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_제주살이 5년 차: 나를 찾는 스케치
“연필선 하나에도, 마음의 온도가 스민다.”
이른 주말 아침,
나는 살며시 거실로 나와 스케치를 다듬는다.
곶자왈 근처 우리 집은 여름이면 습기와의 전쟁이 벌어진다.
제주의 습한 공기가 창문 틈으로 스며들며, 몸에 달라붙는 듯 느껴진다.
내가 입은 리넨 슬립은 나를 이 습기로부터 약간의 자유를 준다.
속이 거의 다 비칠 만큼 가볍고 통풍이 잘 되는 소재라, 습기의 답답함 속에서도 시원하게 느껴진다.
바람이 스치는 순간마다 섬세한 천이 살에 닿아 산뜻한 감촉을 남기고,
습한 공기 속에서도 상쾌한 아침의 기운이 함께 느껴진다.
남편은 오늘 직장이 없는 주말이라 평소보다 한층 여유롭다.
인기척이 거의 없는 그는 조용히 거실로 나와 에스프레소를 내릴 준비를 하고 있다.
천천히 하루를 열 준비를 하는 그의 모습이 공간과 완벽히 어우러진다.
나는 바닥에 앉아 낮은 테이블 위에서 스케치를 이어간다.
습기가 느껴지는 공기 속에서, 리넨 슬립과 피부의 감촉이 조화를 이룬다.
한참이 지났나 보다.
에스프레소 향이 진동을 한다. 누군가가 다가오는 느낌. 남편이 내게 스케치를 내민다.
나는 “Is this me? ” (이게 나야? ).
남편은 어느새 나를 스케치했던 것이다,
나는 그림을 바라본다. 아니, 남편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
자연스러운 흐름의 슬립 속으로 비치는 살, 집중하고 있는 나의 모습.
습기 속에서도 살아있는 선과 윤곽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나는 “I like this. You drew it really well.” (나는 정말 맘에 들어 , 잘했어).
평소 잘하지도 않는 칭찬을 하며 조용히 미소 짓는다.
그냥 슥슥 그린 완성되지 않은 남편의 모닝 스케치이지만 난 정말 맘에 든다.
난 남편에게 컬러도 하지 말고 더 다듬 지도 말고 이 상태로 두라고 부탁한다.
자연스레 풍겨 나오는 나의 그 모습을 그린 이 스케치.
미완성인 채, 나를 바라보는 나.
더 반듯한 선이 완성되는 것이 아마 싫은가 보다.
아마도 컬러로 입혀진 내가 변화되는 게 싫은가 보다.
스케치 속에서 나는,
곶자왈의 짙고 깊은 습기의 향과 축축함을 느낀다.
달라붙는 습기의 감각 속에서도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고, 일상의 작은 순간을 담는다.
오늘도 우리는 그 습함의 불평 없이 이렇게 주말 하루를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