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그들의 하루는

잔잔의 열두 번째 단어 : 미신

by 잔잔 janjan



아주 습하고 더워서 차라리 물속을 걸으면 걸었지 싶던 어느 여름날이었다. 노원역 주변 학원에 강의를 수강하느라 매일같이 시끄러운 노원역 거리를 걸어 집으로 향했다. 차들이 꽉 찬 넓은 도로와 쿵쾅대는 노원역 고가철도 옆, 바글거리는 번화가의 저녁. 더위와 인파와 소음 짜증의 3박자가 딱 맞아떨어지는 그 공간을 나는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어 걸음을 재촉하는데, 나의 속도에 딱 제동을 거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무어라고 불러야 할까 뾰족한 명칭이 생각 나지는 않지만. 나는 '도쟁이'들이라고 부르겠다.



노원역에서 내가 만난 도쟁이들은 한 팀이었다. 나이 든 여성과 아마도 나보다 나이가 조금 들어 보이는 젊은 남성. 하도 작은 목소리로 은밀하게 말을 건네셔서 한쪽 이어폰을 뺀 것이 화근이었다. 그녀는 열정적으로 지하철 입구까지 쫒아오며 믿음에 대해 말했다. 학생이에요? 대학생인가? 사람이 죽으면 뭐가 있다구 생각해요. 끝일까? 우리 교회에도 학생 많어요. 같이 모여서 공부하고 그러는 거예요. (...) 괜찮다고 귀를 닫고 거절하는 나에게 그녀는 말했다. "우리는 사이비 같은 거 아니에요!"



그들이 믿는 신은 누구신지 끝내 듣지는 못했지만, 학원을 다니는 삼주 내내 그들은 매일 늘 그 자리에 있었다. 그 더운 날 목 끝까지 잠근 카라티와 긴 면바지를 입고서. 아스팔트 도로에서 열이 펄펄 올라오는 길가에 매일같이 나와서 십중팔구 차가운 눈초리를 (어쩌면 혐오의 눈초리를) 받을 각오를 하고 모르는 사람들에게 말을 건네는 일은 그들이 믿는 신이라도 하기 싫을 것만 같았다. 어떤 믿음이 그렇게 고된 일을 하게 만드는 걸까? 그 사람들은 누구일까?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가이자 작가이자 영화인이자 (...) 멋진 사람 이랑의 단편소설집 <오리 이름 정하기>에는 이런 비슷한 궁금증에서부터 시작된 이야기가 있다. 소설 속 화자는 지하철에서 큰 소리로 예수의 대속 희생을 외치던 한 아주머니가 남편의 전화를 받는 모습을 보고 그녀의 아침 루틴에 대해 상상하기 시작한다.


쩌렁쩌렁하게 예수의 대속 희생을 외치던 것과는 달리 남편으로 추청 되는 상대와 통화할 때 여인의 목소리는 퍽 나긋나긋했다. 심지어 다른 승객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듯 한 손으로 입을 가리며 소곤소곤 대화를 나누었다. 하지만 진즉에 너무 크게 목소리를 내던 탓에 모양새에 비해 음량 조절이 잘 되지는 않았다. 정성은 그 여자의 집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여자가 부엌에 서서 프라이팬에 멸치를 볶고 그것을 식혀 통에 나누어 담은 뒤 냉장고에 넣는 모습, 반찬을 만들면서 나온 식기들을 설거지하며 오늘 거리에서 외칠 전도 문구를 중얼중얼 외는 모습, 일주일 단위로 짜인 전도 스케줄을 확인하고 오늘은 어느 역에서 출발해 어느 역으로 돌아올지 가늠하는 모습...

이랑 <오리 이름 정하기> 중에서





이 소설을 읽고 나서 나는 지하철에서 길거리에서 말을 건네 오는 도쟁이들을 보면 자꾸 그들의 하루를 상상해보게 된다. 아침에 누구와 밥을 먹었을지, 오늘은 언제 쉬고 언제 무슨 밥을 먹을지, 또 딸이나 아들에게 뭐 하고 있냐는 문자가 오면 무엇이라고 답장할지, 일을 하고 있다고 대충 얼버무리진 않을지. 사소하고 이상한 궁금증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겨난다.



by.D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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