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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니타 Sep 25. 2017

스스로의 인생을 책임지기는 너무 힘들다.

홀로서기 중인 20대 직장인의 애환.

바로 전 회사는 나름대로 괜찮은 회사였다. 의류 업계에서 나름 중견기업에, 그래도 옷을 좀 좋아하는 여성이라면 이름 대면 알 법한 여성복 브랜드였다. 너무 기뻤다. 이직하게 되었을 때 엄마가 정말 뛸듯이 좋아했다.

녹록치 않은 삶이지만 그래도 혼자 빠듯하게 월세를 내 가면서 소소하게 대출도 갚아가면서, 엄마는 손이 참 안가는 첫딸이라며, 뭘 해도 잘 할 애라고. 대기업 간 소위 '엄마 친구 딸' 보다 나를 더 자랑스러워 했다.

뭘 해도 스스로 잘할거라면서. 역시 내 딸이라면서, 내가 잘 키웠다면서.


근데 생각보다 힘든 곳이었다. 일이 차라리 힘든 곳이면 수긍했을텐데, 그게 아니었다. 열심히 쌓아온 직무 경력으로 부족한 학벌이지만 성공적으로 이직했다고 생각했는데. 현저하게 낮아진 직무 만족도 부터 해서, 무엇보다 사람이 나를 정말 힘들게 했다. 시기와 질투, 책임 전가. 언뜻 보면 여느 회사에서 있을 법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지만. 스토리를 하나씩 늘어놓자면 한도 끝도 없었다. 입사 초에 이야기 했던 연봉보다 현저히 낮음을 알게 된건 회사에 힘겹게 마음을 붙이고 일한지 두 달이 되었을 때 알게 된 사실이었다. 나에겐 별 다른 선택이 없었고, 호기롭게 이의를 제기할 형편도 되지 못했다. 철저한 을의 입장에서 울며 겨자먹기로 연봉 계약서에 사인을 한 뒤, 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꼭 1년을 채우고 퇴직금과 함께 회사를 그만두겠노라고 다짐했다.


퇴근할 때 마다 울면서 집에 돌아가길 반복했다. 빠듯한 생활비와 학자금, 그리고 갚아야 할 빚 덕분에 한 푼이라도 더 벌고자 시작한 투잡도 나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볼을 타고 흐르던 눈물을 재빠르게 훔치고 벌건 눈으로 알바를 가기를 얼마나 반복했는지 모르겠다. 자존감은 바닥을 쳤고, 친구들과 기울이는 술잔 앞에서는 이 월급을 받아가면서 이렇게까지 수모를 당해야 하냐고 주사를 부리기 일쑤였다. 일요일이면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렸고, 정신과 상담까지 알아볼 정도로 겉으론 워라밸이 훌륭한 회사에 다니고 있었으나 내 마음은 병들어가고 있었다.


이를 악물며 공부했다. 졸업하면 좀 더 나아지겠지. 어제보단 내일이 나에게 더 나은 미래가 있겠지. 하고.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나도 모르는 사이 타성에 젖어, '버티기'에 돌입했을 즈음. 회사에선 매출 부진으로 인한 인원 감축 소문이 흉흉하게 돌고 있었다. 그렇게 보이지 않는 손에 떠밀려서 내 스스로 퇴사의 길을 선택하고 말았다. 엄마는 내가 아직도 학교 졸업장과 동시에 호기롭게 이직 결심한 줄 알고 있지만. 사실과는 매우 달랐다.


두 달 남짓한 백수 기간동안 얼마나 전전긍긍했는지 모른다. 화창한 올 해 여름, 나는 집에만 있었다. 밖에 나가고 싶지 않았다. 모두가 붙을 것이라고 확신했을 정도로 내정되어 있었던 회사의 최종 면접에서는 압박 면접 그 이상의 인격 모독 면접을 맛보고 허무하게 떨어졌다. 매일 이력서와 자소서를 새로 썼고 매 주 금요일이면 면접을 두 곳씩 빡빡하게 일정을 잡아 보고 다녔다. 물론 좋은 결과는 있지 못했다.


자취생으로서 내 스스로의 삶을 혼자서 감당해야 했기에, 나에겐 시간이 많이 있지 않았다. 여느 집처럼 눈치는 보이지만 그래도 엄마가 해주는 따뜻한 밥을 먹으며, 걱정 없이 내 한 몸 뉘일 수 있는 방에서 백수의 삶을 한탄하며 우울해 할 수도 없었다. 적은 월급이어도 나에게는 따박따박 입금될 곳이 필요했고, 어느 조직의 사회 구성원으로서 내가 그래서 쓸모 있다는 느낌을 받아야만 했다. 그래야지만 내가 비로소 사람들을 만나고 다닐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결국 예전만한 규모의 회사는 아니지만, 어느정도 직무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판단된 회사에 적게나마 연봉을 올리고 입사하게 되었다. 작지만 조직은 조직인지라, 적응하는데 여러모로 고충을 겪고 있고, 정신없이 인수인계를 받으며 4주의 시간을 보냈다. 사람들은 다소 별나다고 느껴지긴 했으나, 서로 피해를 주지 않으며 나름 따뜻한 말이 오갔다. 다닐만한 회사라고 느껴졌다.


