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는 스케치
누군가의 모델이 된다는 건, 생각보다 기분 좋은 일이었다.
그가 조용히 나를 바라보며, 내가 스케치에 몰두하는 모습을 슬며시 스케치북에 담을 때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차분해졌다.
그의 그림 속 나는 늘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다.
어딘가 깊은 표정을 짓고 있는 나.
웃는 모습은 단 하나도 없었다.
집중하고 있는 얼굴이란, 본래 그런 것일까.
그림을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스쳤다.
처음엔 그 시간이 참 좋았다.
친구들이 각자의 취미를 즐긴다고 말할 때, 우리는 같은 공간에서 서로 다른 예술에 몰입했다.
그는 나를 그리고, 나는 세상을 스케치했다.
서로의 기척을 느끼며 각자의 세계에 잠기는 그 순간들이 소소하지만 분명한 행복처럼 다가왔다.
같은 관심 안에서 각자의 우주를 갖는 일.
그 조용한 공존이, 우리에게는 가장 따뜻한 언어였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그 시간이 유일하게 남편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순간이라는 점이다.
평소에는 사소한 이야기까지 다 꺼내는 사람인데, 그리는 동안만큼은 말없이 나를 바라본다.
나 역시 그림을 그릴 때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 조용한 집중의 시간이 우리에게는 함께 숨 쉬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그 시간이 점점 부담스러워졌다.
내가 자세를 조금만 바꿔도 그는 “Don’t move. Don’t move. (움직이지 마) ”라고 말한다.
그 순간,
자유롭던 내 몸과 마음이 갇힌 것 같았다.
나는 그 말을 견디지 못하고 연필을 내려놓았다.
남편은 당황했는지 말없이 자리를 떠났고, 나는 남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자리를 떠난 남편의 뒷모습이 스산하여 마음이 안 좋다. 그렇게까지 화를 낼 일은 아니었다. 조금만 참았더라면, 그냥 웃어넘겼더라면…
나는 아직도 남편을 위해 내 자유로운 감각을 제한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잠시 후 돌아온 남편에게 툭 하고 한마디 던진다.
“Could you take a picture first and then draw me?” (그리기 전에, 사진을 먼저 찍는 건 어때?)
그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 후로 그는 먼저 사진을 찍고 나를 그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가 원하는 건 단지 내 모습을 그리는 것이 아니다.
그는 그 순간의 나, 숨 쉬는 나, 그 순간 속에 담긴 감정과 공기까지 함께 그리고 싶은 것이다.
우리가 함께 나누는 이 시간, 어쩌면 나를 통해 그도 자신을 그리고 있는 건 아닐까?
그리고 나는, 그 시선을 통해 나 자신을 새롭게 만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는 나를 그리고,
나는 그 순간 속에서 내 안의 진짜 나를 찾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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