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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니타 Mar 19. 2023

어쩌다 보니 요가 지도자

우당탕탕 내 인생

 어쩌다 보니 지난 한 해 파도처럼 휩쓸려간 나의 첫 요가 지도자 과정을 무사히(?) 수료하고. 어느새 나는 5개월 차 삐약이 요가 선생님이 되었다. 과정만 마치고 나면 내 삶은 평온한 요가 선생님의 그 자체일 줄 알았는데, 내 삶은 이전보다 더욱 우당탕탕 좌충우돌의 연속이다. 처음 지도자 과정을 시작하게 되었을 때에 그 생생한 현장을 글로 남겨 두겠다는 나의 호기로운 결심은 회사를 다니랴, 그 사이에 정리 해고를 당하고 이직 준비를 하랴, 새로운 회사에서 자리를 잡으랴, 주말 시간을 온전히 할애해서 TTC를 듣고, 과제를 하느라 어느새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바로 수료를 하고 난 뒤에는 감사하게도 수업을 바로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생겨 몇 번의 대강을 거쳐 현재는 직장생활과 요가강사. 부캐와 본캐의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타고 있다. 그 지난 일들은 차차 풀어내 보아야겠다.


 한창 요가에 푹 빠져있었던 지난날 정우성 작가님의 <단정한 실패>를 읽고 나는 작가님이 수료한 요가원에 TTC를 등록했었다. 지도자 과정의 첫 수업날 낯설기만 한 동기 선생님들과 스승님들 앞에서 ’네. 저는 정우성 작가님의 글을 읽고 이곳에 오게 되었습니다.‘라는 첫 문장으로 인사를 시작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리고, 요가원이 오랜 안식년에 들어가기 전 마지막 스승님의 수업에서 나는 작가님의 부부를 뵙게 되었고, 그분께 수줍지만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했던 것 같다. 작가님이 아니었다면 나는 꿈만 같았던. 이 굉장한 여정을 경험해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이렇게 글을 써내려 보려고 한다. 혹시나 모를 어떤 분들이 나의 글을 읽고 혹시나 나와 같은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맞이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바람에서 말이다.


 요새 요가 업계는 불황이라면 불황이고 호황이라면 호황이다. MD로써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에 시장의 구조가 변하고 있는 것 같다. 이전에는 요가를 하기 위해서라면 GX센터나 대형 체인 요가원에 방문을 해야 했다면, 이제는 크고 작은 개인 요가원이 우후죽순 생겨났고, 퍼스널 브랜딩이 잘 되어있는 선생님들은 개인 클래스를 모집하여 수업을 진행하는 형태로 흘러가다 보니, 나 같은 병아리 선생님들에게는 수업을 구할 수 있는 기회가 적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비롯한 동기 기수의 선생님들은 그 열정이 유난하여 모두 저마다의 방식으로 요가를 나누고 있는 듯하다. 나조차도 몇 번의 이력서를 탈고하고, 숱한 면접의 콜백조차 받지 못한 채 손톱을 물어뜯는 나날을 보냈지만 결국 현재는 조금씩 수업이 늘어나 행복한 비명을 지르며 요가 지도자의 그 걸음을 한 발자국씩 떼어내고 있는 중이다.


 요가 수업 한 시간을 나누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물론 아직 초보 선생님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겠지만. 수업의 주제 선정, 시퀀스의 구성, 알맞은 노래 선정과 티칭이 입에 붙을 때까지의 데모 연습까지. 그 한 시간의 이면에는 우아한 백조가 수면 아래에서 열심히 물길질을 하는 것처럼 치열하고, 때론 애달프다. 위의 과정이 매주 혹은 매일마다 반복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이런 상황의 연속이다 보니. 수련시간은 자연스럽게 줄어들고 수업-회사-수업-수업준비의 무한 굴레에 빠져버렸다. 몸을 쓰는 직업이라 자연스럽게 입맛이 떨어지고 살이 빠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피곤하니 보상 심리가 돋아 열심히 먹고 살크업까지 이루어지고 있는 역설적인 상황이랄까.


