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_제주살이 5년 차: 나를 찾는 스케치
"완성되지 않은 선에서, 가장 진짜의 순간이 드러난다.”
오늘도 어김없이 일요일 아침이 왔다.
우리는 집 근처 탄산온천에 다녀온 뒤 사계의 카페로 향한다.
창가에 앉으면 큰 창 앞으로 형제섬이 한눈에 들어온다.
늘 그렇듯 피자 샐러드, 그리고 신선한 녹즙을 주문한다.
음식이 나오기 전, 나는 창밖으로 보이는 형제섬을 멍하니 바라보는 것을 즐긴다.
어쩔 땐 간단히 형제섬을 그리기도 한다.
남편은 노트북을 펴서 다음 주 업무를 점검한다.
우리의 주말은 언제나 이런 식이다. 각자의 방식으로 고요히 집중하면서도, 함께 있는 시간.
드디어 음료와 샐러드가 나온다. “이건 언제 먹어도 맛있어.”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한 입 베어 물고, 남편은 무심한 듯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그의 눈은 여전히 화면에 머물러 있다.
올해 직장에서 막중한 업무를 맡았는데 일이 많은가 보다. 안쓰러울 때가 많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 나는 가방에서 스케치북을 꺼낸다.
사실 나는 남편을 자주 그리지 않는다.
아주 특별한 감정을 느낄 때만, 그 순간의 분위기를 담고 싶을 때만 그린다.
그런데 오늘이 바로 그런 느낌이 오는 날이다.
고개를 살짝 숙이고, 노트북에 손을 올린 채 집중하는 그의 모습.
안경을 살짝 걸친 모습 안으로 그의 속눈썹이 유난히도 길게 느껴진다.
내 남편이지만 참 잘 생겼다.
아버님의 영국인 피와 어머님의 이탈리아 피가 섞여 적당한 중간의 모습을 지닌 그.
그의 모습은 순수하고 사랑스러운 모든 것이 담겨 있다.
그리고 성실함, 고요함, 그리고 무심한 듯 나를 감싸는 따뜻함.
난 슥슥 퀵 스케치로 남편을 그린다.
빨리 그려내야 하는 퀵 스케치는 남편의 움직이는 모습까지도 감수해야 한다,
난 남편이 내가 그리고 있음을 인식하지 못하게.. 빠르게 그려낸다.
펜이 종이를 스치는 동안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그가 나를 스케치할 때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그 무어라 표현하지 못하는 잔잔한 감정. 평화로움. 감사함.
나를 바라보며, 나의 집중하는 손끝과 표정을 그릴 때…
그의 마음에도 이런 잔잔한 떨림이 스며들까.
그림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바라본다.
그려지는 나와, 나를 그리는 그.
오늘도 이렇게, 제주의 한편에서 서로의 공간을 공유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