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에 지친 그녀들의 자존감을 위하여.
또래보다는 조금 늦게 사회생활을 시작한 친구였다. 웬일로 같이 퇴근을 하게 된 길에 '나 오늘을 수고한 나에게 맛있는 걸 선물해 주고 싶어.'라고 말하는 친구의 속뜻을 알아차리고 '저녁 먹고 들어갈까?' 하고 말을 건네며 우리가 향한 곳은 닭발집이었다. 그다지 닭발을 즐기지 않고 지나치게 짜고 매운 것을 피하고 있는 나였지만 인턴 생활을 하며 자취를 하고 있는 그녀가 생활비를 아끼기 위해 도시락을 싸오고, 저녁도 대충 때운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친구가 먹고 싶어 하는 것을 같이 먹고 싶었다.
퇴근 후 간단한 맥주 한잔과 신선한 숙주가 가득 올라간 매콤한 국물 닭발을 자작자작 끓고 있었고, 짭조름한 날치알 주먹밥을 뭉치며 친구는 이 평범한 일상 조차 즐겁다는 듯이 '이런 거, 오랜만이야.'라고 이야기했다. 20대, 취업률은 떨어지고 어렵게 들어간 회사에서 마주한 것은 몇 개월 간의 인턴생활 그리고 100만 원 남짓 되는 급여. 통장에 월급이 입금이 됨과 동시에 허겁지겁 우리는 월세를 내고 전달의 카드값을 내고, 어쩌면 엄마한테 빌렸을 부족했던 생활비를 갚으며 한숨을 내쉬는 일상을 반복하면서 언제부터 퇴근 후 직장동료와의 소박한 저녁식사와 담소가 '오랜만'의 경험이 되어버린 걸까.
늘 조용한 듯 발랄하게 귀여운 내 친구와 '이제 드셔도 됩니다'라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한동안은 말없이 닭발과 주먹밥을 두고 숟가락질을 하기에 바빴다. 계란 값이 비싸 계란탕 대신 나온 누룽지탕을 한 숟갈 떠넘기며 매운 기를 가시고 있을 때 즈음, 친구가 말을 이었다.
'너를 보면 내가 가지지 못한 부분을 가지고 있는 게 많아서 늘 부러워.'
뜬금없는 말이었다. 대화를 많이 나눠보지도 못했고, 동갑이었지만 아무래도 인턴인 친구가 혹여나 마음 상하고 속상해할 일이 일어날까 조심스럽던 와중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늘어놓은 말들은 뜻밖의 것들이었다.
그녀는 지방에서 어렸을 때부터 상경하여 항상 자취를 해왔었고, 밝고 긍정적인 모습이었기에 늘 당차게 잘 사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늘 외롭고 고독하다고 했다. 때로는 만날 사람 하나 없이 집에서 멍하니 있는 주말보다 그래도 우리와 몇 마디라도 섞을 수 있는 회사로 출근하는 평일이 좋다고 했다.
'너는 집에 들어가면 어디에 앉아있어?'
'나? 주로 침대에 누워있거나.. 안락의자에 앉아서 티브이 보고 그래.'
'아.. 그렇구나.'
또 다른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자기는 가끔 방 가운데 앉아서 목놓아 운다고 이야기했다. 평소 본인의 생각을 잘 이야기하지 않고 감정을 마음에 차곡차곡 담아두는 그녀는 한 달에 한두 번씩은 아무도 없는 휑한 집에서 소리 내어 울며 마음을 추스른다고 했다. 울고 나면 마음이 이상하게 개운해지더라며 멋쩍게 웃는 그녀의 표정이 갑자기 외로워 보이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 였다.
그러면서, 늘 혼자 살면서도 외로워하지 않고 열심히 사는 것 같은 내가 부럽다고 했다. 본받고 싶다면서.
때로는 마치 어떤 그림에서처럼 사람들이 모두 검은색이고 자기 혼자 마치 다른 세상에서 온 종처럼 홀로 덩그러니 남겨진 것 같다는 그녀의 말에 한동안 나도 스스로를 추스르기 힘들었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그녀가 보는 나는 만사 다 괜찮고 씩씩해 보인다고 했다. 사실은 아닌데.
어디서 봤는지 기억은 나지 않은데, 어느 에세이에서 작가가 말하길. 혼자 사는 그녀는 보지 않는 신문을 구독한다고 이야기했다. 어느 날 갑자기 우리 집 문 앞에 지난 일자의 신문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면, 그것을 지나치다 본 사람이 의아하게 여긴다면, 혹여나 이 집에 사는 사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가?라고 생각해주지 않을까 하고. 일종의 '생존 신고'와도 같은 것이라고.
