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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sgirrrl Feb 12. 2019

Not a simple woman

톰 포드의 <녹터널 애니멀스 Nocturnal Animals>


<녹터널 애니멀스>는 이미지 자체만으로도 중격적인 오프닝 시퀀스로 시작된다. 살이 늘어진 늙은 여자들이 최소한의 코스튬을 걸치고 거의 누드로 등장해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몸을 흔드는 퍼포먼스가 이어진다. 마치 한편의 행복한 크리스마스 광고같은 편집이지만 TV에 나올 법한 모델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다. 축축 처진 살이 흔들릴 때마다 미와 추에 대한 판단이 유보된다. 하지만 스크린 속 그들은 누구보다도 행복해 보인다.


이 특별한 퍼포먼스는 로스 앤젤레스의 한 갤러리의 도발적인 전시 중 일부다. 전시 오프닝 파티를 비추면서 카메라가 뒤로 빠지면 그 여자들은 더이상 주인공이 아니다. 그들의 육체 사이로 드레스업을 하고 샴페인 잔을 든 상류층 손님들이 거닐고 있다. 그 사이에 성공적인 전시라며 축하를 받고 있는 큐레이터 수잔이 있다. 파티를 끝낸 그녀는 건축가 안도 다다오풍의 우아한 집으로 돌아가 잘생기고 잘 나가는 남편을 맞이한다. 원하는 예술작품을 거리낌없이 사들일 정도로 여유롭지만 정작 삶은 권태롭다. 예술은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돈벌이 수단이 된지 오래다.


로스앤젤레스의 부유한 여자의 권태로운 라이프라니, 대중 소설과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클래식한 캐릭터 설정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녀의 삶을 뒤흔들게 될 것인가. 마침 소설가였던 전남편의 새소설 원고가 우편으로 도착했다. 출간되기 전 그녀의 승인을 바란다는 편지가 함께 들어있다. 때마침 뉴욕으로 출장 간 현재 남편과의 통화에서 바람을 피우고 있음을 눈치챘다. 현남편에 대한 불신이 전남편에 대한 그리움의 씨앗이 되는 가운데, 고질적인 불면증을 가지고 있는 그녀는 밤마다 자연스럽게 전남편의 소설을 읽기 시작한다. 제목은 <녹터널 애니멀스>. 아내와 딸과 함께 여행을 갔다가 인적이 드문 도로에서 야간 운전을 하게된 가장의 이야기다. 책을 펼치자마자 수전의 시점으로 이야기는 진행이 된다. 주인공 가장 에드워드는 전남편의 얼굴이다. 전남편과 주인공의 이름이 같은 데다 이야기 배경이 그녀와 전남편의 고향인 텍사스여서인지 자연스럽게 익숙한 고향 풍경을 덧씌운다. 밤운전을 하던 에드워드는 그들을 위협하는 불량배들을 만나게 되고 그들은 아내와 딸을 납치해서 사라져 버린다. 생생한 이야기는 수잔의 상상을 통해 스크린으로 투사된다. 동시에 수잔의 머릿속 한켠에선 전남편의 기억이 함께 피어오른다. 고향친구였다가 뉴욕에서 만나 대학원을 같이 다니고 결국 사랑에 빠지게 되는 둘. 소설을 읽을수록 전남편에 대한 기억도 순차적으로 소환된다. 아내와 딸을 잃는 비극을 겪게된 소설 속의 에드워드, 수잔과 결혼하고 작품에 매진하던 기억 속 에드워드, 그리고 불면증과 의부증과 소설 중독으로 머리가 아픈 현실의 수잔의 이야기가 매끄럽게 엮이면서 서로 다른 감정들이 흥미롭게 충돌한다. 소설 속 에드워드가 지역 형사와 살인범을 찾아다니는 동안 절망과 분노가 교차하고, 젊은 수잔이 자리를 못 잡는 전남편 에드워드를 대하는 모습에선 안타까움과 연민이 피어나고, 과도하게 스타일시한 현실에 갇혀버린 수잔에게선 불행과 권태와 허무의 그늘이 드리워진다. 


밤마다 다른 세계에서 살게된 수잔은 자신을 둘러싼 기억과 현실, 허구를 어떻게 재조합할 것인가. 두 명의 에드워드에게 밤을 빼앗긴 그녀는 낮에서도 그의 환영을 볼 정도로 점점 그에게 매료된다. 결국 그녀는 그 세계로 그녀를 집어넣은 작가에게 연락을 취한다. 행복한 기억 속에 존재하는 전남편 에드워드와 소설 속에서 가족을 잃은 불쌍한 남자 에드워드를 동시에 현실로 불러오기 위함이다. 하지만 과연 에드워드는 존재하는 것일까. 현실에서 에드워드를 만날 수 없게 되었을 때야, 수잔과 관객은 모두 영화 속 에드워드가 실제 에드워드가 아님을 새삼 깨닫게 된다. 예술가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마법. 허구를 실제로 믿게 만들고 거기에 감상자가 경험을 녹여넣고 나름의 의미를 만들어낸다. 수잔은 책을 읽었고, 나약하다는 이유로 버려진 전남편은 수잔이 소설 속 나약한 남자 주인공을 연민하게 만들어 감정의 함정에 빠지게 만든다. 소설과 기억이 합작하여 만들어낸 감정적 복수극. 모든 것이 과장되게 멋지고 극도로 세련된 로스 앤젤레스의 상류층 사회에서 살고 있던 수잔은 놀라운 작가로 성장한 전남편에게 무시당하는 초라한 존재가 되어버린다. (감독이 최고로 만들어 주겠다며 작정하고 입힌 듯한) 화려한 치장 속에 숨겨진 초라한 실존을 깨닫게 만들고 그녀의 '현실적' 성공이란 것의 허상을 폭로하는 것. 복수가 완료되었다. 


동시에 <녹터널 애니멀스>는 창작자와 감상자의 관계에 대해 선을 긋는 영화이기도 하다. 예술은 현실로 소환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술에 빠져든 감상자는 어떻게든 그 대상을 현실로 끌어오고 싶어하고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어하지만 그럴수록 현실은 더 가식적인 영화 세트처럼 변한다. 극중에서 예술작품들로 가득 차있는 갤러리나 고급 하우스는 로스 앤젤레스의 허영을 대표하는 이미지가 된다. 

다시 생각보다 길었던 오프닝 시퀀스로 돌아가보자. 영화 속 누구도 오프닝에 등장한 할머니들보다 많이 웃지 않는다. 절망과 권태과 배신 속에서 웃음을 잃고 만다. 교훈적일 필요가 없는 영화가 이 오프닝으로 조금 교훈적이 된다. 아무리 멋지고 잘났어도 추한 노인들보다 행복하지 못하다는 것. 이런 극단적 대조는 그 대척지점에 뚱뚱한 할머니들을 놓게 되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올바른 방법론처럼 보이진 않는다. 이렇게 상류층의 가식적인 삶을 비웃는 교훈적인 군더더기를 제외하면, <녹터널 애니멀스>는 완벽한 쓰리피스 수트처럼 디자인된 이야기 구조와 강렬하고 매혹적인 색감으로 잠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매력 덩어리 영화다. 반짝반짝 빛나는 이미지로 무장한 스타일리시 미국 감독의 탄생. 그 이름은 톰 포드다.  




* 글의 저작권은 모두 필자에게 있습니다. 글의 부분/전체 무단 복제를 금하며 인용시에는 출처를 밝혀주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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