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Paris] Inspired By Art Schools
이제 여름도 끝나가네. 나는 마지막 여름 휴가를 맞아 오랜만에 내 마음 속 고향인 벨기에 브뤼쉘에 다녀왔어. 브뤼셀은 내가 그래픽 디자인 학사와 석사를 마친 곳이야. 그만큼 나에겐 의미가 큰 도시지. 오랜만에 내가 공부했던 브뤼셀 왕립 예술학교를 둘러보며 그 당시 내가 공부했던 기억을 떠올려보았어. 이번 페이퍼에서는 내가 유럽에서 디자인을 공부하며 느꼈던 경험을 이야기해보려 해.
사립을 제외하고 프랑스의 국립 보자르나 벨기에의 왕립학교 같은 경우 디자인 학과를 희망하더라도, 예술학교 특성 상 굉장이 개념적이고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과정을 밟게 돼. 그래서 입학과정을 위한 포트폴리오나 시험도 조금은 학구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어. 내가 4개의 보자르 시험을 보면서 느낀 점은 프랑스나 벨기에의 입학 시험은 딱히 사전에 준비를 할 만한 시험 형태가 존재하지 않는 점이었어. 우리나라 대표 입학시험 주제였던 석고, 정물 데상이나 발상과 표현같은 시험을 보면 어느 정도 고득점을 얻기 위한 패턴이나 메뉴얼이 존재하거든? 내가 프랑스에서 받았던 주제는 대부분 여러 작가들의 영상, 설치 등 작업을 보여주고 나의 관점을 표현한다든지, 몇몇 유명한 브랜드의 이름을 나열하면서 그 로고를 얼마나 똑같이 그려낼 수 있는가라든지 종이에 A부터 Z까지 쓰게 하고 각 알파벳으로 시작하는 작가나 작품 이름을 아는대로 쓰게 만든다라든지. 이런 것들은 평소에 어떤 주제가 나올지 미리 준비를 할 수가 없잖아. 오히려 평소에 얼마나 많은 전시나 작품들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신중하게 바라보며 나만의 견해를 가져보는가, 그게 유럽의 입학시험을 준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같았어.
프랑스나 벨기에 학교의 공통점은 작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교수와의 대담(커뮤니케이션)이 굉장이 많이 이루어진다는 점이야. 한마디로 생각없이 작업을 진행할 수 없다는 뜻이지. 특히 브뤼셀 왕립 예술학교에서는 생각보다 많은 이론수업이 같이 진행되기 때문에 단순히 실무적인 업무 스킬을 기르기보다는 이론과 철학들이 뒷받침된 멀티플레이어를 양성한다는 느낌이 들었어. 철학, 기호학, 역사학, 법 등 다양한 이론들을 공부하며 그것들을 작업에 녹여내는 법을 배우게 되지. 나는 디자인과임에도 불구하고 진행되는 프로젝트의 주제는 꽤나 철학적인 것들이 많았는데, 브랜딩이나 포스터 디자인같은 매우 상업적인 프로젝트에도 그것에 접근하는 레퍼런스나 방식에 있어서는 상당히 미학적인 이론들을 요구해. 가령 레스토랑이나 카페를 브랜딩하는 프로젝트에서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미장센들을 레퍼런스로 보여준다든지 말이지. 그건 아마 작업에 있어서 우선 텍스트적인 접근을 우선시하는 유럽의 예술 분위기를 닮아서일꺼야.
교수들과 작업에 대해 얘기하면 가장 많이 질문하는 것들이 있어. 그건 바로 '왜'라는 질문이지. 생각보다 디테일한 질문들에 당황하게 되는데, 작업 하나하나를 뜯어보며 왜 이런 폰트를 썼고, 왜 이런 컬러를 사용했으며 왜 이런 이미지를 사용했는지 등등, 너가 사전에 깊이 생각해보지 않으면 답변할 수 없는 질문들이 날라와. 이중 최악의 답변은 '예뻐서요.' '요즘 트렌드라서요.' 등등의 답변이지. 모든 작업 요소 하나하나에는 그만한 합당한 이유가 존재해야하고, 그 이유와 의도를 갖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리서치와 연구가 필요해. 디자이너에게는 이만한 공부가 없는 셈이지. 결국 유럽에서의 디자인 수업은 내가 준비한 디자인의 의도와 이유를 교수에게 어필하며 납득시키고 설득하는 과정이 큰 부분을 차지해. 이 과정에서 교수와의 말다툼도 빈번하게 일어나는 편이지. 사실 디자인이라는 것도 정답이 없는 거잖아? 내가 작업한 것들을 설명할 수 있고, 누군가에게 설득당할 수 있는 디자이너는 양성하는 것, 그게 내가 다녔던 학교의 특성이지 않았나 싶어.
예전에 공부했던 시기를 돌아보며 디자이너로 살고 있는 지금의 나를 반성하게 되었어. 어느 정도 뿌듯한 부분도 있고, 반성하게 되는 점도 있네. 한국이든 유럽이든 각각의 장단점이 존재하겠지만 결국 그 과정에서 내가 되고 싶은, 조금 더 가까워지고 있는 이상향의 모습을 갖추기 위해 스스로가 인지하고 노력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
요즘 너의 삶에서 발견하는 영감은 어떤거야?
2021.09.07
Pa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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