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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가끔씩 자살을 꿈꿨습니다.' 뮤지션 스트로마에

[#45 Paris] Inspired By Stromae

by 재니정

얼마 전 프랑스의 대표 TV채널 중 하나인 TF1의 8시 뉴스에서는 한 뮤지션의 초대석이 있었어.


약물의 부작용으로 우울증, 편집증, 자살충동까지 느끼며 긴 시간 공백기를 가졌던 이 뮤지션은, 7년만에 새 앨범으로 돌아와 뉴스의 앵커와 함께 담담하게 앨범에 대한 인터뷰를 나눴지. 그리고 약 5분도 안되는 이 인터뷰가 끝났을때, 모든 프랑스 언론사와 소셜 미디어들은 이 뉴스 방송이 준 충격에 말 그대로 난리가 나 버렸어. 프랑스어 버전과 영어 자막 밖에 지원이 안되지만, 이 인터뷰 영상을 끝까지 시청하길 바랄게. 이 뮤지션의 이름은 스트로마에(Stromae)야.



스트로마에(Stromae)는 내가 벨기에 유학시절에 알게 된 뮤지션이야. 프랑스어로 노래를 부르지만 엄연히 브뤼셀에서 태어난 벨기에 출신 싱어송라이터야. 본명은 ‘Paul Van Haver’

까무잡잡한 피부에 마르고 여리여리한 체형, 그리고 뭔가 흐리멍텅한 눈빛을 지니고 있지만 그가 선보이는 음악의 가사들과 퍼포먼스를 보면 그의 파격적인 예술성에 감탄을 자아내게 만들어. 한국에서는 그리 유명하지 않지만, 프랑스어권에서는 한 시대를 대표했던 스타 뮤지션이야.

타고난 아티스트성과 해학이 넘치는 가사들, 그리고 학생시절때 영화를 전공했던 경험이 묻어나는 감각적인 뮤직비디오 영상들이 스트로마에의 매력이라고 볼 수 있어.

프랑스어권에 살면서 스트로마에의 음악과 영상들은 꽤 긴시간 동안 내게 많은 영감을 주었어. 그 중에 내가 특별히 애착이 가는 곡들을 몇가지 소개해볼까 해.



Alors on danse (=So we dance)

스트로마에의 이름을 전세계적으로 알리게 했던 곡이야. 여러 댄스음악을 접했던 사람이라면, 전주부분의 리프만 듣고도 어디선가 들어봤던 노래라고 느낄 수 있을거야.

스트로마에는 유튜브 영상을 통해 자신의 곡 작업과정을 자주 공유하곤 하는데, 이 곡을 제작하는 과정도 본적이 있어. 생각보다 제작과정이 말도 안되게 간단해서 이런 심플한 구성만으로 이렇게 신나고 귀에 감기는 노래가 탄생한게 신기하더라고. 파티때, 어느 타이밍에서 틀어도 분위기를 업시켜주는, 그만큼 잘 만든 노래라고 생각해.



https://www.youtube.com/watch?v=8aJw4chksqM


Quand c’est?

내가 스트로마에를 깊게 알게 되고 본격적으로 빠지게 된 계기가 된 곡이야. Quand c’est? 는 프랑스어로 ‘언제야?’ 라는 뜻이지만 발음이 ‘암’을 뜻하는 Cancer와도 동일해. 스트로마에의 가사에는 이렇듯 중의적인 표현을 활용한 말장난들이 많아.

무엇보다 독보적인 것은 이 노래의 뮤직비디오야. 무대 위에서 가녀리게 춤을 추는 스트로마에에게 마치 먹이감을 노리듯이 천천히 다가오는 (암을 상징하는) 괴수들과, 어느새 무대 전체를 뒤덮은 암세포들의 비주얼을 보고 충격을 먹었던 기억이 나. 뮤직비디오 전체가 흑백으로 되어있어 암이 전이되는 과정을 더욱 그로테스크하고 암울한 분위기로 잘 표현하고 있어.