엄마는 내가 이 회사에 출근하기로 했다고 했을 때. 어찌나 혀를 찼는지 모른다. 좀 더 알아보지. 더 좋은데 갈 수 있지 않아? 탐탁치 않아하는게 느껴졌다.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버럭하고 끊은 뒤에 휴대폰을 가만히 바라보며 눈물이 차올랐다. 여유있는 취준생이란 당연히 없겠지만, 정말 하루를 초조하게 보내는 생계형 취준생인 내가 찾은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했는데. 칭찬이나 축하를 바라진 않았어도, '그래 수고했어. 열심히 해보자.' 라는 응원을 듣고 싶었을 뿐인데. 가장 가깝고 의지하는 엄마에게 응원받지 못하는 시작이란 우울 그 자체였다.


매일이 바쁘고 긴장되고 촉박한 직장생활을 보내고 있음에도, 나는 지금 이전보단 회사 다니는 것이 훨씬 즐겁다. 좋은 회사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나쁜 회사도 아니라고 사람 좋게 웃으시던 우리 팀장님의 말씀을 나는 굳게 믿는다. 아직까지는 좋은 사람들이 나쁜 사람들보다 더 많다고 생각하고 싶은 나의 마지막 희망에서다.


그럼에도 나의 걱정은 여전히 계속된다. 갚아야 할 대출금의 만기일은 다가오고, 당장 내야할 월세도 생각보다 길어진 (남들이 보기엔 고작 두 달이지만) 백수 생활 탓에 메꾸기 급급하다. 당장 다음달 월세를 낼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사람들과 만나서 한 끼 먹어야 되는 밥 값이 아까워서 굳이 만나지 않아도 될 사람은 잘 만나지 않게 된다. 좁고 싶은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나의 지금의 모습은 비단 성향이나 취향의 문제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친한 친구와도 바쁘다는 이유로, 연차쓰기 힘들다는 이유로 가까운 제주도 여행도 쉽게 다녀오지 못한다. 그 돈으로 차라리 집에서 수고한 나에게 치킨 한 마리를 더 시켜먹고 싶다. 3년 째 나의 여름 휴가는 집 근처의 교보 문고에서 책을 읽으며 보냈다. 퇴근하고 친구들과 술 한잔 먹을 시간에, 자격증 공부를 해야 한다며 카페에서 커피 한 잔 시켜놓고 기출문제를 그렇게 풀어댔다.


이렇게 구구절절하게 나의 이야기를 글로 옮기는 이유도, 야근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갑자기 숨이 턱 막혀와서. 당장 나 다음달은 먹고 살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 때문에 식은땀이 흘러서. 이대로는 잠들 수 없을 것 같아서다. 친한 친구에게 미안한데, 나 돈좀 빌려줄 수 있어? 라고 망설임 끝에 꾹꾹 눌러 보낸 카톡에 자괴감이 너무 들어서. 흔쾌히 계좌 알려줘. 라고 말하는 친구에게 미치도록 미안해서. 내 스스로가 너무 못나보여서. 이렇게 나는 글을 쓴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나의 길고 긴 올해의 이야기를 이렇게 풀어놓는 것 뿐이다.


잘 될거야. 라는 말로 나를 다독여오다가. 어느날 갑자기 무너지는날. 그런 날이 바로 오늘이다. 우리는 너무나도 다양한 모습을 하고 청춘이라는 탈을 쓴채 살아가고 있다. 어제보다 나은 오늘이 되기 위해 매일을 노력하고 있지만, 과연 내가 잘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드는 월요일 밤이다. 언제 부턴가 나를 위해 잠시 여유를 주고 방 안에서 밍기적 거리며 이 가을 볕을 즐기는 시간도, 친구와 수다떨며 맛있는 것을 먹는 평일 저녁도, 자기 관리를 위해서 저렴하게 알아 본 필라테스에 다니는 것 조차도 사치처럼 느껴지게 된 걸까.


1인 가구의 비율이 27%를 웃도는 시대이다. 이 중에서 20대 청춘들이 차지하는 비율은 17% 정도가 된다고 한다. 17%에 해당되는 어느 누군가가 퇴근하고 지친 발걸음에, 녹록치 않은 이 삶에 맥주 한 캔이 절실하다면, 이 글을 보고 위로는 받지 못하더라도, 아. 나만 그런건 아니구나. 라는 생각을 가졌으면 좋겠다. 든든한 동지 하나가 생겼다고 여겨주었으면 좋겠다.

두서 없이 긴 글로 나의 궤적 중 일부를 홀가분하게 털어 놓았지만, 여전히 오늘밤 잠을 이루기는 힘들 것 같다. 그럼에도, 내가 최근 인상 깊게 읽었던 책의 구절을 발췌함으로써 마무리를 지어 보려고 한다.

오늘 나는 어제보다 조금 더 불안에 단단해진 마음을 갖게 되었다.


성숙과 미성숙, 메이저와 마이너, 선과 악, 애정과 증오. 어떤 경계에 발을 걸치고 있는 것들은 자주 불안함을 느낀다. 그래서 수많은 경계를 걷는 청춘은 다른 시절보다 더 크게 흔들린다. 하지만 그 흔들림은 무한한 가능성에서 생겨난다. 청춘이라는 시절이 발을 딛고 있는 반대쪽 땅은 가능성이다.

나의 불안을 인생의 어느 한 시절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언젠가 나에게도 지금 이 불안을 부러워하는 날이 올 것을 안다. 그러니 조금은 여유로운 마음으로 흔들림을 즐기기로 했다. 나는 오늘도 경계를 걷는다. 무엇도 아니지만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모습으로, 아직 청춘이라는 이름 속에서.
- 불안한 청춘, 크기만큼 그 무한한 가능성의. <달의 조각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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