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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sgirrrl Mar 14. 2020

코로나 바이러스와 뉴욕

COVID19 시대에 뉴욕에서 산다는 것 

뉴욕시티 홈페이지에서 캡처

3월 13일 뉴욕시티는 코비드19 관련 비상 사태를 선언했다. 우선 500명 이상이 모이는 행사는 3월말까지 금지다. 발표가 나는 동시에 봄을 알리는 굵직한 행사들의 취소/연기 이메일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일단 3월말에 시작하는 뉴디렉터스/뉴필름스영화제와 4월 중순에 열리는 트라이베카 영화제가 연기되었다. 메트로폴리탄, 휘트니, 모마, 구겐하임 모두 3월 13일부터 문을 닫는다. 링컨 센터 시네마테크도 모든 일정을 중단했고 안젤리카같은 비교적 소규모 예술영화관은 서로 간의 안전한 거리 확보를 위해 관객 수를 50퍼센트만 채우겠다고 공지했다. 브로드웨이 공연은 모두 중단. 새로운 자동차들이 선보이는 뉴욕 오토쇼도 연기. 유명한 뮤지션들의 오천명 이상 수용하는 공연들도 하나둘 취소되고 있다. 대학과 종교 서비스가 모두 중단되거나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가운데, 뉴욕시장은 유독 공립 초중고 학교의 폐쇄 조치를 꺼리고 있다. 공립 학교 학생들의 삼분의 이 가량이 저소득층이고 이들은 학교에서 밥을 먹고 의료 도움을 받기 때문에 집에 격리될 경우 더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게 이유다. 보통 이들의 부모는 모두 일을 하고 있고 그 일은 유급 휴가나 의료 베네핏이 없는 경우가 많다. 아이를 돌보기 위해 일을 쉬게 되면 가정 경제에 엄청난 타격을 가져올 수 있다. 하지만 다른 부모들은 이 결정에 격렬하게 반발하고 있다. 공립학교 아이들의 바이러스 노출과 전파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 뉴욕타임즈 기사에는 학교 문을 닫되 힘든 아이들에게 식사와 각종 도움을 제공하는 부분만 유지하면 안되겠냐는 대안적 댓글도 달린다. 그냥 위험하다고 판단해 닫아버릴 수도 있을 텐데 여러가지 측면을 함께 생각해서 결정을 내리는 것을 보고 도시 정책 결정권자들에 대한 존경심같은 게 들었다. 지하철도 마찬가지다. 비상 사태가 생기면 대중교통을 폐쇄하는 게 뉴욕시티의 프로토콜이라는데 시는 이를 재고한다. 자동차가 없어 지하철로만 출퇴근을 해야만 하는 승객들을 먼저 생각하겠다는 것이다. 아마 치사율이 높은 바이러스였다면 결정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안젤리카 필름 센터의 안전 수칙 공지 

몇 주 사이 뉴욕주 및 뉴욕시의 감염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미국 언론은 계속 미국이 충분한 테스트를 시도하지 못하고 있다며 한국의 사례와 비교해서 비판을 하고 있다. 테스트를 받으려면 먼저 주치의나 내과의에게 가서 테스트를 받을 만한지 확인을 받아야하는데 이 조건이 까다로워서 아무나 테스트를 해주지 않는다. 결국 심각한 상황이 되서야 테스트를 받고 확진 판정이 나는데, 문제는 이 바이러스가 증상이 드러나기 이전부터 전염이 시작된다는 데 있다. 감염 확진자에게 노출되었을 경우 14일 동안 자가 격리를 시행하고 상황이 악화되면 병원을 방문하라는 게 현재 기본 조치다. 감염자의 동선은 공개되지 않으며 아마 노출 가능자들에게만 따로 공지가 전달되는 듯 하다. 현재 학교 선생인 지인이 감염 학생에게 노출되어서 자가 격리 중이다. 이 상황에서 하루 일만명 테스트를 목도하고 있는 한국인이라면 이런 질문을 떠올릴 법하다. "왜 바로 테스트를 해서 감염 여부를 진단하지 않이? 모르고 있다가 가족들도 감염되면 어쩌라고?" 다시 답은 원점으로 돌아가는데, 증상이 나타나지 않으면 테스트를 받을 수 없다. 논리적으로는 맞는 절차인데 불안감은 해소되지 않는다. 테스트 키트도 부족한데다 너도 나도 테스트를 받겠다고 나서면 사회 문제가 될 수 있다. 어떤 결정이 리스크가 더 적고 감당 가능한 것일까. 헷갈린다. 

아무튼 그리하여 얻을 수 있는 건 데이타 기반 예측뿐이다. 무제한 테스트는 힘들고 바이러스는 계속 퍼질 것이다. 그리고 감염자는 더 늘어날 것이다. 개인 입장에선 접촉을 최소화하는 수밖에 없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집에 머무르는 게 최선이다.


