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버러 성(Bamburgh Castle)을 마주한 나

나는 여기 왜 있지? 무엇을 기대했지?

by JUMI

가을이 오는 길목.

흐리고 으스스한 영국 북부의 공기가 뺨을 스친다.

나는 오늘도 스케치를 놓치지 않기 위해 이른 아침 호텔을 나섰다. 바람이 세게 불지는 않지만, 묵직하게 스며든다.


밤 버러 성(Bamburgh Castle).

스코틀랜드 국경과 가까운 이곳은 오래된 돌의 냄새와 긴 세월의 흔적이 짙게 밴 장소다.

이틀째 머문 호텔에서는 내내 화창한 날씨를 만나지 못했지만, 오늘은 비만 오지 않길 바라며 나선다.

손은 시리고, 어깨는 움츠러들지만, 내 안의 무엇이 성을 향해 나를 밀어낸다.


스케치를 위해 자리를 잡는다.

앉을 곳조차 마땅치 않아 나는 그냥 서서 그리기로 했다.


오직 성과 나, 그리고 바람만이 존재하는 시간.


선을 긋는 손끝은 차갑지만, 마음은 점점 뜨거워진다.

펜 끝에서 성의 윤곽이 조금씩 살아날 때쯤, 멀리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해맑은 가족의 풍경이 나를 멈춰 세운다.

그들을 바라보다가 다시 성을 보는데, 이상하게도 성이 아까보다 더 가까워져 있었다.

웅장함이 나를 덮쳐온다. 숨을 멈추고 바라본다.

순간,

가슴 안쪽이 뻐근해진다.

마치 누군가가 내 마음을 조용히 두드린다.


"나는 왜 여기에 있지?" "무엇을 기대했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답은 금방 떠오르지 않는다.

그림을 그리면 내 안의 공허가 채워질 줄 알았다. 하지만 성 앞에 선 나는 공허했다.

단단한 돌로 지어진 이 성이, 오히려 내 속이 비어 있음을 선명하게 비춰줬다.


사실 나는 긴 독신 생활을 했다.

상실의 깊은 강을 건너고 나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혼자를 택했다.

그러다 내 곁에 다가온 한 사람. 좋은 조건을 갖췄고, 나를 아끼는 듯 보였다. 하지만 그의 곁에서는 촉촉한 감정이 생기지 않았다.

풍요롭지 않은 그 무언가.


그리고 오늘 이 성 앞에서,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공허한 풍요보다, 나는 풍요로운 감정을 택하고 싶었음을.

내 마음이 움직이는 선택, 내 감정을 속이지 않는 선택.


이 성은 나에게 속삭이며 물었다.


"지금, 너는 행복하니? 감정을 숨기지 말고, 스스로에게 정직해야 해."


이 마을의 해안가는 너무나 아름다워서 죽기 전에 꼭 와봐야 할 곳이라고 한다.

언젠가 난 이곳을 사랑하는 사람과 다시 오고 싶다.

그때는 공허하지 않은 행복이 가득한 스케치를 할 예정이다. 지금보다 더 따뜻한 감정으로, 더 단단한 선으로 이 성을 그리고 싶다.

이 스케치엔 아직도 그날의 바람, 그날의 햇살, 그리고 내 마음이 온전히


sketch : Pen and watercolor . copyright 2025 Jumi Hwang All right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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