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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니정 Aug 31. 2019

공구로운생활의 '소매상'

[#4] 돋보이는 소매상이 되는 기준 5가지

제조-도매-소매-소비자로 되어있는 커머스 구조가 진화하고 있다는 건 누구나 느끼실 겁니다. 이 4가지로 이루어진 구조는 깨지거나 합쳐지며 재편합니다. 도소매가 제조를, 소비자가 소매가 되기도 하면서 매년 다르게 기업의 위치가 바뀝니다. 이제 어떤 기업을 저 4가지 위치 중 하나로 규정짓기 어려워졌습니다. 디자인 에이전시가 미세먼지 마스크를 제조해 론칭하고, 양말공장이 직접 스마트스토어를 여는 경우가 있죠. 제조공장의 영업, 판매력을 높여주는 스타트업도 있습니다. 


(제조공장의 판매를 돕는 스타트업 단골공장)



특히, 도,소매는 그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습니다. 도매가 마케팅, 영업력을 갖춰서 직접 물건을 판매, 소매가 제조업에서 직접 매입하거나, 스스로 제조업이 되어 제품을 소비자에게 공급합니다.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대표적으로 말하자면 정보의 접근성이 높아서입니다. 누구나 제조, 도매 정보를 쉽게 얻는 것이죠. 동대문시장도 이제 발품 팔지 않고 앱을 이용해서 원하는 제품을 찾는 것처럼요. 업계 사람들만이 쉬쉬하며 알고 있던 제조원 정보, 업체 컨택처 등을 온라인으로 손쉽게 찾게 되었습니다.


(동대문 도매상과 소비자를 이어주는 '신상마켓')



가장 요동치는 위치는 소매(또는 소매상)입니다. 대부분이 소매상으로 커머스에 처음 발을 들입니다. 제조업은 공장 설비가, 도매상은 대량 매입을 감당할 자본이라는 진입장벽이 있습니다. 처음 작은 소매상으로 시작하다가 취급 물건이 많아지고, 노하우를 익히게 되면 자연스럽게 도매나 제조로 넘어가게 되는 구조가 보편적입니다. 다른 관점으로 이야기하면 소매상은 가장 힘이 약합니다. 초기 진입자가 많고, 뒤에서는 제품 단가 인상과, 앞에서는 소비자 항의에 두드려 맞는 샌드위치 신세이기 마련이죠. 가장 매출 내기가 어렵다고 다들 말합니다.


(샌드위치의 고기도 아닌 소스 역할 정도???)


누군가는 앞으로 작은 규모의 소매상은 사라질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제품, 가격, 트래픽 등 경쟁력을 제대로 갖춘 소매상들이 독과점하는 것이죠. 맞는 말입니다. 제품은 없고, 가격은 비싸고, 장기간 재고관리가 안 되는 소매상은 경쟁력이 없죠. 소비자가 사지 않는다면 소매상의 존재 가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소매상이 정말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봅니다. 오히려 더 활성화된다는 낙관적인 시선입니다. 산업용품 업계의 경우, 오히려 작은 소매상들이 꽤나 괜찮은 매출을 올리며 오랫동안 살아남더군요. 문득 저는 휘몰아치고 진화하는 커머스 구조에서 소매상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았습니다. 크게 5가지의 기준이 생각나더군요.



1. 지역

어린 시절, 작은 동네 철물점으로 심부름을 가곤 했습니다. 가격도 비쌌는데 말이죠. 하지만 어쩐대요. 제 동네에 철물을 살 수 있는 대형마트나 백화점이 없었거든요. 나중에 부모님께 들어보니, 그 철물점 사장님, 돈 많이 벌기로 소문이 자자했답니다. 지역이라는 특성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가격이 비싸던, 취급 품목 종류가 적던 우선 소비자가 가기 쉽다면 판매는 잘된다는 것이죠. 슬세권(슬리퍼를 끌고 갈 수 있는 범위)이라는 신조어가 이 사실을 잘 말해주고 있죠.



