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nnaBanana Mar 03. 2019

미국인들은 왜 '곤도 마리에'를 좋아하지?

그녀의 정리 철학이 말해주는 현대 우리네들의 '라이프스타일'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고백부터 하나 하자. 나는 정리정돈을 잘 하거나 혹은 깨끗한 사람이 아니다. 심지어 청소에 대한 큰(?) 거부감까지 있다. '청소는 의미없는 시간낭비이다'라는 과격한 나름의 철학이 있었던 적도 있다. 청소해도해도 또 금방 더러워지는데다가, 또 청소할 시간에 할 수 있는 소위 더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을 생각하면 도저히 청소에 손이 가지를 않는다. 


반복행위를 통해 도를 닦으려는 심산이 아니라면, 청소가 도대체 무슨 의미야? 


그런 내가 정리정돈에 심취하게 만든 사람이 있으니, 그게 바로 곤도 마리에(Marie Kondo)이다. 나뿐만이 아니다. 세계 모두가 그녀의 정리 철학에 빠져있다. 요새는 특히 미국인들이 그녀에게 반한듯 하다. 그녀와 그녀의 정리 방식은 넷플릭스에서 정리 컨설팅 쇼가 제작되면서 미국 전체에 빠르게 퍼지고 있다.


내가 그녀를 알게 된 것도 미국인을 통해서였다. 한 미국인 친구의 추천을 받아 넷플릭스에서 그녀의 다큐 'Tidying Up'을 보게 되었는데 그게 바로 그녀에 대해 깊게 알게 된 첫 계기였다. 그 친구는 또 그 친구 회사에서 곤도 마리에 붐이 일어 알게 되었단다. 회사 동료들 모두가 곤도 마리에에 열광하고, 그녀의 방식에 따라 회사비품 정리를 하고 있다고. 덕분에 회사가 더 정리되고 깔끔해졌다고 흐뭇해하며 내게 그 쇼를 추천했다. 


궁금해졌다. 고민했다. 나도, 미국인들도 그녀의 정리 철학에 반하게 된 이유가 뭘까? 그저 정리라는 트랜드가 그전 트랜드처럼 다시 유행할 시기가 된걸까? 차곡차곡 정리되어 가는 데서 오는 희열 때문일까? 혹은 그 희열을 넘어서서 존재하는, 모두를 설득하는 연결고리가 있는걸까? 나는 그녀의 정리방식 밑에 깔려있는 그 철학과 현시대 우리네 삶의 연결고리를 찾아보기로 했다.

물론 최근의 일은 아닐지 모른다. 그녀에 대해 알게된 것은 2010년부터였다. 그녀는 이미 밀리언셀러에, 2015년에 이미 타임지 세계 100인에 선정된 유명인이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지금 이 시기에, 그것도 자본주의와 소비의 대명사인 미국(혹은 한국)에서, 다시 한번 유명세를 타게되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곤도 마리에의 넷플릭스 쇼 'Tidying Up'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그리고 곧, 나는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해답은 '라이프스타일'이라고 명명한 우리네들의 삶의 방식에 있었다. 


물욕없는 세계의 라이프스타일

정리 얘기를 하다가 왠 물욕과 라이프스타일? 이라고 한다면 미안하다. 잠시 숨을 돌리고 '물욕없는 세계'와 '라이프스타일'에 대해 얘기해보자. 


'물욕없는 세계'는 사실 책 이름이다. 이 책에서는 소비와 물욕의 행복이 깨어진 현대 사회를 다룬다. 


무슨 말이냐고? 꽤 최근까지 우리는 물건을 사며 행복을 느꼈던 시대를 길게 살아왔다. 갖고 싶었던 것을 사면, 행복했다. 즉, '소비=행복'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명품, 차, 집과 같은 것들을 소유하고 싶어했고, 또 우리가 무엇을 사는지가 사회적인 지위와 연결되어, 우리의 소비로 행복수준이 결정되곤 했다. 광고의 원리, 자본주의의 원리를 언뜻이나마 생각해보았다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자본주의는 소비를 부추기기 위해 소비와 행복을 연결시켰다. 쉽게 말해, 자본주의는 코카콜라를 사서 마시면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고, 또 샤넬 가방을 가지면 셀렙처럼 반짝반짝한 삶을 살 수 있다고 속삭였다.

