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고을선집 20호 종합문예지 「청목」참여작 수필
사랑을 위해 겨울밤을 서성이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한 번쯤은 자정 근처 포근히 퍼지는 은은한 불빛 가로등 아래에서 서성여봄직도 한 20대 청춘 연인(戀人)의 길들이 다시 이어지지 않아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물론 우리 사랑하는 세 딸들의 아빠와 나와의 이야기가 당연하지만 슬픈 가슴앓이들은 건강의 과소비임을 알게 되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12월이면 불교(佛敎)계 스님들은 동안거(冬安居) 중심에 있는 기간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의 중심에 두는 기독교(基督敎)는 11월 추수감사절부터 한 해 동안의 영육적 경작과 거둠에 감사를 드리며 풍요로운 날들을 이어 12월이면 단연(斷然)코 크리스마스(Christmas) 시즌에 들어 어디든 휘황찬란(輝煌燦爛)함에 가지런하던 맘들도 저절로 들뜨듯 하게 한다. 집사(執事) 만25년차에 입성하는 우리 교회만 하여도 밤하늘과 땅에 오색찬란한 무지개처럼 혹은 수려한 왕관처럼 빛나고 있는 성전 외벽의 겨울 단장들은 시선을 떼지 못하게 하고 있으니 하느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온 인류의 사랑과 평화의 디딤돌 반석이 분명한 것이다. 정하여진 기간 없는 피정(避靜)과는 다른, 세상과의 분리 아닌 분리로 자신의 원하는 대로 되지 아니하는 세상이거나 그 반대이거나에 봉착하였을 때, 묵상(默想)과 같은 시간을 내어 평온대에 들도록 하는 각 종교계의 세심한 배려들은 절망하는 마음에 늘 감동을 선물하고는 한다.
학수고대(鶴首苦待)를 늘 달고 다니던 기다림 속 ‘희고 긴 겨울방학’이 보석처럼 반짝이는 12월이면 함박눈을 맞으며 눈싸움을 하거나 마당 한 켠에 눈사람을 만들어 백구와 함께 친구하는 순전(純全)한 마음들로 채우게 되는데 그 기쁨은 ‘하얀 눈’이 주는 오직 겨울만이 가지는 단상들이기에 날마다 겨울예찬(禮讚)이 쉬워지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 집에만 하여도 ‘겨울아이’가 넷이나 된다. 친정 식구까지 더하면 겨울 달력에 쓰여지는 이름들은 열 명이다. 친정부모님, 외삼촌내외님, 친조카(옛말:족하足下) 둘과 세 딸들과 남편, 시댁을 더하면 매일매일 생일케이크가 둥둥 떠다니게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에 웃음이 난다. 왁자지껄한 가족들의 함박눈 같은 웃음들이 영원하기 위한 조건들을 형성하고 이루기 위해 또다시 웃고 떠드는 기쁨과 행복이 반복되는 천국(天國), 내게 가정(家庭)의 의미인 것이다.
December·디셈버,가 주는 어감(語感)은 참 깨끗하고 맑다. 그야말로 손이 시리고 발이 시려오는 겨울바람이 쌩쌩 부는 12월에 제격인 것이다. 부정(不正)과 부정(不正)을 불사르듯 오고 가는 정확함으로 냉정하지만 온화한 선율처럼.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이 없는 ‘열대 국가’에서는 의미 없는 판단으로 간주 되기 쉬우며 그저 분별이 필요한 국가에서 차용된 나날들처럼 여겨질 수 있는 열두 번째 달에 불과할 수 있는 것으로 인하여 열대국가(熱帶國家)가 아닌 열대지역(熱帶地域)으로 우리들에게 불리우고 있음이 아닐까 싶어지니 저 달이 저 해가 흐려지는 이유들과 하나같다 할 만한 것이다.
그러하던 중 뉴에이지 계열 미국의 피아니스트 조지 윈스턴(George Otis Winston III, 1949년 2월 11일~2023년 6월 4일)의 「12월」을 만나게 되었었다. 아마도 1989년 겨울이었을 것이다. 그 겨울을 준비하기 위해 이미 가을부터 여름부터 내 귀에 들려오기 시작했었는지 모를 일이었다는 판단은 이미 이 피아노 곡은 1982년 1월 세상 빛을 보았었다는 것으로,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듯 그 꽃을 같이 피우기 위해 나 역시 동조하며 도시인(都市人)으로서 교양과 품격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수시로 책과 음반을 내 것으로 만들던 중 소지하였을 것이었다. 허공에 날리는 하이얀 눈들과 설경을 연상하기 쉬운 피아노 멜로디에 놀라 바로 구입(購入)하곤 매일(每日)을 또 듣고 듣고, 1987년 봄부터 한 동안을 실어증(失語症)이나 벙어리라도 되고 싶던 내 맘을 달래주듯 하는 내 애심(愛心)의 발로로 여겨져 눈물짓지 아니할 수 없었다. 어렵거나 과감한 테크닉이 없이도 간결하고 단아하게 솟은 한 모금의 샘물을 마시듯 편히 쉴 시간을 주던 아름다운 곡들.
