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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sgirrrl Dec 15. 2019

부패의 역사가 관에 들어갈 시간  

마틴 스코세이지의 <아이리시맨 The Irishman>

이미지 출처: 넷플릭스 
지미 : 이 역사의 일부가 되고 싶나?
프랭크 : 그럼요. 제가 필요하다면 무슨 일이든 하겠습니다. 



FBI : 그 사람 죽었어요.
프랭크 : 누가 죽어?
FBI : 당신 변호사요. 로가노.
프랭크 : 누가 죽였는데?
FBI : 암이요.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요양원 복도를 훑는 카메라는 휠체어에 앉아 있는 한 노인에게 멈춘다. 그는 이제 막 어떤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입을 떼고 있다. 주인공이 고백하는 이야기의 시작점은 어떤 이탈리아계 성을 가진 한 지인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그 지인의 삼촌 부부를 태우고 펜실베니아에서 출발하던 때다. 시간은 그 시점을 중심으로 양분된다. 동행자인 러셀을 알게 되어 그 결혼식 여행까지 이르게된 대과거 플래시백이 초반부, 그 결혼식 여행이 어떤 비극을 위한 세팅이었는지 밝혀지는 게 후반부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그의 고백이 명절날 할아버지의 6.25 참전사같은 단순한 무용담이 아니라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트럭 노조 위원장 호파의 실종과 관련되어 있음이 드러난다.  


노인의 이름은 프랭크 쉬런. 세 시간이 넘는 그의 고백에 등장하는 모든 관계자들이 세상을 떠났지만 그는 운 좋게 살아남아 노년의 삶을 살고 있다. 이탈리아계가 아닌 아일랜드계였던 프랭크는 이탈리아 마피아와 인연을 맺은 트럭 운전수였고, 그 직업으로 인해 마피아가 결탁한 트럭 노조의 전설 제임스 호파를 보좌하고 노조 지부장 자리까지 오르는 명예를 누린다. 아무 것도 없는 밑바닥 출신 노동자는 중요한 결정의 순간마다 살아 남는 선택을 했다. 이탈리아 스테이크 식당에서 스테이크 고기를 원하자 배달하던 고기를 빼돌렸고, 유태인 사업가가 자신에게 마피아 경쟁자를 어떻게 해달라고 요청할 때 마피아 쪽에 서서 오히려 그 유태인 사업가를 제거했다. 마피아 보스가 시키는 배달 일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해냈다. 노조 위원장 제임스 호파에게 무슨 일이든 하겠다고 맹세했지만 그를 후원하던 마피아가 중재를 원하면 최선을 다해 호파를 설득했다. 호파와 함께 했던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는 어떤 편에 서야할지 빠르게 판단했다. 그의 손을 장식하고 있는 트럭 노조의 훈장같은  손목 시계와 마피아 가족에게 증여되는 거대한 반지는 그 균형있는(!) 생존의  증거물이자 전리품이다. 

그렇다면 관객은 이 세 시간에 달하는 살인자의 고백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손에 피를 묻히며 가족과 자신을 모두 보호한 가장으로 치하해야 하나? 천만에. 갱스터 버전의 <국제시장>같아 보여도 <아이리시맨>은 연민을 종용하는 영화가 아니다. 스코세이지는 한번도 갱스터의 삶을 보기 좋게 전시하거나 괜한 연민의 시선을 던진 적이 없다. 스코세이지 영화에서 자기 파괴적인 마피아 집단은 (혹은 멘탈리티가 비슷한 월스트리트 늑대들조차) 언제나 그에 상응하는 비극적 결말을 맞이하곤 했다. 

 

마틴 스콜세지가 프랭크의 이야기에서 주목하는 것은 프랭크라는 인물보다 그의 인생사에 녹아 있는 떳떳하지 않은 역사적 순간들이다. 이를 테면 이런 것들이다. 프랭크가 알 수 없는 이에게 무기를 배달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의 쿠바 침공이 실패했다는 뉴스가 나온다. 그 알 수 없는 귀 큰 남자는 이후 워터게이트 사건이 방송되는 TV 화면에서 전직 CIA 요원으로 등장한다. 케네디가 암살된 후 호파 암살 시도를 계획하면서 러셀은 프랭크에게 같은 사람의 지시라고 말한다. 미국이 음모와 협잡으로 들썩였던 이 시기의 디테일을 쌓기 위해 영화는 프랭크의 움직임을 꼼꼼하게 쫓아간다. 노조의 연설 장면, 군중 속 암살 장면, 법정 장면 등등 마틴 스코세이지의 유려한 군중 연출이 빛을 발하는 장면들도 넘쳐난다.   

<비열한 거리>에서 자영업자들에게 보호비로 삥을 뜯고 빚을 받아내거나, <좋은 친구들>에서 훔진 물건들로 암시장을 만들어 이득을 취해왔던 마피아들은 <아이리시맨> 시대에 이르면 노조와 결탁해 노동자의 연금 펀드를 대출받아 부동산 개발에 진출하거나 마약 사업을 확장한다. 마피아가 세를 확장할 동한 그 과정에 연루되는 모든 이들에게 뇌물이 오가고 부패의 네트워크가 만들어진다. 호파는 이 네트워크에 놀아나지 않는 인물이다. 마피아와 결탁하고 횡령의 혐의가 있지만, 자신만의 규칙(네가 마피아든 아니든 약속 시간에 늦으면 안돼..등등)에 엄격하고, 자신이 미국 노조를 만들었다는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다. 영화는 딱히 그에 대한 평가는 하지 않지만 충분히 그의 캐릭터를 보여주며 이야기의 중심에 놓는다. 그가 죽는 장면은 너무도 느닷없고 급박하게 진행되어 어떤 역사가 순식간에 닫히는 막막한 기분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결혼식 여행 일정을 따라가던 프랭크의 고백도 호파가 죽고 여행이 끝나면서 마무리 된다. 