코카콜라를 마시면 마치 광고 주인공들처럼 즐겁고, 쿨해보일 수 있다고 암시하는 광고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이제 물욕마저 유통기한이 다하였다며, 현대인들은 '라이프스타일'이라 명명된 삶의 방식을 욕망하고 소비한다고 말한다. 이제, 물건을 소유함으로서의 행복은 끝이 나고, 라이프스타일을 소비하며 행복을 느끼는 시대가 왔다는 것이다.


넷플릭스: DVD는 가라! 영상도 이젠 구독(subscribe)으로 라이프스타일을 채운다

밀레니얼 세대라면 이미 느끼고 있겠지만, 우리는 이미 '라이프스타일'식의 소비에 한참 접어들었다. 앨범을 사기보단 뮤직 스트리밍 서비스를 정기구독하고, 비싼 명품을 사기보단 무인양품에서 산 가방을 들고 차라리 여행을 훌쩍 떠난다. 서울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제주에 내려가는 이효리식의 털털한 '라이프스타일'이나, 하고 싶은 취미를 배우고 훌쩍 여행을 떠나며 현재를 즐기는 나혼자 산다식의 '라이프스타일' 처럼. 굳이 명품이 쌓인 화려한 스타만이 워너비가 되는 시기는 아닌 게 분명하다.


제주 한달 살기, 발리 혼자 여행, 치앙마이 디지털 노마드, 모두 이런 라이프 스타일의 한 가락이라고 생각한다

오늘처럼 물건이 넘쳐나는 시대에는, 소유의 얄팍한 상술이 더 쉽게 드러나고 만다. 그러니 소비와 행복의 연결고리가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나 쉽게 알게되는 게 아닐까? 굳이 명품이 아니라도 질좋고 비교적 저렴한, 내 취향에 맞는 물건을 언제든 쉽게 구매할 수 있다. 그렇게 살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지다보니, 우린 이제 물건 과잉의 시대에 도달했다. 그럴만도 하다. 잠깐의 행복을 위해 사들인 물건들이 많은 이들의 집에 쌓이기만 하고 있으니. 


정말이지 물건이 너무 많은 시대다. 추측하건대, 이 시대의 사람들은 그전 인간 문명을 통틀어서 가장 많은 물건을 소유하고 또 수명이 다하기도 전에 버리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래서 정리에 열광한다는 거야?

음,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물론, 우리는 이제 물건들을 버리고 싶어한다. 그리고 버리는 방법을 배우고 싶어한다. 그래서일까. 몇년 전에는 미니멀 라이프가 유행했었다. 명쾌하게 버리는 방법을 알려주니까.

출처: 한국일보 http://www.hankookilbo.com/News/Read/201603230427806232
미니멀 라이프: 미니멀리즘 라이프 스타일이라고 하는 단순한 생활 방식. 자발적으로 불필요한 물건이나 일과 등을 줄여 본인이 가진 것에 만족하는 게 특징. 물건을 적게 소유하면서 생활이 단순해지고 이후 마음과 생각이 정리되면서 오히려 삶이 더 풍요로워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활 방식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미니멀리스트(minimalist) 라고 한다. (출처 - 나무위키)

물건을 최소한으로 남기고 비우는 데에 초점을 맞춘 이 미니멀 라이프는 물건에 회의감이 온 우리의 갈등을 조금 해결해주기도 했던 것 같다. 깔끔하게 최소한의 것들만 남은 집들을 보고 있으면 시원한 기분이 드니까. 물질 과잉으로 피로를 느꼈던 현대인들에게는 대안적인 삶의 방식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 미니멀 라이프 책을 읽은 친구와 재밌는 대화를 했다. 이 친구는 최근에 나에게 미니멀 라이프를 전도하던 친구였는데, 갑자기 정반대의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다. 한창 물건을 다 갖다 버리던 그 친구가, 갑자기 이제 미니멀 라이프가 의미없다고 선언한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솔직히 설득되더라. 미니멀 라이프! 옷이고 뭐고 집은 좁고 쓰는 건 많이 없으니까. 싹- 다 버리고 정리하고 싶었어. 그래서, 책에서 알려준대로 하나하나 버렸거든? 저자가 옷은 잘 입는 10벌만 남기라고 해서 딱 열벌만 남겼어. 그렇게 입어도 아무도 신경 안쓰고 모른다길래. 그리고 아껴둔 책들도 몇년동안 읽지 않은 것들은 다 버렸지! 근데 그렇게 하나하나 다 버리다보니, 어딘가 모르게 너무 허무한거야. 가진 것 모두 다 버려야 할 것 같으니까... 내가 좋아했던 것들도 필요가 없으면 버리다보니 나도 같이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어. 결정타는 바로 딱 이부분이야. 아니, 무슨 졸업앨범이랑 모아놓은 친구들 편지랑 선물까지 버리라더니까? 졸업앨범 보지도 않고, 선물 그거 하나 버린다고 기분상할 친구라면 의미없대. (웃음) 승려도 아니고... 내가 다 지워지는 느낌? 그쯤되니 그 책이 어이가 없는 거.  그래서 포기했어. 아니, 다 버리고 생존에 필요한 것만 딱 남기면 삶이 무슨 낙이야?" 


