뒤, 한적하고 노을이 잘 보이는 곳에 준비해 온 의자를 폈다.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도 틀었다. 맥주도 한 캔 땄다.
여보, 저 지금 기분이 정말 좋아요.
저도요 여보, 우리 여기를 우리만의 장소로 정할까요?
네 좋아요. 우리의 아지트.
어수룩히 노을이 지고, 차가운 파도소리가 바스러진다. 이렇게 휴일다운 저녁이 만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