 

거짓과 부패가 일궈온 미국의 역사는 허무한 결말을 향해 달려간다. 영화는 일분 일초도 프랭크에게 변명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대신 딸 페기의 냉정한 눈초리가 그를 불편하게 만드는 순간들은 있다. 페기는 프랭크가 어떤 결정을 내리고 부정한 결과를 초래할 때마다 그를 응시한다. 그리고 결국에는 그를 쳐다보지도 않는다. 그를 '가족' 혹은 '밝은 세상'으로 이끌고자 했던 어떤 시선이 닫히는 것과 같다. 프랭크가 몸담았던 모든 세계가 사라지고, 그의 주변 풍경이 노인 요양원으로 대체되었을 때 그의 존재는 병든 노인 이상이하도 아니다. 영화는 프랭크의 이 말년 세계를 애써서 삼십 분간 보여준다. 그는 관을 쇼핑한 뒤 납골당을 정한다. 간호사에게 '아직 살아있지?'라고 농담을 건네고, 죽기 전에서야 러셀이 성당에 갔던 것처럼 신부를 만나 기도를 한다. 하지만 그는 어떤 반성과 후회와 자책의 말도 하지 않는다. 신부에게 문을 조금 열어놓고 떠나달라는 부탁으로 끝나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외부 세계와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연결되어 있고 싶어하는 노인의 간절함을 목격하게 만든다. (덧붙이자면 이 마지막 부분의 로버트 드 니로 연기는 영화 전반에 비해 참 훌륭하다)     


무려 로버트 드 니로가 주인공 프랭크를 연기하고 제목도 <아이리시맨>이지만 감독은 그가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는 것에 엄격한 윤리적 기준을 들이대는 듯하다. (아마 프랭크의 고백을 정리한 원작 <I heard you paint houses>와 전혀 다른 방향일 것이다) 생존하기 위해 노력하는 처연한 가장을 그릴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는 순간이 많다. 하지만 왜 그러지 않는가? 그게 영화의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부패한 세계를 날 것처럼 그려왔던 감독은 이제 이런 부패한 세계가 막을 내려야 함을 스스로 선언한다. 거짓과 부패가 관에 들어갈 시간. 그들의 시대는 저물어야만 한다. 부족한 점이 있다면 감독이 더 호되게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장 큰 증거로 페기의 시선을 윤리적 알리바이로 사용하면서 그녀에게 더 강한 힘을 주지 않는다. 페기는 너무도 무력하고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그녀는 왜 더 세차게 아빠를 비난하지 못할까? 아빠가 보호해 준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그녀가 욕을 했을 때 오히려 프랭크에게 변명할 여지를 주기 때문에? 그녀의 다문 입은 프랭크에게 어떤 감정을 가져야할지 헷갈리는 관객들의 입마저 다물게 만든다. 아버지의 역사를 평가하는 듯한 그녀의 시선은 스크린 밖에서 그를 평가하는 관객의 시선과도 통하기 때문이다. 

마틴 스코세이지는 언제나 범죄자의 말로를 비극적으로 그려왔다. 그에 비하면 세 시간 반의 러닝타임 동안 펼쳐지는 <아이리시맨>의 결말은 덜 비극적이지만 훨씬 허무하고 덧 없다. 호파의 아들이 암살자 샐리와 나누는 '생선 이름'을 둘러싼 대화는 이름이 뭐든 간에 싸잡아 마피아로 기억되는 그들의 처지에 관한 비유같다. 스콜세이지는 존재에 대한 허무 개그같은 이런 대화를 계속 반복하며 역사속 인물의 삶을 아이러니인양 매듭지으려 한다.  무력한 페기의 시선과 이런 나이브한 결말은 연출자에 태도에 대한 의심을 지우지 못하게 만든다. 인물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것같지만,  살다보니 이렇게 살게 된 세대니까 이해를 바라는 그런 양가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 트럼프 시대에 어울릴 법한 역사여서 영화화했다는데 그 역사의 그늘을 더 그늘지게 만들었던 한 남자에 대한 감독의 시선은 이상할 정도로 (아마 앞으로 죽을 날만 기다리는 노인이라는 점 때문에 더) 관대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아이리시맨>은 스코세이지 영화 중 가장 미적지근한 영화로 남는다. 뜨겁지도 않고 차갑지도 않다. 그의 이전 영화들을 좋아한다면 선뜻 받아들이기 힘든 온도다. 



+영화 조사 하다가 발견한 호파 관련 메모: 저임금에 위험한 일이었던 트런 운전이 1960년대 노조 등장으로 임금이 두 배가 넘는 고결한 노동으로 바뀌었다. 일을 그만두고 트럭 운전을 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의료보험과 연금 제도가 안정적으로 정착. 그 당시 고용주들은 파업을 방해하려고 깡패들을 고용하는 일이 빈번했는데 노조가 마피아와 손잡게 되면서 역공격. <좋은 친구들>에 보면 마피아의 일 중 하나로 기업주가 마음에 안 들 때 파업을 선동한다는 말이 나온다. 50년대 대기업들은 정치적으로 이런 노조를 파괴하기 위해 로비를 하며 공을 들였는데, 그 노력의 일환으로 노조의 부패에 초점을 맞췄다. 호파의 뒷거래가 탄로난 연유이기도 하다. https://www.washingtonpost.com/opinions/2019/11/30/jimmy-hoffa-helped-create-american-middle-class-unions-today-should-learn-h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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