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던 필의 <어스 Us>
***스포일러 주의
"Who are you?"
"We are Americans."
<겟 아웃>에 이어 <어스>를 만든 조던 필 감독은 레퍼런스를 중시하는 창작자다. 주요 참고작으로 <스텝포드 와이프>를 언급했던 <겟 아웃>에 비해 <어스>는 더 많은 레퍼런스가 뒤섞어서 그 레퍼런스들로 구조를 만드는 야심찬 영화다. 그는 이 레퍼런스를 되도록 투명하게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다. 오프닝을 예로 들어보자. 1986년 공익광고 '핸드 오버 아메리카'가 재생되는 낡은 TV 옆에는 고전 B급 호러 영화 <C.H.U.D> 비디오가 보란 듯이 꽂혀 있다. 미국에 버려진 터널이 많다는 설명에 바로 붙는 이 짧은 장면에서 <C.H.U.D>는 영화의 복선이자 터널 거주인들의 행동 지침과 같은 영화임을 이후에 눈치챌 수 있다. 레이건 정부의 홈리스 정책을 반영한 호러 영화인 <C.H.U.D>에서 하수구로 끌려간 홈리스들은 괴물로 변해 뉴욕 지상으로 튀어 나와 시민들을 공격한다. 영화 제목만 보여줬을 뿐인데 <어스>의 악당 레드의 공격 방식을 단박에 알게 된다. 이 호러 영화를 손에 손을 잡고 홈리스를 구하자는 공익 캠페인이었던 '핸드 오버 아메리카' 영상과 나란히 붙여 놓는 것만으로도 <어스>의 컨셉이 명확해진다.
이런 레퍼런스들은 <어스>에서 레드와 터널족의 면면을 설명하지 않는 것에 대한 알리바이로 작용한다. 레드의 세계는 대중문화로 구성된다. 앞서말한 <처드>를 비롯해, 어린이 시절 티셔츠에 새겨져 있던 '스릴러', 그 당시 바닷가에서 촬영 중이던 뱀파이어 영화 <로스트 보이>, 레드가 인용하는 <구니스>의 대사("저 위는 이제 우리 시대야."), "Rise above(위로 올라가자 or 이겨내자)"라 노래하는 펑크 밴드 '블랙 프래그'의 티셔츠 등 레퍼런스를 통해 레드와 터널족 존재에 대한 암시를 겹겹이 쌓는다. 이밖에도 <필사의 도전> <나이트 메어> <샤이닝> <13일의 금요일> <퍼니 게임> <클라웍 오렌지> <조스> 등 숨은 영화 찾기 리스트가 계속된다.(예레미아 11장 11절을 암시하는 1111도 여기저기서 튀어나온다)
레퍼런스들이 서로 뒤엉켜 화학작용을 하는 동안, 조던 필이 시도하는 전복적 반영은 아주 평범한 흑인 가족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다는 점이다. 기존 관념상 백인 가족이 등장할 수도 있는 이야기에 흑인 가족을 등장시키지만 인종 차별 문제를 중심에 놓는 영화가 아니다. 굉장히 자연스러운 설정이지만 지금까지 누구도 하지 않았다. 조던 필의 시도 덕분에 백인의 자리에 흑인이 놓여도 영화를 보는데 아무런 어색함이 없다는 걸 깨닫게 된 것이다. 존 조가 서부의 IT 전문가로 등장했던 <서칭>과도 비슷한 경험이다. 습관화된 백인 중심 감정이입을 벗어나 타인종에게도 동등하게 감정이입을 할 수 있다는 것. 여자가 수퍼히어로나 악당을 연기해도 남자일 때와 똑같은 감정이입과 재미의 포인트를 갖든다는 것. 현재 미국 영화들에서 심심찮게 경험할 수 있는 시선의 전복이다. 아카데미상 수상 이후 고만고만한 역만 맡아온 루피타 뇽이 모처럼 신나게 연기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즐겁다.
제목의 'US'는 그들이 곧 우리이며 미국이라는 점까지 암시한다. 레드는 자신의 정체는 '미국인'이라고 밝힌다. 레드는 특별히 시간을 할애하여 터널 안에 숨어서 날토끼만 먹고 살았던 존재들이 지상으로 나가서 지상인을 대체하고 세상을 자신들로 덮어버리는 것에 대한 오랜 계획을 설파한다. 홈리스와 무산 계급이 마치 계급 혁명을 하는 듯한 은유이지만, 조던 필은 이 사회 구조를 대중문화 레퍼런스의 암시로만 구성했기 때문에 현실반영의 쾌감을 안기지 못한다. <겟아웃>이 안겼던 직설적인 사회 비판 펀치가 <어스>에선 거의 작용하지 않는다. 마무리를 위한 반전 또한 순간적 재미만 안길뿐 어떤 여운이나 씁쓸함도 남기지 못한다. 영화가 개봉된 후 온갖 매체들에서 마치 숨어있는 코드인 양 레퍼런스를 찾아내어 주석 달기에 열심인데, 이런 현상이 과연 감독이 원하던 것이었나 의문이다. 사회를 반영한 멋진 고전 호러 영화들의 존재를 상기시키기 위해 <어스>를 만든 것일까? <어스>는 고전 호러 영화의 첨예한 비판 정신을 계승한다는 선언문으로서는 나무랄 데 없다. 하지만 당대 미국의 현실을 날카로운 거울처럼 반영한 수작이라 평가하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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