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촌 골목 끝에서 나를 만나다.

나는 여기서 뭘 찾고자 하는 걸까!

by JUMI

서빙고역에 내린다.

가을이 성큼 다가와 찬 공기가 몸속 깊이 스며든다. 나도 모르게 옷깃을 여민다. 걸어갈까?

아니면 마을버스를 탈까?

오늘은 해방촌에 자리 잡은 오래된 시장, 신흥시장으로 향한다. 예전엔 친구들과 함께 웃고 떠들며 스케치하던 곳이지만, 오늘은 혼자 가고 싶었다.

내 눈으로, 내 호흡으로 이 골목을 다시 만나보고 싶었다.

마을버스를 타면 편하겠지만, 나는 걷기로 했다. 오르막길이 생각보다 가파르다. 예전엔 함께 얘기 나누며 올라가서 몰랐던 경사다. 숨이 차오르는 그 리듬이 이상하게 좋다. 천천히 골목을 따라 걷는다. 낡은 벽, 오래된 집, 작은 카페와 식당이 옆을 스친다.

노란색으로 칠해진 어린이집 앞을 지날 때 아이들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손잡고 지나가는 연인들의 모습도 정겹다.

잠깐 숨을 고르며 고개를 드니, 멀리 서울타워가 보인다. 언제나 그 자리에 우뚝 선 모습. 남산타워에서 이름은 바뀌었지만, 그 자리는 그대로다. 그 묵묵함이 나를 편하게 맞아준다.

걷다 보니 어느새 신흥시장 입구다.

서울타워는 바로 머리 위에 있다. 남산 자락 아래, 해방촌. 이곳은 1950년대 피란민들이 터를 잡고 살아온 동네다. 신흥시장도 그 시절 생겨난 곳. 좁은 통로, 낮은 천장, 녹슨 간판, 오래된 식당이 여전히 그 온기를 품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시장이라기보다 작은 공간 안에 몇몇 할머니가 빨간 다라에 채소를 놓고 파는 풍경만 남아 있다. 조심스럽게 계단을 내려가 보니, 지난번보다 또 바뀌어 있다. 몇몇 카페가 새로 생겼고, 예전의 풍경은 점점 희미해진다.

하얀색 페인트, 큰 창을 낸 카페, 그 옆에서 풍기는 멸치 국물 냄새. 이 골목엔 과거와 현재, 시간이 겹쳐져 있다. 어디서 스케치를 할까? 한 바퀴 돌며 자리를 찾는다. 차가운 공기 때문에 실내가 끌리지만, 그리기 좋은 각도가 나오지 않는다. 결국 커피를 테이크아웃해, 오래된 작은 식당 앞에 자리를 잡는다. 마땅한 의자가 없어 매트를 깔고 시멘트 바닥에 앉는다.

몸 아래로 스며드는 차가움, 시린 손끝. 지나는 사람들의 발소리를 들으며 나는 묵묵히 선을 그린다. 문득 생각이 든다. 왜 따뜻한 카페 대신 이렇게 차가운 바닥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있을까?

나는 오래된 골목을 좋아한다.

낡고 허름한 것들에 깃든 시간의 흔적들. 사람이 오가며 남긴 삶의 조각들. 어쩌면 나는 그 과정을 즐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언젠가 사라질지도 모를 이 순간, 이 공간, 그리고 나. 스케치로 그 찰나를 붙잡고 싶다. 지금이 아니면 다시 볼 수 없을 것 같은 이 장면이, 나를 이곳으로 이끄는 걸까? 오래됨과 새로움이 공존하는 이 골목처럼,

나도 지금 익숙한 나와 새로워지고 싶은 나 사이 어디쯤을 걷고 있는 것 같다. 오늘의 스케치는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된다.

과거와 현재가 충돌하며 섞이는 이 길 위에서, 나의 경계가 조금씩 드러난다. 나를 찾는다는 건, 어느 하나를 고르는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내 안의 다양한 나를 있는 그대로 그려보는 것.

오늘도 나는 아직 다 찾지 못한 나를 품고,

다시 집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