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청년, 공단 청년이 되다.

#1 하루 만에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다.

by 재니정

10월 12일, 해외여행을 다녀와 귀국한 공항에서 청천벽력의 소식을 들었다.

아버지가 추석 연휴 때 뇌경색으로 쓰러지셨고, 내가 룰루랄라 여행을 다닐 때, 우리 가족은 병원에서 아버지의 의식 회복을 울면서 기다렸다는 이야기였다. 다행히 아버지는 운동신경 쪽에만 문제가 있어, 정신이 아닌 신체적인 재활만 노력하면 예전 상태로 돌아가실 수 있었다고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그 재활 기간의 종료 시점은 기약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동안 아버지는 일을 하실 수가 없게 되었다.



1. 하루 안에 결정해야 하는 내 진로

침대에 누워 아버지는 내가 꼭 나의 일을 대신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어쩌면 예전에 말씀하셨을지도 모르겠다. 대학교를 다닐 시절, 가끔 아버지를 따라 일을 다닌 적이 있었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언젠가 내가 아프면 내 일을 네가 대신 맡을 수 있으니, 꼭 준비해둬라.' 그래서 언젠가 아버지 일을 내가 맡을 수 있겠다는 일말의 가능성을 내 인생 그래프에 두었다. 하지만, 그게 아버지의 자발적인 은퇴, 원할 때 그만두는 약 10년 뒤라 내 머릿속 커리어에는 손톱만큼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 10년 뒤 상황이 닥치는 데에는 단 하루도 걸리지 않았고, 그 손톱만큼의 가능성은 나에게 운명을 결정짓는 거대한 파도로 다가왔다.

나는 결심했다. 아버지 일을 당분간 도와드리기로 하였다. 그 이유는 3가지로 간단하였다.


-나는 언제든 다른 일을 할 수 있지만, 아버지는 더 이상 일을 하실 수가 없다는 점.

-아버지의 수익으로 학교도 다니고 유복한 생활을 한 점.

-좀 더 유연하고 오너십이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는 점.


이 3가지의 큰 이유가 있어서, 크게 고민하지 않고 알겠다고 대차게 대답을 해버렸다.



2. 밤새 고민했던 내 결정

결정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정말로 옳았는지 수없이 망설였다. 나는 코워킹 스페이스에서 커뮤니티 매니저로 일하고 있었다. 추석 연휴가 끝나면 진행해야 할 새로운 프로젝트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코 워커들의 네트워킹 활성화를 위한 온. 오프라인 프로젝트 기획을 9월에 시작하였고, 추석이 끝나면 본격적으로 론칭할 계획이었다. 그전에 나는 휴식 겸 인사이트를 받고 싶어 해외여행을 떠났던 것이었다. 그러나 이 노력은 모두 바람에 날리는 민들레 씨처럼 흩어져 버렸고, 오히려 다른 씨앗을 손에 쥐게 되었다. 그 날 잠을 한숨도 못 잤다. 내일 당장 대표님에게 어떻게 이야기하고, 어떻게 마무리를 지어야 하고, 특히나 내가 마음가짐을 어떻게 가져야 하는지 밤새 고민했다. 다음날 아침, 출근하자마자 어렵게 꺼낸 내 이야기는 알겠다는 대표님의 간단한 응답으로 다가와 한편으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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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럼 도대체 아버지가 하시던 일이 무엇인가?

아버지는 2004년부터 공구 납품업을 시작하셨다. 시화 공단의 공구들을 구매하여 공장에 납품하는 형태였다. 내가 했던 커뮤니티 매니저와는 여러모로 상극의 일이었다.


-커뮤니티 빌딩, 조직적 행동 대신 -> 나 혼자

-서울 성수동에서 -> 시흥 시화공단으로

-슬랙, 구글, 트렐로 등의 메신저로 소통에서 -> 종이 회계 장부와 매출 전표, 전화 통화로 소통으로

-대중교통을 타고 -> 1톤 트럭을 타고

-개성 있는 평상복 대신 -> 작업복을 입고

-존중하는 경어체 대신 -> 투박하게 섞인 반말로

-참신한 기획, 아이디어 기획 대신 -> 효율적인 재고 관리, 가격 책정으로

-새로운 트렌드를 공부하는 대신 -> 오래된 공구와 판매 방법을

-창업가들이 치열하게 아이디어를 내는 장에서 -> 차가운 기계가 안정적으로 돌아가는 공장으로


등 많은 부분들이 대척점에 서있었다. 그중 내가 가장 두려운 부분은 '트렌드에 뒤쳐져 투박함에 매몰되는 나'의 변화였다. 매일 나 스스로가 업데이트되지 않고, 주어진 일에만 집중하게 되는 내가 될까 봐 두려웠다. 코워킹 스페이스뿐만 아니라 또 하고 있는 프로젝트 '어바노이즈'의 CD가 나에게 가장 걱정하는 점이기도 하였다. 여태 나는 보통 매체보다 빠른 트렌드 민감도를 요구하는 직업이었지만 이제 아니었다. 어쩌면 세상을 선도하는 흐름에 탑승하지 못하는 내 모습을 상상하기가 힘들었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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