2. 제품 구색

1번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는데요. 어떤 제품을 가져다 놓느냐가 포인트입니다. 자주 오는 고객의 특성에 따라, 한 제품군만 깊게 다루거나 혹은 다양한 제품군에서 최고 좋은 한두 개씩을 선별하여 판매할 수 도 있습니다. 저희 동네 철물점은 일반 가정에서 쓸 수 있는 못, 드릴, 망치 같은 기본적인 공구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한정된 공간과 자본 하에 수익을 많이 올리려면 당연히 가장 많이 팔릴만한 제품을 판매하는 것입니다. 최근 어느 지역에 건설 현장이 들어서니 재빠르게 해머드릴, 컷쏘와 같은 건설용 산업용품을 들여놓는 철물점도 봤습니다.

이런 해머드릴을 가정에서 쓰진 않겠죠?


3. 가격

가격은 쌀수록 좋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저는 '가격이 경쟁력의 전부가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네요. 사실 소매상이 가격 경쟁력을 갖추기는 어렵습니다. 제조, 대량 매입에서 나오는 가격 바이브를 이기기 어렵죠. 소매상이 가격을 건드리는 것은 위험하기도 합니다. 수익 없는 치킨게임의 방아쇠가 되어 결국 공멸하는 사태가 옵니다. 결론적으로 소매상은 가격이 아닌 다른 부분에서 경쟁력을 가져가야 한다고 말하고 싶네요.


제조업과 가까이 갈수록, 대량 매입일수록 단가는 내려가죠


4. 마케팅

제가 가장 좋아하는 쇼핑몰이 있습니다. 이 곳에서 산업용품을 팔기도 하는데, 다른 곳에 비해서 비싸고, 배송시간도 꽤 걸립니다. 하지만 저는 이 곳에서 여러 물건을 사는데, 그 이유는 마케팅 때문입니다. 할인 이벤트도 많이 하고, 맛깔스러운 글과 함께 제품 업데이트 소식이 꾸준히 오니, 자연스럽게 이 쇼핑몰에서 물건을 구매하게 됩니다. 결국, 소비자에게 어떻게 다가가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더군다나 제품에 경쟁력 내기 어려운 소매상의 입장에서 말이죠. 


(개인적으로 마케팅을 잘한다고 생각하는 쇼핑몰, 펀샵)



5. 고객 응대

며칠 전 타이어에 펑크가 난 적 있습니다. 급한 마음에 동네 타이어 가게에서 타이어를 갈았습니다. 거기 직원 분들은 친절하게 타이어의 펑크 원인은 설명해주고, 타이어를 갈아주고 전체적인 차량 점검도 도와줬습니다. 마지막에는 직접 차 문을 열어주고, 90도 인사를 하며 저를 보내주셨습니다. 나중에 자동차공업사에서 해야 타이어 가격이 더 싸다는 것을 알았는데 막상 기분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서비스는 정말 만족했으니까요.

소매상은 사람 냄새나는 고객응대가 큰 경쟁력이라고 봅니다.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기업은 고객 응대 메뉴얼도 정해져 있고, 하물며 기계가 자동으로 하는 소위 표준화가 된다고 합니다. 몇몇 소비자는 이런 표준화된 응대가 불편하다고 하죠. 이런 상황으로 보자면 소매상은 고객과 친밀한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합니다. 저울로 정확히 재서 가격 바코드를 받는 대형마트보다 인심으로 몇 개 더 얹어주는 시장이 더 좋을 때가 있는 것처럼요.


진정성이 담긴 고객응대의 예시



근처 동네 가게만 둘러봐도 배울 점이 많아 재밌습니다.

SNS나 언론에 오르내리는 거창하고 기발한 판매 방법이 아닙니다. 개학한다고 펜 위치를 바꾸는 문방구, 추석이라고 국거리용 고기를 할인하는 정육점, 막 입고된 고기를 서비스로 주는 고깃집.. 제가 어제만 봤던 판매 노하우들입니다. 저는 이런 점 때문에 소매상이 좋습니다. 실전 경험에서 우러나는 쫀쫀한 판매 방법론을 습득할 수 있으니까요. 다양한 방법으로 소비자에게 다가가는 소매상들 덕분에 같은 제품도 다르게 보이고, 다양한 취향의 만족으로 제품을 사는 것 같습니다. F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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