불안은 다른 측면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바이러스 전파자로 아시안을 지목하며 폭행을 했다는 뉴스가 보도되면 바이러스보다 인종 혐오 범죄에 노출될까 더 걱정이 되기도 한다. 거리에는 증오심을 괜한 사람에게 발산하는 이들이 있다. 몇 번 그런 비슷한 일을 접할 때마다 대중교통에서나 거리에서나 주변인들은 피해자를 지키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나는 커뮤니티에 대한 믿음이 좀 강한 편이다.  

한편에서는 사재기 열풍이다. 어제 뉴욕시티의 비상사태 알람이 시작되면서 맨하탄 수퍼마켓에 사람들이 몰려야 식품들이 동나기 시작했다. 내가 사는 퀸즈에는 맨하탄보다 수퍼마켓이 많기 때문에 걱정이 덜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시아인들이 한인 마트에 몰려와 쌀과 고기를 싹쓸이 했다. 심지어 장기전을 앞두고 김장까지 담근다는 분들이 등장해 '아 역시 코리안'이라며 웃기도 했다. 마스크와 손세정제는 점점 구하기 힘들어진다. 뉴욕주지사는 수감자들이 만든 손세정제를 대안으로 내놨다. 수감자들의 노동력을 그렇게 착취해도 되냐는 인권운동가들의 물음에 수감자 훈련 프로그램 중 하나라고 답했다. 누가 무엇을 하든간에 실로 다양한 노력과 생각들이 교차하는 상황이다.


어제 남편의 추천으로 들었던 뉴욕타임즈 팟캐스트에서 이런 전염병 관련 미국인의 멘탈리티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일명 '록 허드슨 모먼트'라는 게 있다고 한다. 록 허드슨은 50년대부터 80년대까지 활동했던 미국 스타 배우이자 아이콘 같은 인물인데 80년대 중반에 에이즈로 세상을 떠났다. 미국인들이 모두 아는 스타가 에이즈로 죽었다는 건 굉장한 충격을 안겼으며 이때서야 에이즈가 굉장히 자기네와 가까운 병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에이즈 또한 시대를 암흑에 몰아넣은 팬데믹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었음에도 호모포빅 무드까지 더해져서 남의 일처럼 여겼던 것이다. 그만큼 전염성 있는 병의 영향력을 깨닫기까지 시간이 걸린다는 것. 록 허드슨 모먼트는 전염병이 내 지척에 와 있다는 깨달음의 순간을 의미한다. 이미 대도시에서는 확진자들이 많아서 그 심각성이 공유되고 있었지만 미국 전역에 위기감을 고조시킨 순간은 톰 행크스의 감염이 알려졌을 때라는 설이 있다. 아무튼 팟캐스트 진행자의 말로는 깨닫기까지 시간은 걸리지만 그 모멘트부터는 꽤 조직적으로 대처를 한다는 게 미국인의 강점이라고 했다. '빨리빨리' 나라 출신자에게는 꽤 답답한 속도이지만 미국인의 대처를 믿어볼께...(라고 하기엔 현 대통령이 너무나 공중 보건과 구제에 관심이 없다...)


잠시나마 Public Health라고 불리는 공중 보건 공부를 했기에 이 모든 진행과 결정들을 비교적 패닉 없이 관찰하고 수용하고 있는 것같다. 공식적으로 팬데믹이 선언되자마자 각 국가들이 보여주는 대처법도 신기하고, 이 시점에 한때 1세계라 믿었던 유럽과 미국이 보건 정책과 대처에 있어 취약성을 드러내는 것도 놀랍다. 어떤 정부의 어떤 시도들이 2020 팬데믹 사태에 대안이 될 수 있을까. 현재 한국은 대처나 데이터에 있어 국제사회에서 엄청난 신뢰를 얻고 있는데 질본의 영역이 아닌 행정의 영역에서도 믿을 만한 본보기를 보여줄 수 있을지 궁금하다. 이 사태가 정리되고 나면 보건과 복지에 대한 나은 의견들이 쏟아지기를 바랄 뿐이다. 특히 미국이 자기네 헬스케어 시스템에서 취약점을 확실하게 깨닫을 수 있으면 아주 고무적일 것같다.   


개인적으로 3월에는 여러가지 계획한 일들이 있었다. 켈리 리차르트의 신작 First Cow도 보고 싶었고, 미디어 센터의 강좌도 하나 들어야 하고, 작년에 어렵게 예매한 톰 요크의 공연도 잡혀 있다. 무엇보다 이민온지 10주년이 되는 시기라서 어떻게든 축하를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지금 심정으로는 어디든 나가고 싶지가 않다. 마음은 계속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고 싶어한다. 연락을 주고 받고 안부를 묻는다. 목숨을 위협하는 치명적 전염병은 아니지만 지인들이 잘 지내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진다. 인간의 마음이란 이런 거구나, 하며 배우고 있다.  


+ 덧: sns에서 각 세대별로 바이러스 부르는 경향을 봤는데 엑스세대만 코비드19라고 부른데. ㅎㅎ 아 정말 빼박이다. 참고로 밀레니얼은 the rona. 10대는 부머 리무버 boomer remover라 부른다해서 논란 중.  


#뉴욕 #코로나바이러스 #2020 #2020년에인류의시간잠깐멈춤 #돈패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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