 그리고 요가 선생님이라는 일은 선생님 + 서비스업이다. 회원님들이 얼마나 내 수업에 들어오는지 출석률에 예민해지기도 하고.(실제로 출석률이 일정 미만이면 페이가 깎이는 요가원도 있다. 심지어 아무도 안 오시면 페이 자체가 없는 곳도 있다고 한다.) 그날그날 회원님들과 벌어지는 예측불허의 상황에 식은땀을 흘리기도 한다. ‘저는 요가 선생님들이 수업을 하면 회원님들을 통해 에너지를 얻는다고 이야기하시는데, 사실  아직까지는 이해가 잘 안 돼요.’ 동기 선생님들과 오랜만에 만나 근황 토크를 하던 중 하소연하듯이 말한 저 말에 우리 모두 깊은 공감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큼 우리 병아리 강사들은 몸과 마음에 적당한 생채기를 내가며 이 모든 상황들이 조금 구태의연해지길 바라는 연습과 성장을 반복하고 있는 것 같다. 나 또한 파워 F유형인지라, 회원님들의 반응에 기민해질 수밖에 없다. 내 수업에 오고 나서 연신 힘들어하시던 회원님은 그다음부터 아예 내 시간에만 오질 않으셨고, 심지어 내 수업이 가장 회원 참여도가 적다. 이럴 때면 열심히 수업을 준비했던 지난 시간에 맥이 빠지면서 그날 하루가 울적해진다. 실수라도 하는 날이면 스스로를 자책하고 자기 검열을 하면서 집에서 술을 마시기도(?) 하고. 심기 일전해서 준비를 잘해보자! 하는 날이면 꿈에서도 주절주절 시퀀스를 복기하고 티칭 멘트를 외우다 선잠을 자곤 한다. 가장 속상한 건 좋은 에너지를 나누어야 할 지도자라는 사람이 늘 피곤해 안색이 퀭-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언젠가는 수업 전에 대기실에서 텅 빈 눈동자로 먼 산을 보고 있었더니 ‘자니타 선생님. 정신 차리세요.’라는 말에 번쩍 눈이 뜨였던 경험도 있다.


 물론 모든 선생님들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 내가 그렇다는 것이다. 아무튼 이런 생활을 한 지 5개월 차에 접어들다 보니, 긴장의 나날 속에서 한 숨도 제대로 잠을 자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처음 지도가 과정을 마칠 때 무렵에 스승님들에게 강사 활동명을 받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내가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선생님께 작명을 부탁드렸었다. 강사명을 받고 싶었던 이유는 내가 선생님의 ‘유산‘과도 같은 존재가 되어 나에게 ’ 이름’으로 그 흔적이 남아있길 바랐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본캐와 부캐의 철저한 분리를 위해서이기도 했다. 인간 ‘박재원’과 요가 선생님 ‘자니타’의 삶을 구분하기 위한 나의 큰 그림이었달까. 하지만 그 결심이 무색하리만큼 요새 나는 그 경계가 흐릿해져 일상이 비틀대고 있음을 느낀다.

