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가을, 알록달록 색과 흙내음이 분주하다

1_제주살이 5년 차: 나를 찾는 스케치

by JUMI



“색은 가끔, 사람의 삶을 닮는다 “






작품 : pen & watercolour. Copyright 2025 jumi hwang. all right reserved.



10월의 제주 밭은 향과 색으로 가득 차 있다.

흙 위에 작은 마늘 모종이 줄지어 심어지고, 바람이 불면 그 위로 퍼지는 진한 밭냄새가 코끝을 스친다.

허리를 굽혀 모종을 심는 할머니들의 손끝에서 세월의 힘과 생의 리듬이 느껴진다.


밭 사이사이, 할머니들의 알록달록 모자가 빛난다.

빨강, 노랑, 파랑, 초록… 각각 다른 색이 서로 어울려 밭 위 작은 점처럼 흩어져 있다.

모자 끝에서 드러난 흰 머리카락은 세월을 말해주지만, 모자의 화려함 덕에 얼굴은 더 생기 있다.

할머니들은 앉을 때 작은 엉덩이 방석을 깔고, 조심스럽게 흙을 만지며 모종을 심는다.

나는 그 디테일의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럽다.


자전거를 한쪽에 세워두고 난 퀵 스케치로 이 모습들을 종이에 담는다.

바람이 스케치북 위의 펜 끝을 흔들 때, 나의 마음도 함께 흔들린다.

도시에서의 조급함과 계획, 결과에 대한 불안이 여기에선 무용해진다.


모종을 심는 느림 속에서, 나는 내 안의 갈등과 마주한다.

빨리 그려야 한다는 마음, 완벽해야 한다는 부담, 하지만 현실은 바람과 흙과 사람과 함께 천천히 움직인다.


스케치하다 고개를 들면, 난 빙그레 환한 웃음을 짓는다.

할머니들의 손과 모자, 깔고 앉은 엉덩이 방석의 움직임들이 너무나 귀여운 모습이다.

그리고 거기에 흙과 바람이 한 장의 장면으로 살아 움직인다.


나는 내 안의 마음을 바라본다.

나의 불안과 기대, 서두름과 느림, 모든 감정이 섞여 그림 속에 스며든다.


10월, 제주는 ‘심는 달’이다.

마늘과 양파 모종처럼, 오늘 밭에 묻은 작은 생명들이 자라듯,

나는 스케치 속에서 내 하루와 마음을 묻는다.


그리고 문득,


이 광경들을 스케치하는 나는 지금 여기서 어떤 모종을 심고 있는가!


아니, 무엇을 심고 싶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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