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날

-문학고을선집 16호 종합문예지「청목」참여작

by 정안나 Essayist




새날



미처 여물지 못한 채 쏟아진 마음들과 나란히 서노라면 늘 분주하다.

출세(出世)란 무엇인가,로 출세지향적 성향을 따라 살아 왔었던가 되짚어본다.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오르거나 유명하게 되는 일이거나, 숨어 살던 사람이 세상에 나옴 혹은 세상에 태어남이라고 사전(事典)은 정의한다. 또한 불교적으로는 불보살(佛菩薩)이 중생을 제도하려고 중생의 세계에 나타나거나 번뇌에 얽매인 세속의 인연을 버리고 성자(聖者)의 수행 생활에 들어가는 것, 흔히 불교의 출가(出家)라고 하는 일을 출세(出世)와 비슷한 말로 상식(常識)은 말하고 있다.


결국은 나에게서 또 다른 나로의, 나에게서, 나의 가족에게서 너에게로 혹은 이웃에게로의 등장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나의 모든 것을 하나도 빠짐없이 거두지만 타인은 나에 대하여 그러하지 않는 것이다. 그 타인이 악인이라서가 아니라, 타인은 그 생육의 본질이 환경과 기타 요인에 따라 다를 수 있으므로 그의 물이 되지 아니하면 함께 하기에 어려움이 되는 것과 같다. 즉,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듯이 나 자신이 아닌 타인의 영역에 들 때는 그에 따른 예의와 규례들을 지켜야 천국에 이를 수 있음인 것이라고 성경(聖經, Bible)은 이미 수 천 년 전부터 행복의 조건문으로 이르고 있는 것이다.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올만치에서 환절기를 만난다. 환절기(換節期)는 <너에게 가려고 나는 강을 만들었다>는 안도현 시인의 시구(詩句)처럼, 변화의 촉매제를 통과시키고 중화시키는 물이 되어가는 중간의 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개개인의 인생이란 자신의 목적지를 향하여 걷는 길 위에서 어떠한 촉매적(觸媒的) 요소와 가장 오래 머무느냐에 따라 목적의 달성 여부가 가려지며 처음 의도와는 같거나 다른 방황 시련 그리고 성과들을 만날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이 때 무엇보다도 자신의 자가 점검이 늘 우선해야 할 것이며, 야산(野山)의 성장하는 시기의 나무들처럼 환절기를 무턱대고 모두 수용한다면 단단하고 무사하기는 할지라도 나무의 표피들처럼 거칠어 질 것이다.


엄마는 신생아들에게 모유를 주고, 아빠는 엄마와 아기를 위험으로부터 보호한다. 시대가 변화하여 사회적 성역할 젠더(Gender)라는 말에 간혹 흔들리고는 하지만 그것은 다름 아닌 엄마 없을 때 아빠가 엄마를, 아빠 없을 때 엄마가 아빠를 잠시 대행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므로 태초부터의 인류 기본적 가치관이 바뀌도록 왜곡하여서는 결코 안 될 일인 것이다. 새 날이 되었다하여 아가씨 코 밑에 수염이 나거나 남자가 태아를 잉태하는 웃지 못 할 일들이 발생하여서는 안 된다는 의미와 같은 것으로 어떠한 변화 요인과 직면하고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는 뜻이다. 성인이 된 아기에게 자신의 무의식과 추억 속 엄마의 모유수유는 그리운 사랑의 절대적 자리로서 불안한 현재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바탕이 되는 것이지만, 그 기억을 성인이 된 지금에 직접 재현하는 것은 불온(不穩)한 것으로 현실의 모유(母乳)는 환유와 은유된, 모호하지만 실재적인 것으로 영원성을 늘 보유하며 함께하게 된다 할 수 있는 것이다.


나의 모든 행위는 나의 자녀와 나의 남편과 나의 부모 형제와 나의 친구와 이웃과 사회에 한 줄기 젖줄, 한 모금의 차고 맑은 샘물이 될 수 있는 것으로, 삶 그 자체가 자신과 모든 이들에게 축복이 되도록함에 동참하여야 하는 것이다. 겨울이 차오르기도 전인 12월 초입에 포근한 봄이 온 듯한 오늘의 날씨는 함박눈으로 온 세상이 달콤하고 두터운 하얀 털옷을 입은 크리스마스 카드 같던 이삼일을 동경(憧憬)의 시간으로 옮겨 놓았다. 하느님은 변함없이 늘 선물을 많이 주시는 다정한 분이 분명하신 것이다.


고드름이 열다니, 도심 한 복판 얕은 담장 기와에 연필만한 고드름이 주렁주렁 열리다니, 연필심이 뚝, 끊어지듯 한 방울 두 방울 물이 되어 흘러내리다니, 새 날이 되어도 투명한 고드름은 그대로라니 그리운 것들은 늘 그대로라니, 사랑의 나날이 영원히 진리화(化)되어 겨울이 되어도 사랑을 기다리듯, 사랑을 이루듯, 노란 장미와 은행잎들이 흰 눈 속에서도 지지않고 제 빛을 발하다니, 이제 2025년 새해가 되면 겨우 75년 남는 22세기 앞 현실 속에서 인터넷은 수시로 출세를 구가(謳歌)하듯 출세욕구 해제제(劑) 역할을 수행하며 매슬로우(에이브러햄 해럴드 매슬로 Abraham Harold Maslow, 1908년 4월 1일 ~ 1970년 6월 8일)의 ‘욕구 위계론’을 지탱하고 있다.



©정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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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4년 12월 31일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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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