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이 자오의 <노매드랜드>
Makenzie: My mom says that you're homeless, is that true?
Fern: No. I'm not homeless. I'm just houseless. Not the same thing, right?
맥켄지: 엄마가 선생님이 홈리스라는데 맞아요?
펀: 아니야. 나는 홈리스가 아니라 하우스리스란다. 그 둘은 다른 거란다.
펀은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그와의 추억이 담긴 집을 정리한 뒤 소중한 물품들만 트레일러에 싣고 떠돌이 생활을 시작한다. 석면 공장으로 흥했던 동네는 공장 폐쇄로 낙후된지 오래이고, 대화를 나눌 사람 하나 없는 이 곳에서 펀은 더이상 머무를 이유가 없다. 집을 떠난 펀은 아마존이 시즌 노동자에게 제공하는 트레일러 파크에 처음으로 트레일러를 세운다. 펀은 이 곳에서 물류를 분류하고 포장하는 일을 하면서 새로운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트레일러 안에서 삶을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날 들렀던 수퍼마켓에서 자신이 가르쳤던 제자를 만나는데 아이는 묻는다. 홈리스가 되었다면서요? 아니, 나는 홈리스가 아니라 하우스리스야. 펀의 이 한마디는 그녀의 현재 삶을 알려주는 중요한 대사가 된다. 집을 잃고 생활하는 사람이 아니라 토지 위에 짓는 물리적 집에서 생활하지 않는 사람. 마치 빚더미 집을 싸안고 사는 하우스푸어의 반대편 개념같다.
시즌 일자리를 따라 이동하며 미국의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삶. 그것이 펀이 선택한 인생이다. 트레일러 파크에 주차를 할 때마다 펀은 자신과 같은 인생을 선택한 트레일러 이동족들을 만나고 그 커뮤니티의 일원이 된다. 거의 장년과 노년층이며 집에 갇혀있거나 빈둥거리기보다 자연을 마주하고 싶어 특정한 삶을 선택한 사람들이다. 어떤 이는 암 선고를 받고 병원에만 갇혀 있기가 싫어서 돌아다니는 삶을 선택했다. 이들은 재산이 그리 넉넉하지 않고 트레일러를 몰며 소박한 물물교환을 하고 검소하게 음식을 먹고 타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들이 움직일 때마다 거대한 자연이 그들 삶의 풍경이 된다. 멋있는 노매드가 아니라 어떤 또다른 스피리추얼한 삶이다.
두드러지게 계급 문제를 짚지 않지만 영화에는 가진 것이 별로 없는 미국 장년의 삶이 반영된다. 모아둔 돈이 없어 지속적으로 파트타임 일자리를 찾아서 일해야 하고, 노인 의료보험 수혜를 받기 전 나이라 의료보험 상태도 애매하다. 아이들을 다 커서 자리를 잡고 있지만 홀로 살면서 그들의 짐이 되고 싶지는 않고.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야할지 막막한 사람들. 그리고 저밖에는 인간보다 위대한 자연이 있다. 일자리, 자유, 독립, 소셜 라이프를 함께 할 수 있는 삶. 멋진 선택이라기보다는 어떤 처지의 사람들에게 당연한 귀결처럼 보인다.
뉴욕에서만 생활했던 나는 요세미티 국립공원으로 여행을 다녀온 후에 미국의 삶에 대해 재고를 하게 되었다. 뉴욕이나 샌프란시스코 같은 도시가 미국에서 제일 멋진 곳인 줄 알았는데 미국의 진정한 볼거리는 압도적인 자연이었다. 작은 나라에서 경험할 수 없는 대륙의 스케일로 펼쳐진 자연. 인간의 손이 닿기에는 너무 광활해서 어쩔 수 없이 펼쳐져버린 자연 앞에서 생전 처음 가져보는 경외감같은 걸 경험했다. 인간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수백년을 살아온 나무 앞에서 얼마나 찰나의 인생인지, 우주의 생명 중 하나로서 어떤 겸손함같은 걸 같게 되었다. 그리고 팬데믹이 터졌을 때 더더욱 인간으로서 반성같은 걸 하게 되었고 인간이 사라져도 자연은 그대로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게다가 미국인에게 자유란 개인이 독립된 주체로서 행동을 선택하고 책임을 지는 것이다. 그것은 어떤 규범이나 타인의 시선이나 커뮤니티의 질서를 위한 게 아니라 오롯이 자기자신이 되는 것이다. 또한 미국의 뿌리 깊은 계급 문제도 있다. 몇십년 사이 지역 공장들이 문을 닫으면서 지역 일자리에 의존했던 많은 중장년들이 일을 잃고 가난해졌고 의료보험 혜택은 여전히 한정적이며 이런 문제에 대해 싸우고자 하는 사회적 연대 의식은 많이 부족하다.
클로이 자오가 켄 로치였다면 시즌 일자리로 연명해야 하는 트레일러 워커들의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삶에 대해 모순을 짚어냈겠지만, 클로이 자오는 대신 그들의 선택을 존중하며 그 선택을 가능케하는 미국의 스피릿을 편견없이 관찰한다. 작위적인 서사를 만들어내지 않기 위해 실제 그런 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배우로 기용해 그들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극에 풀어넣는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산발적인 일자리를 찾아서 돌아다녀야 하는 삶의 단편이 펼쳐지는 가운데, 현실에 적응하면서도 선택한 삶에 피로해하지 않고 오히려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감동을 준다. 곤궁한 삶에 굴복하지 않고 그 안에서 행복을 찾아내는 정신. 평온하게 집에 앉아서 손주들의 방문을 기다리거나 요양병원으로 마무리되는 노년을 거부하고 생의 마지막까지 모험을 택하는 사람들. 복지가 엉망인 대자연의 나라 미국이여서 가능한 부분이고 다른 대륙에서 온 클로이 자오 감독은 그 지점에서 미국만의 특징을 포착해낸다. 그들의 감정은 다양하다. 상실감, 고독, 소소한 기쁨과 행복, 불안, 긍지 등등 복합적인 감정들이 인물들을 오간다.
나는 이 영화가 현재 미국의 삶에서 찾을 수 있는 최대의 긍정적 영화라고 생각한다. 현실의 삶을 미국인스럽게 수용하는 것.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향해 들고 일어나는 게 아니라 개인이 행복해할 세계로 자신을 이끄는 것. 클로이 자오 감독은 미국인의 이 자유 의지가 아마도 자신의 조국과의 차이점이라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 영화를 보고 나는 새로운 세계, 새로운 커뮤니티로 들어가는 것에 대해 늙어서까지 두려워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떤 삶을 어떻게 살게될지 모르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내가 원하는 것을 추구하고 그걸 실행할 능력을 계속 지니고 있기를 바라며 뭐라도 하나를 더 배워놓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미국에서 은퇴자금 모으는 것은 현재 굉장한 화두라서 젊은 분들은 편안한 노후 생활을 위해 노후 설계를 하는데 열심이다. 병 한번 걸려 빚더미에 앉는 가족들을 보며 비롯된 위기의식이라고 본다. 이 척박한 행복의 시대에, 돈에 대한 불안이 가장 큰 현실의 불안으로 자리잡은 지금, 우리는 어떻게 계속 존엄함을 지킬 수 있을까. <노매드랜드>는 노매드라는 라이프스타일을 다룬 판타지 영화가 아니라, 펀의 선택을 통해 사회의 궤도에서 비껴나도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영감을 주는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