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mes Hur Sep 03. 2022

선비와 힙합

그리고 사랑하는 여보

<남들모르는 에 대한 사실>이란 주제 아래 써본 글입니다.

------------------------------------------------------



우리가 연애하던 시절, 내 이미지가 선비 같다던 여보. 내가 힙합을 좋아하는 게 의외였나요? 서로 디스하고 욕하는 노래가 뭐가 그리 좋은지 모르겠다며, 짜증을 내곤 했죠.  하지만 여보. 여보가 싫어해도 나는 힙합 음악을 계속 듣고 싶어요. 힙합 음악은 위대하고 힙합 정신은 정말 멋지니까요.


그리고, 하연이가 좋아하는 힙합 곡은 앞으로도 들려주고 싶어요.  물론! 여보를 신경 쓰이게 하는 나쁜 가사가 있는지 꼭 살필게요.  하연이도 힙합의 멜로디와 비트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원슈타인의 <infrared camera>를 들려준 뒤, 몇 달은 하연이의 favorite song이 되었던 것 기억하죠?  원슈타인의 트렌디한 보컬, 창의적이고 genuine 하며 시적인 가사, 그리고 아름다운 멜로디를 하연이가 알아보는 것 같아서 기뻤다고요.


나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팬클럽 '태지매니아'였는데, 이것도 의외일까요? 1995년에 태지형이 <컴백홈>으로 힙합과 스노보드를 알렸고, 나는 law abiding citizen으로서 문화 대통령인 형의 명령을 잘 따랐어요. 중학교 때부터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스노보드를 타러 갔고, 고등학교 때는 담임선생님에게 호되게 맞더라도 스키장에는 꼭 갔어요. 그 뒤로 에미넴 형을 만나면서 라임의 예술과 힙합 정신에 대해 조금씩 배웠고요. 에미넴에 대한 영화 <8마일>은 10번 이상 본 것 같아요. 에미넴은 나에게 '노력'과 '근성'을 가르쳐준 사람이에요. 갱스터 래퍼들과 랩으로 싸워 이기고요, 랩 가사를 잘 쓰고 싶어서 버스 안에서 사전을 한 장 한 장 외우며 찢어먹었대요. 그렇게 세상에서 가장 라임을 잘 만드는 사람이 되었대요. 그땐 힙합 뮤지션들이 그렇게 멋져 보이더라고요.


그리고 이거 알아요? 내가 리스펙 하는 힙합 래퍼들과 스타트업을 하는 여보에게 공통점이 꽤나 있다는 것을요. 여보의 가장 큰 매력인 꾸밈과 과장 없는 솔직함, 끊임없이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비즈니스 모델과 세일즈 파이프라인을 탐색하는 실험정신, 적은 리소스로 엄청난 양의 아웃풋을 만들어내는 허슬러 정신, 그리고 유학생 공순이로서 흔치 않은 커리어를 타지에서 만들어 나가며 후배에게 좋은 멘토가 되려는 마음.  힙합 역사에서도 이런 것들은 가장 중요한 가치였어요.  솔직함, 실험정신, 허슬러 정신, 내 뿌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신.  벤 호로위츠 <최강의 조직>에도 비슷한 내용이 나오니, 나만의 유별난 괴짜 철학은 아닐 거예요.


힙합 래퍼가 부른 K-Pop을 함께 들어보는 건 어때요? 여보도 좋아할 노래를 알아요.  원슈타인의 <존재만으로>.  불멍에도 잘 어울리는 노래예요.  우리 가족 여행 마치고 돌아가는 차 안에서 틀어줄게요. 같이 들어봐요.  여보도 좋아할 거예요.

작가의 이전글 다 같이 놀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