 회사에서는 점심시간에 샐러드를 욱여넣으며 수업 준비를 하고, 칼퇴를 하기 위해 일을 쳐내고, 새벽수업 탓에 늘 피곤하고 의욕 없는 모습을 보이는 것 같아 불안하다. 또 지도자 과정을 거치는 동안에 얼결에 들이게 된 나의 반려견의 보호자로서 늘 집에 늦게 귀가하는 강아지에게 죄책감이 든다. 그리고 요가 선생님으로서는 수련시간도 턱없이 부족하고, 아사나도 발전이 없고. 이렇게 수업 준비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데 내가 이렇게 요가를 나누는 것이 온당한가?라는 자기 의심이 들곤 한다. 모든 것을 다 가지지 못할 것이라는 것은 애초부터 각오하고 시작했으나 계획형 인간인 나에게는 여간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이 아닐 수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 날은 문득. 내가 사랑하는 것은 ‘요가’일까 ‘나눔’일까에 대한 궁금증이 올라왔다. 나의 최종의 목적지는 어디일까? 처음에는 그저 내가 ’잘‘ 할 줄 알고 호기롭게 덤빈 것이 아닐까? 결국 그 어떤 것도 잘 해내지 못한 채 이렇게 패배자가 되는 것은 아닐까? 이기고 지고의 싸움이 없는 긴 종착지를 나는 계속 점수를 매겨가며, 저울질하면서 하루하루 보내고 있는 것 같다. 어느 날은 스승님께 장문의 메일을 보낸 적이 있었다. 선생님의 병아리 시절이 궁금해지는 밤이었다. 우당탕탕 수레가 요란한 나의 일상을 알려드리며 문득 너무 보고 싶다고. 이런 내 모습을 지금 보고 있다면 ‘재원. 모든 걸 잘하려고 하지 마. 모를 땐 그냥 모른다고 해도 돼.’라고 말씀하실 것만 같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온 스승님의 회신을 읽은 나는 그날 펑펑 눈물을 흘렸다. 늘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노라고, 늘 사랑한다고. 실수도 모두 다 너를 아름답게 빛내고 있음을 잊지 말라고. 짧고 담백했던 그 위로와 응원의 글을 몇 번이나 읽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요즘은 깊게 숙고하려 하지 않고 문득 어떤 마음이 올라오는 날이면 그 마음의 스위치를 이내 꺼버린다. 이 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당장 앞에 놓여있는 사건들에 집중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미 이 지도자의 길을 택한 이상, 스승님들의 가르침을 내 피부 살갗에 새긴 그날 이후 나는 깨달았다. ‘아, 눈 감을 때까지 숙고할 인생이로구나.’ 어차피 평생을 숙고하게 될 것. 지금 당장 답을 찾으려고 밤잠을 설칠 필요는 없겠지. 내일은 또 새로운 시작일테니까. 오늘만 속상하고, 오늘만 슬퍼하고 오늘만 혼란스러워하자.


 주말에 수업을 하는 요가원에서 오늘따라 수련실을 가득 메운 회원님들을 보며 ‘여러분! 오늘 저희 만석이예요!’라는 말에 회원님들이 더 뛸 듯이 기뻐하며 박수를 쳤다. 수업을 마치고 나서는 한 회원님께서 ‘선생님, 오늘 수업 너무 좋았어요. 요가는 처음인데 몸이 열리는 기분이었어요.’라고 말씀하셨다. 아, 인생은 대체로 슬프지만 이렇게 가끔의 행복으로 피로가 씻기지. 기분 좋게 따사로운 봄 햇살을 맞으면서 집으로 돌아와 밥을 해 먹고, 강아지와 늘어지게 낮잠을 잤다. 몇 년 만에 자보는 길고 달콤한 낮잠이었다. 어느새 날씨는 따뜻해졌고 길거리에는 꽃이 조금씩 피고 있었다. 동네의 빌라 돌담길에 피어난 개나리의 사진을 찍으며 피식 웃었다. ‘나도 나이가 들었나 보네, 꽃 사진을 다 찍고.’


 길고 유난히 추웠던 겨울이 지나가고 봄이 성큼 코앞에 다가왔다. 나도 이렇게 슬퍼하고 속상했던 그때가 언제였냐는 듯이 활짝 만개할 날이 오겠지. 그때까진 정답을 찾지 말고 계속 이렇게 휘청거리면서 이 시간을 잘 정돈해 보내야지. 매주 수련을 가는 선생님과 그 주에 있었던 사건 사고들을 조잘조잘 떠들었더니 선생님께서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정말, 우당탕탕 자니타 라이프네요.’ 지금 생각해도 피식-웃음이 나온다. 그래. 이보다 더 적절한 표현은 없겠어. 내 인생은 이렇게 ‘우당탕탕’ 흘러갈 운명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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