혜민 스님처럼 절에 들어가서 무소유 깨달음을 얻을 게 아니라면...

친구의 감상평은 많은 걸 말해준다. 미니멀 라이프에 우리는 동요한다. 우리는 물질 과잉에 피로하고, 또 과도하게 욕심부려 쌓은 많은 것들을 정리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다고 꼭 실용적으로 필요한 것만 남기고 싶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우리가 좋아하는 물건과 관계를 통하여 행복을 실현한다. 내가 애정하는 물건들이 우리의 삶, 라이프 스타일에 대해 말해주기 때문이다. 


곤도 마리에가 말하는 Sparkling Joy의 미학

자, 이제 곤도 마리에의 방식을 보자. 곤도 마리에의 정리 방법은 꽤나 간단하다. 먼저 모든 옷을 옷장에서 끄집어내어 다 함께 하나의 더미로 쌓아놓도록 한다. 산처럼 쌓인 옷들을 보며, 그녀에게 집정리 컨설팅을 받는 의뢰인들은 고백한다. 


"(경악) 옷이 많은 줄은 알았지만 이정도로 많을 줄은 몰랐어요!" 

출처: https://hwga.com/tidying-up-our-take-on-the-life-changing-magic-of-marie-kondo/

이 과정은 의뢰인으로 하여금 물질 과잉의 피로를 시각적으로 실감하게끔 하는 단계이다. 예전에 사서 그저 쌓아두기만 한 옷부터, 있는줄도 몰랐던 옷까지 내가 하루에 하나씩만 번갈아 입어도 6개월은 입겠다 싶은. 여기까지는 미니멀 라이프와 궤적을 같이 한다. 우리가 그만큼의 물질이 필요하지도 않고, 또 사용하고 있지도 않다는 것을 느끼게 하니까.


바로 그 다음이 바로 곤도 마리에가 포착해낸, 우리네 라이프 스타일에 관한 재미난 점이다. 곤도 마리에는 쌓인 옷들 하나하나를 손으로 안아 sparkling joy(설레임)이 느껴지는지 알아보라고 한다. 만약 sparkling joy가 느껴진다면 버리지 않고, 느껴지지 않는다면 '이제까지 고마웠어'라고 말하며 버린다. 그게 곤도 마리에의 정리 방법의 핵심이다. 물건과 나의 관계, 즉 sparkling joy, 설레임을 느끼는 것. 


설레임을 느끼는 관계라니 무엇이 떠오르는가? 연애. 내게는 연애가 떠올랐다. 

응 이거 말고.

이후에도 곤도 마리에가 물건을 버릴지 말지 구분하는 방법을 알려줄 때 묘사하는 방식은 흡사 헤어질지 말지 고민하는 사람에게 해주는 연애 상담 같이 들린다. 아래 문장에서 물건은 나의 현/전 애인 이름으로 바꿔도 별 위화감이 없다. 그러니까, 그녀는 물건과 우리의 연결성이 더이상 소유가 아니라 관계적이라는 걸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cf. 연애가 아직도 소유의 개념인 사람들은 정신차리시고요.)


곤도 마리에: "물건과 미래에도 함께 하고 싶은지, 그 물건과 미래가 그려지는지 상상해보세요!"

