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의 열세 번째 단어: 죽음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평등하게 주어지는 것은 단 두 가지이다. 탄생과 죽음. 사람은 태어나곤 수많은 흔적을 남기며 자신의 삶에 대한 기록을 해낸다. 탄생은 개개인의 별점과 리뷰가 천차만별인 베스트셀러, 반대로 죽음은 탄생과 마찬가지로 베스트셀러지만 리뷰가 없다. 그 누구도 죽음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거나 감상을 말해줄 수 없으니까. 그래서 난 오늘 죽음 프리뷰(preview)를 해보려 한다.
가끔 그런 상상을 했다. 내 인생이 책이나, 영화나, 드라마라면? 감독, 연출, 각본, 출연 040. 실없는 상상 속 나의 마지막 장면은 내가 죽은 후, 로케이션은 장례식장이다. 장례식은 어떻게 진행하면 좋을까? 내가 죽을 때쯤이면 장례 문화가 좀 바뀌어 있었으면 좋겠다. 새카만 옷을 입고 절을 하고 육개장과 편육을 먹고 끝나는 장례식이 아닌 색다른 다른 모습을 그려본다.
우선, 만약 내가 죽음을 대비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어릴 적부터 죽기 바로 직전까지의 사진을 인화해서 장례식장에 놓고 싶다. 나는 사진을 좋아해서 지금도 핸드폰 갤러리엔 오만장이 넘는 사진이 있다. 그중에 추리고 추린 몇백 장의 사진을 시간 순으로 정리해두고 싶다. 사람들이 수백 장의 사진을 천천히 자유롭게 구경했으면 좋겠다. 그 속엔 내가 좋아하는 풍경,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내가 있겠지. 사진첩을 넘기면 여러 장면을 볼 수 있을 거다. 아주 어릴 적 내 모습을 보며 추억에 잠길 엄마와 아빠, 학창 시절 사진 속 나와 우리. 사진 속에 멈춰 있는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눈물은 아예 흘리지 않으면 조금 서운할지도 모르겠다. 언제나 죽음을 생각하면 내가 죽는 건 당장에 무섭지 않았다. 가장 두렵고 힘든 건 내 주변 사람들이 오래오래 아파하고 후회하진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눈물바다 대신 살짝씩 웃으며 나와 있던 기억을 떠올려주면 좋겠다. 길게 기억하고 아파하기 보단 그 자리에서 많이 생각하고 장례식장에서 나간 후에는 가끔만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절을 하거나 향을 꽂거나 꽃을 놓는 건 내 관할이 아닐 것 같다. 사실 종교가 없어서 뭘 하던지 상관없다. 그건 내 장례를 치러줄 상주에게 맡기겠다. 대신 만약 꽃을 놓는다면 꽃의 종류가 다양했으면 좋겠다. 흰 국화꽃뿐만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프리지아나 하얀 바람꽃, 유칼립투스 같은 식물도 좋다. 꽃은 다 좋은데 장미, 백합은 싫으니 다른 꽃을 들고 와 주세요.
음식은 글쎄 난 육개장은 별로지만 뭐 상조회사에서 시킨다면 어쩔 수 없겠다. 대신 맛있는 커피 한잔씩 하고 가면 좋겠다. 내 친구 J는 카페인에 약하니까 디카페인 원두도 사려 깊게 준비해준다면 좋겠다. DD와 친구들이 좋아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필수, 내가 좋아하는 따뜻한 라떼, 엄마와 언니가 좋아하는 바닐라 라떼도 필요하겠다. 이쯤 되니 상주에게 미안할 정도로 까다로운 죽음이다. 그치만 어디까지나 상상이니까…
살아생전의 나는 대체로 낙관적으로 보였을 테지만, 내가 정말 그런 사람인가 여러 번 고민했을 땐 아니라는 결론이 다수였다. 이유 없이 잠 못 드는 밤이 많아지면서 죽음이 어디 있는지 내다보는 날이 잦았다. 뭐가 그렇게 힘드냐고 물어보면 대답할 게 없어서, 힘들지 않다고 나는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어서. 죽음을 생각한다고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못한 채 죽음에 대해 쓴 날들이 달력 위에 나란하고. 부서진 마음과 참지도 터뜨리지도 않은 감정들이 모래알처럼 빠져나가고, 막아내고, 빠져나가고, 힘이 풀린 손가락 사이를 감싸 내던 날들이 참 많았다고. 잘하고 싶지 않지만 잘하고 있다고, 가만히 있는 게 최선이었던 나날들이었다고. 가끔은 내일을 맞이할 용기가 없었다고. 말에 붙은 숨이 자꾸만 희미해 져 갈 때, 습관처럼 어지러운 생각이 몸에 배어날 때, 죽음에 대한 생각을 달리해준 노래가 있었다. 자, 이제 내 장례식 마지막 요청사항이다.
일단 앞서 나열한 장례식 요청사항의 전제조건은 ‘내게 죽음을 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거다. 그래서 난 내 장례식 플레이리스트도 꼭 준비하고 싶다. 아직 몇 해 안 살아서 다 채우진 못했지만 마지막에 꼭 틀고싶은 노래가 있다. 장례식 엔딩곡이라고 해야할까?
우리는 길을 잃었지만, 산책이라 부르지
불안한 매듭을 바라보며 새삼스레 걸어가
'공중그늘 - 산책'에서
어느 죽음 앞에 서서 이 생이 그저 산책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 언제나 길을 잃고 헤맸지만 마지막엔 이 모든 것이 ‘그저 산책이었다'고 생각하고 싶다. 글을 쓰다보니 고개를 치켜들고 걸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책길을 보아요. 찬찬히 구경해요. 언제 올지 모르는 이 길의 끝까지 산책하는 마음으로 나아가야지. 그 안에는 많은 계절이 있을테니까.
여기까지가 나의 상상 장례식이다. 그곳에 함께 해주실 여러분께 남기는 짧은 메세지로 마무리해본다.
안녕하세요, 040입니다. 이 자리에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별난 애는 아니었고, 아주아주 평범한 사람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런 어지러운 장례식이 어이없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재미는 있었으리라 감히 예상해 봅니다. 저를 잘 아는 분이던, 모르는 분이던, 저를 사랑해주신 분이던, 그 정도는 아니었던 분이던, 다들 감사합니다. 한 명 한 명 붙잡고 미안하다는 사과를 하고 싶기도 했어요. 왜 저는 항상 잘 못한 것만 떠올리는 사람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모든 이야기의 마지막이 참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거든요. 마지막 순간엔 씩씩하게 하나도 미안하지 않은 사람이 되어보겠습니다. 기나긴 산책길 속에서 방황하던 날들엔 언제나 사람을 만났습니다. 돌이켜보니 단 한 순간도 혼자 걸은 날이 없었어요. 누군가는 주저앉은 저를 무너뜨렸지만 또 누군가는 저를 일으켜 세워줬어요. 각자의 산책길을 좋은 사람과 함께 걸어보세요. 참, 함께 했던 산책은 즐거웠습니다! 안녕.
by. 0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