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_제주살이 5년 차: 나를 찾는 스케치
“단순함과 색채가 만날 때, 이야기는 비로소 완성된다.”
제주에는 1,600여 개의 용천수가 있다.
깊은 땅속을 흐르던 물이 바다와 맞닿는 이 섬의 지질을 뚫고 솟아오른 것이다.
예로부터, 마을의 식수와 삶을 지탱해 준 귀한 생명수였고,
지금도 제주 사람들의 기억과 생활 속에 뿌리내려 있다.
우리가 참가한 ‘섬, 생명의 용천수’라는 프로그램은
바로 이 용천수를 찾아다니며 그 의미를 배우고, 그림으로 남기는 여정이었다.
10여 명이 함께 모여 걷고, 멈추고, 그리는 과정 속에서 나는 종이에 펜과 수채화로,
남편은 아이폰 화면 위에 손가락으로 스케치를 남겼다.
대부분 제주 사람들이었지만, 남편은 영국인임에도 성실히 참여했다.
그 모습은 참가자들에게 호기심과 따뜻한 시선을 동시에 불러왔다.
낯선 이로서 더욱 다가가려는 그의 태도는 오히려 나에게도 환영받는 공기를 만들어주었다.
무더운 여름날,
차가운 용천수를 손에 적시며 그림을 그리던 그 순간, 나는 제주를 조금은 이해한 듯했다.
그러나 끝내 남은 감정이 있다.
사람들과 웃고 이야기를 나눴지만, 여전히 나는 그 안에서 완전히 녹아들지 못했다.
깊은 샘물에 발끝만 담근 듯한 어색함.
그럼에도 나는 안다.
언젠가 이 섬이 내 마음속에서도 자유롭게 흐를 것이라는 것을.
오늘 나는 한 발자국 더 제주를 알고 이해하기 위해 다가섰음에 만족을 한다.
스케치를 덮으며, 다음의 그 기다림을 조용히 품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