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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주 Feb 27. 2023

흐트러짐

실수라고 불리는 것들


 "너 원래 이렇게 웃겼어?"


 일할 땐 마냥 얌전한 줄로만 알았던 동료가 술자리에서 고삐가 풀린 적이 있다. 입이 터진 그 친구는 평소에 보지 못했던 활발한 익살을 맘껏 보여줬다. 우리는 의외의 모습에 놀라면서도 뱉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쉼 없이 웃어댔다.


 나름 편하게 지낸다고 생각했는데, 취하지 않았을 때에는 그저 업무를 사이에 둔 조금 친한 동료일 뿐이었다. 술자리에서 보여준 긴장감 사라진 자유분방함이 본래의 모습으로 느껴졌으니까. 그렇게 그는 그날 술자리의 주연이 되었다.


 문제는 다음날이었다. 그 동료는 사고를 친 것도 아닌데 마치 죄인이라도 된 것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몇 시간이나 서먹한 태도를 보였다. 실컷 좋은 시간을 보냈는데도 술에 취해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였다는 이유만으로 의기소침해져있었다.



 술로 인해 재밌는 모습을 본 경험이 있는 반면 친구들의 눈물을 본 적도 있다.


"뭐야, 울어?"


 슬픈 사연이 있으면 모두가 둘러 쓰다듬어 주기도 했고, 이미 속을 다 아는 막역한 사이라면 장난 섞인 조롱으로 눈물을 달래기도 했다.


 평소에도 감수성이 풍부해 보였던 친구들이 울 땐 그대로 공감했다. 하지만 눈물샘에 가뭄이 든 것 같았던 친구들의 눈물을 봤을 땐 당황했다. 평정심과 함께 가끔의 희열과 분노만 있을 줄 알았는데 슬픔이라는 감정을 표출하는 건 처음 봤으니까. 


 나도 운 적이 있다. 보통 때라면 언제나 그랬듯 무의식중에 절제가 됐을 텐데, 술기운은 긴장만 누그러뜨린 게 아니라 눈물을 가로막던 벽마저 무너뜨렸다. 우는 것도 잠시, 이내 그 모습이 부끄러워 서둘러 눈물을 멈추려 애를 쓰긴 했지만.



 취하지 않고도 모든 감정을 솔직하게 나누면 좋겠지만 현실은 쉽지 않다. 신뢰를 보여야 하는 직장에서 가벼운 이미지라면 중요한 순간의 설득을 어렵게 한다. 한창 웃고 떠들다가 드라마 주인공처럼 갑자기 울어버리면 분위기만 싸해진다.

 평소의 환경과 상황들만 보면 감정을 합리적으로 풀어내야 하지만 감정은 합리적이지 않다. 항상 흐트러지지 않고 이성적인 모습만 보이는 것도 쉽지 않다. 다만 술자리는 흐트러짐을 허락해 준다.


뜻밖의 모습을 보여도 수긍할 수 있는 순간.

무겁기만 했던 감정을 잠시나마 내려놓을 수 있는 순간.


 평상시의 흐트러짐은 실수라고 불리며 평가 절하되는 계기가 된다. 하지만 취했을 때의 흐트러짐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온전히 보여주는 계기가 된다.


 감춰놨던 활발함이나 슬픔을 술기운에 드러내면 잠시 부끄러울 수 있지만, 몇 날 며칠 고개 숙일 필요는 없다. 오고 가는 술잔에 주변 사람들도 이미 그 모습을 받아들이고 있었을 것이다.

 사회에 해를 끼치는 모습만 아니라면, 오히려 본 모습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과 맘껏 흐트러지며 깊어졌으면 한다. 그 뒤에는 더 안락한 술자리들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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