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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요가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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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니타 Sep 28. 2021

쉼표가 주는 '들여다보기.'

사실은 많이 아팠다.

 얼마 전에 수련을 하다 크게 다쳤다. 몇 년 전 즐겨 듣던 인사이드 플로우 수업 당시 신나서 플로우를 하다가 오른쪽 햄스트링을 다치는 바람에 좌우 불균형이 맞지 않는 상태였는데, 최근 몇 달간 아사나가 쑥쑥 늘어가는 것 같아서 무리를 하고 난 다음날 걸을 수가 없었다. 천골 부근이 시큰했고 햄스트링이 당겼지만 그러려니 했다. 습관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는 이까짓 고통으로 요가를 거를 수 없었다. 내 아사나는 여느 때보다 성장 중이었고 일등 수련생의 타이틀도 놓치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러던 와중이었다. 아쉬탕가 하프 프라이머리를 꾸역꾸역 하고 늘 안 되는 시르시아사나를 도전하고 있었는데, 햄스트링은 찌를듯하게 고통스럽지, 자세는 안되지, 선생님은 ‘자, 이쯤 되면 해야 해요 재원씨.’ 라고 말하지. 서러울 만큼 서러워진 건 몸뚱이가 아니라 내 마음이었다. 몇 번을 앞구르기 하다. (이젠 머리 서기보단 앞구르기를 더 완벽하게 잘하는 것 같다.) 그 자리에서 욕지거리를 해버렸다. 요가적 라이프와 마인드에 굉장히 이율배반되는 언행이었다. 회사나 친구들 앞에서는 얼큰하게 욕쟁이 할머니의 포지션을 자처하는 나지만, 성역과도 같은 요가원에서 '이름을 말해서는 안 되는 그자.'와 같은 말을 내뱉어버린 것이다.


그날 사바아사나에선 내 자신이 실망스러워 숨죽여 엉엉 울었다.

이후로 나는 요가를 3주째 하지 않고 있다.


 처음 1주 차 휴식을 취할 때는 덜컥 겁이 났다. 첫 번째로는 걷기만 해도 너덜거리는 내 몸이 영원히 회복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서였고, 두 번째로는 ‘어떻게 만들어놓은 몸인데..’ (여기서 말하는 몸은 육체적 날씬함이 아닌 요가적인 몸을 말한다.)라는 아쉬움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은, 내가 요가를 시작했던 이유. 퇴근 후의 스트레스를 도무지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그래서 쉽사리 수강권을 홀딩하지 못하고 억지로 그나마 부담 없는 릴랙스 수업이나 인 요가에는 참석했다. 선생님들은 당연히 걱정했다. 쉬어야지 낫는다면서 휴식을 권했지만, ‘잠은 죽어서나 자.’가 인생의 모토인 나에게 정진의 길을 멈춘다는 것은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이젠 전굴 조차도 안 되는 몸을 이고 지고 도착한 요가원. 부상 후 세 번째 듣는 수업이었다. 우리 요가원은 프라이빗해서 서로 눈인사 정도는 할 정도로 가족적인 분위기인데, 내가 듣는 수업 때마다 선생님들은 '오늘은 환자(나)가 있는 관계로~'라는 말로 운을 떼시며 수업의 시퀀스를 아예 바꾸기 시작하셨다. 그때서야 나는 두 손 두발 다 들고 수강권을 홀딩했다. 나 때문에 다른 회원분들이 수련할 수 있는 기회를 앗아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쉬면서 백신 1차 접종도 하고, 미뤄두었던 통증의학과에도 방문하게 되었다. 다행히 햄스트링이 파열된 것은 아니었지만 상당히 부어 있는 수준이라 정상적인 근육의 상태는 아니므로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했다. 부은 근육은 수축될 때로 되어 신경을 미세하게 압박하고, 그로 인해서 허리나 골반의 통증이 유발된다고 했다. 처방전을 써주시면서 의사 선생님은 본인의 몸을 돌보면서 운동을 해야 한다고 진지하게 덧붙여 주셨다.


 항상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적정의 수준이 '버틸만한' 고통의 수준이라면, 그곳에서 한 걸음 더 스스로를 밀어붙였을 때 비로소 발전이 있다고 믿어 왔다. 힘들지 않으면 충분히 노력하지 않았다고 자책해 왔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도 있겠다. 그래서 매사 열심히 었다. 일도 열심, 공부도 열심. 운동도 열심. 구슬땀 흘린 궤적들이 나를 성장시켜 왔다고 굳게 믿어왔다. 그러는 동안 성장에만 집착해 왔지 나에게 괜찮냐고 물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사실은 많이 팠다.


어쩌면 이번 부상은 마음의 소리를 외면해 왔던 나에게 내려진 특단의 조치일지도 모른다.

노력과 성과는 비단 정비례의 항목이 아님을, 가장 중요한 건 나를 들여다보는 것임을 깨닫게 해주는 쉼표 같은 깨달음이었다.


 그래도 태어나길 부지런 떠는 팔자라 그런지 운동이 너무 하고 싶어서 슬슬 근력 운동을 시작했다.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유산소랍시고 동네 뒷산에 오르기도 하고, 산책을 하며 짧디 짧은 가을도 느껴본다.


 이제는 내 몸에 소리를 무시하지 않게 되자 다친 건 육체뿐만 아니라 마음도 많이 아팠다는 걸 알게 되었다.

쉼 없이 달리지 않아도 괜찮다. 요가도 인생도 태생의 스타트는 다르고, 정진의 속도도 다르다. 우린 조금 더 우리를 아껴주며 가끔씩 괜찮냐고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가을비가 오고 있다. 여름과 가을 사이의 쉼표와도 같다. 새로운 계절이 오고 나면   나를 사랑하는 모습으로 건강하게 매트 위에 게 될 것이다.


그날을 기대하며 오늘도 나마스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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