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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주 Apr 07. 2023

국밥에 소주 마시는 아저씨

그 아저씨가 나라면

 친구들과 마시는 만큼은 아니지만 부모님과도 종종 술자리를 가지는 편이다.


 만날 때면 소주를 매번 따르기 귀찮다며 글라스잔에 드시는 아버지. 독립한 아들이 본가에 갈 때면 좋은 술을 준비해놓고 같이 잔을 기울이는 어머니.

 20년 넘게 따로 산 아버지는 힘든 모습 한 번 보인 적 없고, 직장 생활하시면서 홀로 날 키운 어머니는 항상 웃는 얼굴로 날 맞아주신다.


 부모님과 잔을 부딪히며 취기가 오르면 많은 대화가 오간다. 고생했던 일들, 현재의 일상과 미래에 대한 고민들. 그리고 내가 몰랐던 수많은 이야기들.

 부모님의 젊었을 때 이야기부터 내 앞에서 차마 하지 못했던 속사정들까지 듣다 보면 괜히 짠 해질 때도 있다. 이런 대화들을 곧잘 나누다 보니 밖에서 술을 마실 때면 이 세상 모든 부모님들이 눈에 들어온다.



 국밥집에서 혼자 소주를 마시는 아저씨들. 멀리서 봤을 땐 ‘반주를 좋아하시는구나’ 하며 가볍게 지나쳤다. 하지만 혼자 짧게 마시는 사정도 있지 않을까란 생각도 들었다.

 젊었을 땐 우리처럼 실컷 웃고 떠들며 드셨을 텐데, 바쁘게 책임지며 살아오다 보니 변하지 않은 건 술밖에 없었을 것이다.


 술집에서 모여 수다를 떠는 동네 아주머니들이나 조기축구회 회식을 하는 아저씨들도 그저 시끄럽다며 투정부리기만 했었다.

 생각해보면 내가 대학생 때 술게임하던 시절이 더 시끄러웠을 텐데, 그분들도 이제서야 숨통이 틔여서 그때처럼 친구분들과 시끌벅적하게 마시는 게 아닐까란 생각도 해본다.

 부모님과의 술자리 덕에 이런 생각들을 하긴 했지만 성별나이 불문하고 몰상식한 행동들은 물론 예외다.


 나도 점점 짊어지는 짐이 많아질수록 술자리를 대하는 자세가 변하게 될지 내심 궁금할 때도 있다.


 ‘정말 힘들어질 때면 나도 술을 덜 먹게 될까?’

 ‘술은 계속 마시더라도 지금의 낭만을 느끼기 어려울까?’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을 혼자 상상해본다. 앞으로의 인생은 원치 않는 풍파를 겪을 수도 있고 잔잔하게 흘러갈 수도 있다.

 이런저런 상상을 하다가도 아무렴 어떨까 싶다. 풍파가 많으면 술자리에서 펼쳐 놓을 말들이 많아질 것이고, 잔잔하면 언제나 그랬듯 소소한 일상들을 늘어놓을 텐데.


 어른들과 술자리를 함께 하고, 그들의 술자리를 바라보면서 지금의 술자리가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들의 깊은 주름과 단단해진 목소리를 보고 들으며, 지금 주어진 상황 하나하나가 나를 어떤 어른으로 만들까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겪어온 술자리들을 돌아보면 기억에 남는 대화들과 만남들이 많았다. 그것들은 내 속에 있던 말들을 뱉어낸 대화들이었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만남이었기에 내 인생이 녹아든 술자리들이었다.


 꽤 많은 대화들과 만남들이 있었기에 우리 부모님처럼 미래의 자녀에게 술 한잔하며 해주고 싶은 얘기들도 많아질 것 같다. 내가 어떻게 살아왔고, 술은 어떻게 마시는 것이고, 우리의 사이가 어떤지에 대해.

 훗날 중년이 된 친구들과의 술자리도 기대된다. 누군가는 살아간 모습에 따라 거칠어졌을 수도, 여유로워졌을 수도, 한결같을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그때의 나는 어떤 모습일지도 문득 궁금해진다.


 사실 나중에 자식이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고, 정작 친구들을 자주 못 만날 수도 있다. 분명한 건 나는 계속 술을 마시고 있을 거라는 것이다.

 그때 곁에 함께 술 마실 사람이 없다면 아마 국밥집에서 혼자 소주를 마시고 있지 않을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 순간도 헛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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