곤도 마리에가 이런 통찰을 할 수 있었던 건 우연만은 아니다. 그녀는 미니멀 라이프의 끝을 달려본 적는 사람이다. 내 친구가 모든 것을 버리면서 회의감을 느꼈던 바로 그 순간을 그녀도 경험한 적이 있다고 한다. 어느 책에선가 그녀는 자신이 어려서부터 정리정돈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고 밝혔다. 버리는 것에 쾌감을 느끼고 착착착 정리가 될 때 행복해하곤 했다고. 그런데 항상 "이게 필요한가? 버려야 하는 것인가?" 라는 질문을 하다보니, 어느 날인가부터 버리는 것에 강박을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방 안에 모-든 것이 버려야 하는 것으로만 보였다고. 그 때부터, 정리가 고통스럽고 힘들어졌다고 고백했다. 그 때부터, 그녀는 무엇이 도움이 되는 정리 방식인가를 고민했다. 그리고 버리는 것의 기준은 실용성에서 설레임으로 바뀌었다.


물건과 나의 관계로 보는 라이프스타일

미니멀 라이프의 버릴 물건 구분 방식이 '실용적으로 필요한가'에 있었다면, 곤도 마리에의 버릴 물건 구분 방식은 '물건과 나의 관계가 유효한가'에 있다. 아직도 그 물건을 보면 설레이고, 또 그 물건과 나의 미래가 그려지는가? 여전히 그 물건과 내가 잘 맞다고 생각하는가? 


곤도 마리에는 더이상 우리가 물건을 필요해서 사지 않으며, 좋아서 혹은 설레여서 산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는 듯하다. 물건을 소유하여 행복을 느끼기보단, 물건과의 관계를 통해서 나의 라이프 스타일을 실현하는 것이 현시대의 행복이라는 점 또한. 현시대의 진정한 워너비는 구찌나 롤렉스를 과시하는 세련된 사람들보단, 예쁜 색감으로 깔끔하게 차려입고 핸드드립 커피를 좋아하는 힙스터이지 않은가.

라이프스타일의 대명사 킨포크 매거진. 라이프스타일을 즐기는 힙스터의 동네 포틀랜드에서 왔으니 말 다 했다.

나 역시 라이프스타일 소비자이다. 굳이 집 방구석에 있어도 될 것을, 노트북을 들고 근처 작은 카페로 향해 호주의 유명한 로스터리 듁스 원두로 브루잉한 커피를 마신다. 카페에서는 주인분이 선정한 앨범이 레코드로 플레이된다. 고가의 명품은 없지만 질 좋고 입소문난 로컬 브랜드에서 옷과 가방을 사는 걸 좋아한다. 그 외에도 비누부터 샴푸 등 다른 부분에 있어서도 두루두루 내게 맞는 건강하고 질좋은 제품을 자주 눈여겨본다. 운동하고 명상하며 삶의 호흡을 찾는 것도 생활의 한 부분이다.

그김에 깨알 홍보: 최애 카페 parched seoul - https://www.instagram.com/parched_seoul/

그래서, 곤도 마리에의 방식으로 정리를 시작했을 때 나는 나에게 맞는 방식으로 물건들과 작별을 고했다. 남들보다 더 많았던 운동복과 옷들은 버리지 않기로 했고, 그대신 별로 좋아하지 않는 화장품과 읽지 않는 이론서를 쉽게 비워냈다. 동시에, 실용적이진 않을지 몰라도, 1년에 한번 들여다볼까 말까인 나의 단상 노트들과는 미래를 함께하기로 했다. 나에게 설레임과 행복을 준다면, 또 미래에 내가 만지작거릴 게 분명히 그려지니까.


곤도 마리에는 내가 무엇을 더 좋아하고 무엇이 내 라이프스타일을 유지하는 데에 그닥 쓸모없는지를 sparkling joy를 통해 판단하게 해준다. 미니멀 라이프 관련 책에서 옷은 10벌만 남기라던 한 저자의 무겁고도 가벼운 말 없이도 내 주변과 삶을 정리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미래를 함께하고픈, 설레임을 간직한' 물건들을 골라낸 나는, 내게만 유효할 나만의 물건들의 소중함과, 그 가치를 깊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나 이외에도 그녀에게 감동한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sparkling joy is real! (설레임, 그거 진짜 느껴지는 거였어!)" 사람들에게 그녀의 정리 방식이 진정으로 와닿았던 이유는 그 방식이 현시대의 우리네의 삶의 방식을 관통하는 힘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물건과의 관계를 깊게 고민하고 나의 라이프 스타일에 맞는 유효한 아이들만 골라내는 방식이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통찰하게 해주니까. 


P.S. 그 외에도 그녀만의 물건 통제 시스템에 대해서 얘기해보고 싶지만, 그건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하자. 이번편 재밌게 읽은 사람 많으면 그 때 써야지! 

작가의 이전글 2019년을 맞은 독백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