Carmen

내가 처음으로 들어본 스트로마에의 곡이었어. 벨기에 친구들이 독특한 뮤직비디오라고 소개해줬고, 흡입력있는 애니메이션에 빠져들게 되었지. 이 영상은 카르멘 오페라의 멜로디와 함께 SNS에 중독된 사람들을 풍자하는 메시지를 담고있는데, 처음에 귀엽게 다가왔던 새 (트위터를 상징)와 함께 일상을 같이 즐기다가, 점점 그 새에 의존하게 되고 그러면서 새는 어느새 덩치가 어마어마한 괴물로 성장하게 돼. 결국에는 그 새를 타고 암울한 최후를 맞게 되고, 마지막 반전으로 끝을 맺는, 기억에 계속 맴도는 극적인 내러티브를 가지고 있어. 스트로마에의 노래는 항상 이렇게 사회적 메시지를 지니고 있는 경우가 많아. 특히 이런식의 우울함과 절망을 주 소재로 하고있지.




Formidable

마지막으로 소개할 노래는 Formidable이란 곡이야. 이별에 좌절한 남자의 고통스러운 심정과 해탈을 표현한 곡인데, 뮤직비디오에서 스트로마에는 브뤼셀의 한 트램 정거장에서 술에 취한듯한 모습으로 노래(라고는 하지만 거의 고성방가 수준)를 부르고 있어. (이 역은 브뤼셀의 Louise라는 곳인데, 명품매장들이 늘어서있는 꽤 번화가인 곳이야.)

재밌는 점은 스트로마에는 이 영상을 촬영할때 카메라를 최대한 숨기고, 사람들이 촬영이라는걸 모르는 상태에서 연기를 했대. 그래서 뮤직비디오 중간에 경찰들이 다가와서 괜찮냐고 물어보는 장면을 볼 수 있어. 아무튼 이 노래의 가사를 보면,


Formidable, formidable (끝내준다 끝내줘)
Tu étais formidable, (넌 정말 끝내줬고)
j'étais fort minable (나는 너무도 형편없었지)
Nous étions formidables (우린 정말 끝내줬어)

이렇게 Formidable (끝내주는)과 Fort minable (굉장히 형편없는)의 발음의 유사성으로 라임을 형성하고 있어. 스트로마에는 이런 부분에 특히 강한 아티스트야.

스트로마에의 음악들을 감상하면서 나는 왜인지 모더니즘 당시의 작가들이 생각났어. 그 전 시대였던 낭만주의에 모두가 아름답고 서정적인 것들을 이야기 할 때 모더니즘의 작가들은 도시의 어둡고 더러운 것들을 소재로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거든. 파리의 음침한 뒷골목을 시로 쓴 보들레르나 그로테스크한 묘사로 유명한 에드거 앨런 포 처럼 말이야. 그 당시에는 그런 것들을 천하고 불쾌하게 여겼지만 지금은 그 자체가 하나의 아름다운 미학을 형성하고 있잖아? 스트로마에의 음악에서 꾸준하게 말하는 메시지도, ‘세상은 영화처럼 아름답지 않아. 오히려 지독할만큼 역겹고 암울하지’ 라고 말하고 있어. 하지만 처음 소개했던 뉴스 인터뷰에서 처럼, 그는 우리를 정면으로 바라보면서 그러한 메시지를 너무도 아름답고 서글프게 표현하고 있어.


오랜 약물 부작용과의 사투 끝에 돌아온 스트로마에는 이번 음악에서 그가 느꼈던 자살충동에 대해 필터링 없이 표현하고 있지. 그러한 솔직함과 대범함, 그리고 그것을 음악으로서 표현하는 능력이 그가 가진 가장 큰 자산이라고 생각해. 앞으로도 그가 계속해서 건강한 마인드로 강하고 울림있는 노래들을 전달해줬으면 좋겠어.


최근 너가 받은 영감들은 뭐야?


2022.01.26

Pa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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