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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주 Apr 05. 2023

또 마시면 사람도 아니다.

짐승들의 술자리

 진하게 술을 마신 날, 미처 집에 돌아가지 못하는 경우는 허다하다. 나도 독립한 이후에 술 냄새 진동하는 친구들을 여럿 재웠으니까.

 다음 날 한 명씩 눈을 뜨기 시작하면 술기운이 채 빠지지 않은 쉰 목소리로 힘겹게 말을 뱉어낸다.


 “죽겠다….”

 “해장해야지?”

 “해야지…. 내가 또 술 마시면 사람도 아니다.”


 숙취가 심한 친구는 집인지 병실인지 헷갈릴 정도로 앓는 소리를 낸다. 이온 음료를 벌컥벌컥 마시며 한참을 누워있다가 정신이 들면 본격적인 해장에 나선다.


 먹는 것까지가 운동이라고 하듯, 해장까지가 술자리다. 전 날 술자리의 여운을 곱씹고, 숙취를 보내주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휴일 아침, 아니 아침이라고 하기에는 점심에 가까운 시간의 국밥집은 해장하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그리고 초록병들이 놓여 있는 테이블들이 꼭 보인다.


 “이 시간에 대단들 하시다.”


 그 말을 할 땐 몰랐다. 우리도 대단하다는 사실을. 

 국물을 한 숟가락 떠먹는 순간 숙취 때문에 죽어있던 감각들이 살아나는 것을 느끼기 시작한다. 육체적인 해장은 안 되었을지언정 정신적인 해장은 해결된 듯하다. 그리고 이내 술을 보내고 싶던 상황에서 필요한 상황으로 바뀐다.



 “이 국물에 소주 안 마시는 거 죄 아니야?”

 “같은 생각.”


 잠에서 깨며 무심코 뱉었던 ‘또 마시면 사람도 아니다.’라는 말은 우리를 짐승들로 만들었다. 사실 이 말을 뱉는 건 숙취가 심할 때뿐만은 아니다.

 늦은 시간까지 달리고 난 다음 날 피곤에 절어 있을 때도, 술을 진탕 마시고 물건을 잃어버렸을 때도 습관처럼 뱉곤 한다. 하지만 빠르면 당일, 늦어도 일주일이면 다시 술잔을 채운다.


 곧 다시 마실 걸 알면서도 안 마시겠다고 하는 이유도 납득이 간다. 피곤한 오늘의 내가 늦게까지 놀던 어제의 나를 원망하고, 소지품을 잃어버린 만취한 나에 대해 자책하다 보면 자연스레 술을 멀리하고 싶어지니까.

 다만 정말 술을 끊을 게 아니라면 부정적인 생각과 말만 뱉어낼 게 아니라 더 기분 좋게 마실 상황들을 만들어나가는데 집중해야 한다.


 숙취가 심하면 숙취해소제와 물을 잘 챙겨 먹고, 술 마신 다음 날 피로감이 심하다면 체력을 기르거나 오전 반차를 미리 써야 한다. 물건을 자주 잃어버린다면 의식하는 습관을 들이거나 빠르게 찾는 방법들을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금주 선언은 언제건 뱉었다 철회할 수 있지만, 그 속에서 후회나 죄책감을 계속해서 느낀다면 술을 점점 멀리하게 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서서히 술자리를 떠난 친구들도 많이 봤으니까.


 지금도 계속해서 잔을 부딪히는 친구들은 아무리 거친 술자리가 지나가도 어떤 탓도 하지 않는다. 많은 경험을 통해 모든 술자리에 안정감이 생겼고, 다음날의 자신도 걱정 않는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또 술 마시냐고 핀잔을 줘도 나는 네 발 달린 짐승이라고 웃어넘기며 잔을 꺾을 뿐이다. 그렇게 짐승들의 술자리는 계속되고 있다.


 옷 좋아하는 사람이 착장 몇 번 맘에 안 든다고 옷을 끊지 않는다. 영화 좋아하는 사람이 별로인 작품을 봤다고 다신 영화를 찾지 않는 것도 아니다. 더 좋은 착장을 찾고, 더 좋은 작품을 찾을 것이다.

 술을 좋아한다면 오늘도, 내일도, 다음주도 있을 술자리를 항상 기분 좋게 마주해 나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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