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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니정 Dec 20. 2019

공구로운생활의 '가격'

[#5] 가격만이 제품의 최고 경쟁력일까?

쿠팡에서 스토어를 운영하고 있는데요. 판매자 관리 시스템에는 '아이템 위너'라는 카테고리가 있습니다. 쿠팡에서 특정 제품의 가장 낮은 가격을 차지했을 때 해당 제품의 '아이템 위너'가 됩니다. 하지만 다른 판매자가 나보다 낮게 제품을 판매한다면 '아이템 위너'가 아니라는 알림이 오고, 포함된 링크를 클릭하면 가격을 조정할 수 있는 페이지가 뜨게 됩니다. 가격을 더 낮게 책정하라는 뜻이죠. (고객응대, 배송속도에 따라 달라진다지만 과연 그럴까요?) 가격을 낮게 잡으면 다시 아이템 위너에 선정됩니다.


아이템 위너의 가격은 곧 최저가입니다.


아이템 위너라는 이 시스템이 저에게 꽤나 스트레스를 주더군요. 그리고 문득 생각이 들더군요.

가격이 꼭 제품 경쟁력의 전부인지, 고객들은 가격만을 보고 제품을 선택하는 것일지, 그리고 치열한 가격 경쟁만 있다면 과연 해당 제품 생태계에 어떤 결과를 주는지를요. 우선 저는 가격만이 제품의 유일한 경쟁력은 아니라고 봅니다. 고객이 가격 말고도 다른 이유로도 제품을 살 수 있기 때문이죠.(같은 제품이라는 가정 하에) 쿠팡과 네이버스토어에서 판매를 하고 있는 저의 주관적인 시각으로 이 글을 써봅니다.





1. 가격경쟁이 벌어지면 어떻게 될까?

'핵억제'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핵을 통하여 자국의 군사력을 보여주고, 타국으로부터의 공격을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죠. 핵이 이런 억제력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핵을 쓰면 상대방만 죽는 게 아닙니다. 모두가 죽는 것이죠. 

가격 경쟁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가격경쟁은 '공멸'이라고 생각합니다. 단기적으로는 누군가가 점유율, 이익을 볼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그 시장의 수요, 공급의 순환을 죽여버리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이런 현상이 어떻게 벌어질까요?? 과감히 가정해보았습니다.




*A는 10,000원의 제품 첫 판매를 시작했다. 여태까지 국내엔 팔지 않던 신상품이라 많이 팔렸다.

*이윽고 B가 같은 제품을 9,500원에 판매를 시작했다. 당연히 고객은 9,500원짜리를 샀다.

*그다음에 대형 오픈마켓 C가 9,000원에 판매를 시작했다. 고객은 당연히 9,000원짜리를 샀다.

*가격은 점점 내려간다. A는 8,500원에 판매, B는 8,000원에 판매.. 점점 가격은 도매가로 수렴한다.

*C는 가격경쟁에 이기기 위해 직접 제조업 A에 단가 인하를 요구한다.

*제조업 A는 단가 인하를 거부하지만, 그러기엔 C가 재품 매출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제조업 A는 마진은 훨씬 줄지만 C에게 싼 도매가로 납품한다.

*C는 7,000원으로 판매를 시작한다. A, B는 가격 경쟁에 도태되어 이 제품 판매를 포기한다.

*제조업 A는 도저히 C가 요구하는 도매가로 마진을 남길 수 없다. 이 생산력으로 다른 제품을 개발하고 만다.

*A는 결국 제품 생산을 중지한다. C는 더 이상 제품을 팔지 못한다.

*그 제품은 그렇게 사라진다.




제가 많은 픽션을 넣고, 여러 변수를 고려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현상은 산업용품 시장에서도 자주 벌어집니다. 어떤 전동 드릴은 하루가 다르게 가격이 내려가며, 심지어는 제가 알고 있는 도매가보다 낮게 내려갑니다. 이제 마진보다 시장 점유율 싸움을 시작한 것이죠. 한명만 남기고 모두가 죽는 상황입니다.


가격 경쟁은 시장을 점유하는 직관적인 방법이지만, 해당 제품의 유통 구조를 빠르게 훼손합니다. 결국에 모두가 팔지도 못하고 죽은 제품이 되어버리고, 적어도 마케팅용, 프로모션용 제품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큽니다. 치킨 게임(Chicken-Game)입니다. 치킨 게임에서도 살아남은 마지막 판매자는 과연 좋은 상황일까요? 마진이 아닌 점유율을 위한 싸움이기에, 이 점유율을 가지고 더 높은 마진을 남길 제품을 찾아나설 것입니다.


디월트 에서도 치킨게임이 어렴풋이 느껴지기도 해요. 제 개인적이 느낌입니다.




2. 가격경쟁은 울며 겨자먹기가 아닐까?

제조, 유통에서는 울며 겨자먹기라고 봅니다. 제조 쪽에서는 박리다매의 원리로 수익을 유지하려면 어쨌든 제품은 계속 생산을 해야 하고요. 유통 쪽에서는 재고를 어떻게든 털아야 다른 제품으로 갈아탈 수 있습니다. 주식을 싼값에 매도하여 손절하는 것과 같죠. 제품 판매를 중지한다는 것은 어쨌든 자신의 매출, 수익  감소를 감수하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일정 규모가 있는 기업 말고 어떤 소상공인이 이 큰 위험을 감당할까요?