그해 겨울 유난히 눈이 많이 내렸었다. 종아리까지 눈이 앃이던 서울 화곡동 동네 초등학교를 돌던 출퇴근 골목들, 대학교(大學校) 입학에 대한 연민과 갈등에 지쳐 일상을 버리고 한강(漢江)에 빠져 죽으려 했던 순간들이 잠을 잤던 봄 여름 가을들, 그러나 기적처럼 애통의 메아리는 울려 퍼져 지나가던 자전거를 탄 낯선 청년이 들려주던 영혼의 ‘사랑의 속삭임들’, ‘죽지 마요~!’, 내가 잘못 들었나 싶었고 되묻고 싶어 돌아보니 저만치 지나가던 푸르른 자전거 바퀴들, 차가운 빗방울로도 배부른 한강의 강물은 나마저도 한 방울 빗방울로 흡수하려는 듯이 내 발끝을 잡아당길 듯 한강 고수부지(高水敷地) 한 두 계단 아래까지 차올라 있었다.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We Must Go to Apgujung-dong on Windy Days ,1993.1.22.개봉)」는 어쩌면 ‘역설적 희망강요제’였을 것이었다. 나의 갈등과 방황이 끝이 나던 무렵 솟아난 또 다른 장르의 답안지로 우리의 결혼식 일정을 잡은 후의 평온이 전해준 사랑이기도 했었을 법한 따듯한 위로들이었다. 사실, 이 영화를 제대로 본 적은 없다. 단지 제목만으로도 희망이 되기도 하던 느낌들이 여전하며, ‘그대가 아플까 아프다는 말도 못한다’는 시구(詩句)처럼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서로를 응시하며 웃고 사는 것이었을 테다. 그러나 사무적이던 나는 이런 감정들이 사소한 감정 남발로 다가와 청승맞다며 움트는 감정들에 절제(節制)라는 이름으로 가지를 쳐냈었을 것이었다. 그리곤 시간을 건너와 되돌아온 나만의 것이던 ‘내 감정의 세례(洗禮)’를 속수무책으로 맞이하여야만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던 것이다. 다시 그리하여도 얼마나 다행인가, 감정을 살피고 다스릴 시공(時空)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살만한 것이었다.
‘조지 윈스턴(George Winston)’의 디셈버·December 앨범은 결국 중학교 2학년이던 1982년부터 7년간 나를 맴돌았을 뿐, 평온한 나를 찾은 이후에야 나를 만나게 되었다고 볼 수 있으니 놀랍지 않을 수 없다. 성경매니아(mania) 누군가는 ‘7년 대환란’이라고 할만한 기간들, 굳이 성경으로 대치를 시켜본다면 긴 모험게임처럼 7년간 놀이공원의 청룡열차를 탄 듯, 좋은 기억들이 대부분이라 해야 할 것이었다.
환난이 이룬 완성된 소망, 이는 어려운 듯하여도 어디서든 쉽게 찾아볼 수가 있다. ‘가시 없는 장미’란 도무지 생각할 수도 없었던 1982년, 그러나 지금은 ‘경기도 농업기술원’에서 개발한 ‘필립’이나 ‘딥실버’등의 장미가 농가에 보급 중이며 가시가 있되 기존의 품종보다는 적은 ‘보보스’라는 장미도 같이 태어났다고 한다. 세상을 향해 가시투성이였던 나와 치환되는 시점에서, 독불장군과 겨루는 듯한 독신녀를 꿈꾸기도 하던 어린 날들 이후, 가시 없이도 아름다운 자태와 향기를 품을 수 있는 날들을 살고 있는 세 딸의 어머니와 사랑하는 아내가 된 것이니 감사하지 아니할 수 없는 7년 혹은 그 갑절의 갑절 시간 속 인고(忍苦)의 세월값으로 남은 ‘흔들리며 핀 꽃’인 것이라 하겠는 것이다.
조계종은 전국 100여개의 선원 등에서 2000여명이 참여하는 동안거(冬安居)를 진행중이며 일정하게 정하여진 공간에서 신문·잡지·TV와 같은 대중매체를 전면 차단하거나 묵언을 수행하며 외출을 삼가고 하루 일과를 엄격히 지키며 좌선 등에 용맹정진하게 된다고 한다. 동안거(冬安居)가 끝나는 신년 1월 15일이면, 지금 몰랐던 것을 그때는 알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과, 지금은 고단한 일상이지만 그때는 참 잘 참았노라며 행복의 미소를 지을 수 있음에 대한 인내의 동의가 동안거(冬安居) 결제(結制) 첫 번째 단추를 꿰었을 것이다. 모든 일의 첫 단추를 꿰는 일은 시작이 반이라는 절반을 이룸과 같음이니 동안거(冬安居)에 들며 한 해 절반은 성공함과 같다 할 수 있음도 이와 같음이라 하겠다.
‘사랑을 위해 겨울밤을 서성이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라고 쓴 첫 문장은 처음부터 고민거리가 되었다. 2주 전 내년(2026년) 초 늦겨울에 있을 첫아이 결혼식으로 양가 부모 상견례(相見禮)를 마친 지금, 마치 맞선을 내가 보는 듯한 난생처음의 행로들과 설렘들을 포함한 일상을 SNS에 공개해야 하는지 등의 사소하지만 중요한 갈등들과 이로 하여금 밤길 안전 문제가 와닿아 아직 당도하지 아니한 미래 속 아이들의 아이들의 어른들의 어른들의 밤길을 서성이는 또 다른 나를 갖게 되어 혈압상승중인 나의 2025년 12월은 우유부단으로 가뭇없기만 하다.
ⓒ정안나 수필가
좀 더 문학적이고 흰 눈처럼 포근한 겨울감성이 그대로 담겨 더욱 친말감이 느껴지는 20호이다. 이를테면 작품성의 완성도가 높은 버전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더 두터워지고 더 맑아지고 깨끗해진 종합문예지 「청목」문학고을선집 제20호, 1년에 4회 간행되는 계간지로서 만5년이 되어 신뢰가 쌓이며 세상에서도 제대로 인정받기에 수월해진 것이다. 同문예지로 등단 문인들의 사회적 역할에 책임의식이 가중되어 간다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지켜온 던 것들을, 영원히 잘 지켜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