작년 이맘때 즈음 나는 평일의 투잡족이었다. 바삐 퇴근을 하며 알바를 하러 길을 가던 중에 사고가 날 뻔한 적이 있었다. 바로 내 코앞에서 급정거한 자동차를 마주하며 내가 느낀 것은 '나 이렇게 다치면 누구에게 연락을 해야 하지?'였다. 저 멀리 지방에 있는 엄마, 이제는 뿔뿔이 흩어진 친구들, 개인적인 일로 연락 하기엔 조금 애매한 지인들. 결국은 연락할 사람은 아르바이트하러 가는 곳의 사장님 뿐이겠구나 싶어, 이런 생각이 들어 너무 가슴이 아팠더라며, 사고 날 뻔한 이야기를 사장님에게 해주며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난다.
이 두 이야기를 덤덤히 해주며 '사실은 나도 괜찮지 않았어'로 끝맺음을 해줄 때 즈음 친구는 나를 빤히 보며 곧 울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언뜻 '나만 그런 게 아녔구나'하는 안도의 기색도 조금 스쳐간 것 같았다.
'모두가 저마다의 사연이 있네요. 보이는 것과는 달리..' 고개를 끄덕이며 남은 두 덩이의 주먹밥을 사이좋게 나누어 먹었다.
사람은 누구나 외롭고 쓸쓸하다. 모두가 그렇게 보이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일 뿐이다. 참 희한한 것은 고독이 찾아올 때면 어김없이 '자존감'이라는 친구와 함께 손을 잡고 마실을 나온다. 괜찮다고 애를 쓰면 쓸수록 자존감은 곤두박질을 칠 때가 있다.
나이가 들 수록 회의감이 느껴지는 '인간관계'. 하나둘씩 멀어지게 되는 친구들을 지켜보며 오래된 친구가 좋은 친구가 아니었음을 알게 되고, 시끌벅적하게 사람들과 웃고 떠들면서도 헤어지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급작스럽게 찾아오는 공허함에 어쩔 줄을 모를 때도 있다. 여자 친구 혹은 남자 친구가 있어도 외롭고, 없으면 없는 대로 사랑받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는 기분에 자괴감이 든다. 점차 나의 감정을 드러내기엔 세상이 나에게 날을 세우고 있어 점점 내적으로 꾸역꾸역 소화를 시킨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우리는 외롭고 쓸쓸하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부스스 아침을 맞이한 내 모습이 비친 거울을 빤히 들여다보며 그 안에서 떨어진 자존감을 목격하곤 한다. 나는 이 모든 것들이 어른이 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10대 시절에 우리가 꿈꿔오던 20대는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 당당하고 화려했고 패기 넘치는 회사 생활과 차곡차곡 쌓여가는 경력의 화려한 커리어 우먼이었을 것이다. 현실은 100만 원 남짓 되는 월급을 쪼개어 사는 궁핍한 생활과 야근, 쌓여가는 피로 앞에서 퇴근 후에는 화장이라도 겨우 지우고 잠들면 다행이다. 저마다 힘든 생활 앞에서 친구들과의 사이가 좋을 리는 만무하고, 한 층 까칠한 얼굴로 연인과는 권태기를 선언하며, 어떻게 하면 직장 상사의 비위를 잘 맞출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돈 벌기도 힘들고 내 사람을 벌기도 힘든 시대이다. 외로울 수밖에 없다. 적어도 요즘의 우리들은.
이런 외로움을 '극복'한다고는 표현하고 싶지 않다. 외로움은 극복되지 않은 대상이다.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며, 일종의 소강상태로 마무리될 뿐 감기처럼 갑작스럽게 방문한다. 다만 괜찮은 척하며, 외로움이 찾아오더라도 나의 자존감이 덜 다치게끔, 마음의 소용돌이가 얕게 치게끔 스스로를 단련할 뿐이다.
친구와의 대화를 곰곰이 되씹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뭉클해져 친구에게 꾹꾹 눌러 카톡을 보냈다. 단순히 나는 너를 직장 동료 사이로만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내 사람'이라는 건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거라고. 나는 너를 '내 친구'로 생각한다고. 언제나 힘들고 지칠 때는 귀 기울여 너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다고. 평일만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주말도 공유할 수 있는 사이가 되었으면 한다고. 진심이라고.
말 그대로 내가 친구에게 한 말은 정말 진심이었다. 외로워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지금 나 또한 이 글을 쓰면서 새벽이라서 인지, 글에 취해서 인지 약간의 울적함과 외로움이 밀려오는 듯 하지만. 말해주고 싶다.
어딘가에는 나를 위로해줄 사람이 있고, 나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있다고 말이다. 그것이 스스로가 되든 친구가 되든, 부모님이 되든 말이다. 그리고 외로움이라는 간사한 그 녀석에게 쉽게 내어줄 자존감이 아니라고. 충분히 우리 스스로는 당당하고 열심히 살고 있으니 걱정 말라고 꼭. 꼬옥.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