1000원짜리 100개보다, 900원짜리 200개 파는 게 더 좋지!!
1,000원짜리 재고로 쌓아버리는 것보다 100원에 싸게 파는 게 좋지!!


소상공인에게 가격경쟁은 목을 죄는 올가와 같으며, 끝에 허무함을 가져오기도 합니다.

내가 야심 차게 준비한 제품이 다른 규모 있는 기업이 프로모션이나 마케팅 비용 차원에서 판매한다면 자괴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래서 소상공인은 가격이 아닌 다른 매력으로 소비자에게 다가가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소상공인이 대기업을 이기는 방법은 브랜드에 있다.(제 생각도 그래요.)




3. 소비자만 좋으면 되는 거 아냐?

물론 좋습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바라봤을 때 가격 경쟁은 소비자의 불만족을 가져온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가격 경쟁은 생산비용 절감으로 이어져 제품의 퀄리티가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생산비용, 가격에 매몰된 제품은 디자인, 품질, 내구성 등의 업데이트 가능성이 낮아지는 것이죠. 또한, 위에 말씀드린 것처럼 제조업이 더 이상 제품을 생산하지 못해, 살 수 없는 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죠.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유통 생태계가 건강해야 소비자도 제품에 만족합니다.



4. 가격 경쟁을 막기 위한 여러 방법들

이러한 가격 경쟁을 막는 가장 직관적인 방법은 제조자가 직접 가격 가이드를 제시하는 것입니다. 판매자에게 제품을 넘겨주되 일정 금액 이상으로 판매하라는 것이죠. 그리고 이 가이드를 지키지 않는 판매자와는 거래를 하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이런 제조업에게 존경을 표하며 닮고 싶기도 합니다. 박리다매의 달콤함을 이겨내고 제품의 퀄리티와 유통사와 신뢰 관계로 성장하려고 하며, 거대 트래픽이 있는 판매자에게도 굴복하지 않는 패기가 있다고 할까요??  그리고 소비자에게 다양한 면모로 제품을 어필하는 모습이 진정성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판매자는 가격 선택에 신중해야 할 것입니다. 무조건 가격을 최저가로 낮추는 것이 잘 팔리는 전략이 아닐 수 있습니다. 오히려 나의 최저가 전략으로 인해 가격 경쟁이 일어나 내가 감당 못할 가격에 거래될 수 있습니다. 욕심부리다가 기회를 놓친 셈이죠. 가격을 어떻게 책정해야 하냐고요? '적당'하면 됩니다.


작업등, 조명업체 쏠라젠에서는 이렇게 가격을 통제하고 있습니다.



5. 가격이 꼭 경쟁력은 아니다?

가격이 주 경쟁력이 될 수는 있지만, 오직 가격만이 경쟁력은 아닙니다. 크게 제조, 판매 2가지를 토대로 가격이 아닌 여러 경쟁력을 만들 수 있다고 보는데요. 즉, 가격이 비싸더라도 고객이 사게 만드는 방법 같은 것이죠.


-제조: 성능, 디자인, 내구성, 패키지 등

-판매: 마케팅, 상세정보, AS, CS, 배송, 판매자의 브랜드 등


산업용품은 일반 소비재와 달리 다른 경쟁력이 많이 대두된 시장이라 생각합니다. 꼽는다면 최고의 경쟁력은 '신뢰'입니다. 소비자(기업고객)는 판매자의 제품보다 판매자가 얼마나 믿음직한지를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판매자가 골라주는 제품에 따라서 생산성이 높아지고, 기술자의 작업환경이 달라질 수 있으니까요. 무조건 값싼 산업용품만을 사용했다간 큰 사고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값싼 면장갑은 미끄러우면서 기계 속에 장갑이 쉽게 빨려 들어간다고 합니다.


스탠리 블랙앤데커 그룹의 프리미엄 브랜드로 분리한 디월트(Dewalt), 가격은 높지만 확실한 성능으로 많은 기술자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6. 공구로운생활의 경쟁력은 무엇일까?

저는 항상 고민합니다. 규모도 작고, 경험도 상대적으로 적은 공구로운생활이 어떤 경쟁력을 가질지요. 저희가 가지고 있는 경쟁력은 이 부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산업용품을 확실히 골라주는 큐레이션 능력

-고객처의 생산성을 관리해주는 케어 능력

-'사람'에서 시작해서 '사람'으로 끝나는 서비스


동영상을 통하여 산업용품을 재미있게 전달해보려 합니다.


위에서의 '신뢰'와 연관된다고 볼 수 있겠네요. 다른 경쟁사(?)들도 패시브로 장착할 수 있겠지만, 공구로운생활은 이 능력을 키워보려고 합니다. 현재 기술자 파트너와 함께 산업용품의 매력을 잘 전달할 수 있는 다양한 제품 패키지, 콘텐츠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서비스는 '사람'을 통해 완성하려는 욕심이 있습니다. 공구로운생활은 '사람들이 산업용품을 잘 알고 사용할 수 있는 기술적 사회'라는 철학 아래 행동하고 있으니까요. F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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