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복나가할머니

잔잔의 열두 번째 단어: 미신

by 잔잔 janjan

< 복나가 할머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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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방에 올라가는 거 아니야! 복 나가!”

“다리 떨지 마! 복 나가”

“식탁 모서리에 앉지 마! 복 나가”

“상에 팔꿈치 올려놓지 마! 복 나가”

...


이외에도 그는 복이 나가는 자세 이천 오백 개 정도를 지적했다. 들어는 보았나, 복나가 할머니! 오늘은 우리 할머니와 미신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내가 아는 미신 대부분은 할머니로부터 알게 됐다. 대게 ‘A 하지 마, 복 나가’의 형태를 띠며 특정 행동 뒤에 따라붙는 표현이다. 이때 절대 그에게 ‘왜요?’라고 물으면 안 된다. 십중팔구 이유는 듣지 못하고 쪼끄만 지지배가 쫑알거린다는 소리를 듣기 때문이다.


복이 나간다는 게 뭘까? 재수가 없어진다는 걸까? 되던 일도 안 풀린다는 걸까? 아니면 사실 이번 주에 로또에 당첨될 복이 있는 게 그게 날아간다는 걸까? (으 끔찍!) 문지방 한 번 밟았다고 달아나다니 복 이거 너무 나약한 거 아니야? 복이 어떻게 나가는지 그 모양도 모르겠고 괜히 갖고 있던 거 뺏기는 듯한 기분이 싫었다.


정말 이상하게도 복 나간다는 한 마디엔 내 행동을 바꿔버릴 정도의 힘이 있었다. 복나가 할머니가 지적을 한 이후로 난 몽키 어쎄신에서도 서서히 은퇴했고, 다리도 안 떨고, 식탁에선 절대 모서리에 앉지 않고, 상에 몸을 기울여 붙이지도 않고, 상에 칼을 놓지도 않고, 한숨도 안 쉬고... 이젠 나뿐만 아니라 주변 누군가 이런 행동을 하면 내가 주의를 줄 정도다. “야! 하지 마, 복 나가” 복 나가 할머니가 키운 나는야 복나가 주니어. 고작 다리 떤다고 복이 왜 나가냐고? 그건 나도 몰라, 우리 복나가 할머니가 그랬어!


복나가 할머니의 말은 대체로 미신의 정의와 맞아떨어졌다. 미신(迷信, superstition)이란 과학적 관점에서 헛된 것으로 여겨지는 믿음이나 신앙이다. 마음이 무엇에 끌려서 잘못 믿는 것 또는 아무런 과학적 근거도 없는 것에 대한 맹신(盲信)을 의미한다. 머리로도 마음으로도 이해가 안 됐지만, 우리 집 서열 1순위, 먹이사슬 최상위권은 할머니였기 때문이 그냥 하지 말라고 하면 안 하는 게 심신에 이롭다. 할머니가 하지 말라고 하면 정말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할머니는 미신을 전파함과 동시에 미신 그 자체가 되고 있었다.


할머니는 절에 다니셨다. 집 근처 절도 아니고 저어 멀리 강원도에 차 타고 서너 시간은 족히 가야 나오는, 첩첩산중에 있는 절에 가셨다. 무릎 수술을 한 번 두 번 세 번 받으시면서 빈도가 점점 줄었지만 꼭 일 년에 한 번은 가셨다. 할머니가 절에 다니게 된 이유도 내 기준에서는 참 특이하고, 요상했다. 할머니는 오빠의 태몽을 꾸셨다. 아들의 아들을 바라며 꾼 꿈이었다. 꿈에서 그는 절에 있었는데 절 기둥에 토실토실한 남자아이가 매달려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갑자기 그 위에 동자승 세 명이 날아(?) 다녔다고 한다. 그 이후로 할머니는 절에 다녔다. 할머니에게 미신은 나의 오빠였을지도 모르겠다.


한 번은 할머니가 절에서 돌아오는 길에는 염주를 사 오셨다. 항상 내 거는 안 사다 주시다가 딱 한 번 염주를 가족 수 대로 사 오셨다. 정말 예쁜 옥색이었다. 거의 학창 시절 내내 차고 다녔다. 내게 복나가 할머니가 준 새로운 미신이었다. 할머니는 내가 잘 되길 바라며 이 염주를 주었지, 그가 내게 복을 준 것과도 같았다. ‘이 염주 벗으면 안 돼, 복 나가!’라는 생각은 순식간에 나를 휘감았다. 복나가 할머니, 그는 그냥 그런 맹목적이고 이유도 근거도 없는 마음을 뿜어내는 사람이었다.


그런 할머니의 죽음은 서서히 그리고 갑자기 다가왔다. 형태 없는 믿음으로 우리 가족을 지탱해주던 할머니의 부재는 여전히 크고 깊지만 각자의 방법으로 그를 떠나보내고 기억하고 있다. 내게 그 방법 중 하나는 그가 준 염주였다. 그가 떠난 후 옷가지들을 다 태워 보내고 남은 건 할머니의 폐물뿐이었는데, 딸들과 며느리들이 나눠 가졌고 할머니가 매일 차고 다니던 금팔찌는 아들의 아들에게 돌아갔다. 그래도 하나도 섭섭지 않았다. 내겐 할머니를 꼭 닮은 옥색 팔찌가 있었으니까. 그게 내 미신이고 부적이었다.


그걸 고3 때 열심히 급식실로 뛰어가는 길에 잃어버렸다. 참 어이없게 복이 달아났다. 종이 치고 나서도 들어갈 수가 없었다. 눈물이 막막 나와서 바보같이 같은 계단을 몇 번이고 오르락내리락했다. 결국 찾지 못했다. ‘그거 없으면 안 된다’는 이상한 미신 때문이 아니라 할머니를 기억할 수 있는 마지막 물건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내가 그간 믿은 건 부적에 담긴 의미 같은 게 아니라 할머니 그 자체였다.


내게 미신이란 것은 할머니의 모습을 띤다. 내가 아는 거의 모든 미신은 할머니에게서 왔다. 복 나가 할머니가 전해준 미신이 몸에 배고, 나중 가선 할머니 자체가 내게 미신이 됐다. 할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일, 물건, 장소, 시간은 내게 아무런 근거 없는 믿음을 쥐어준다. 하면 안 되는 일과 해야 하는 일을 떠올릴 때도 할머니 생각이 나고, 막다른 길에서도 할머니 생각이 나고, 슬픔에 허덕일 때도, 무언갈 염원할 때도 할머니 생각이 난다. 십 년이 지나도 여전하고, 또 다른 십 년이 지나도 같은 마음일 거다. 내 복주머니를 쥐락펴락 한 복나가 할머니 생각이 여전히 자주 난다. 복나가 할머니는 세상에서 제일 무섭고, 기도 세고, 성질도 고약했지만, 존재만으로 우리 가족을 모두 지탱해주었다. 할머니는 우리 집에 전해 내려오는 미신 그 자체야.


만화에 할머니를 그리려고 오랜만에 그의 얼굴을 떠올려보는데,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흐릿한 모습에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 괜히 다른 것까지 떠올려 보려 노력했는데, 할머니 목소리조차도 기억이 안 났다. 그가 아팠을 때 어렵사리 맞잡았던 살갗의 느낌 따위만 희미하게 남아있다. 점차 그 모습이 흐려져 가지만 미신은 원래 형체 같은 거 없으니까. 오늘도 하나님 부처님 천지신명님 … 보다 할머니에 대고 먼저 빈다. 할머니 나 어떡해! 복 좀 줘요!



by. 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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