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어디에 머물고 있는가!
빨간 등대는 늘 거기 있었다
매주 목요일은 우리 부부만의 ‘Fish Day’다.
이날 저녁은 어김없이 생선 요리를 먹기로 한 우리만의 약속 같은 날이다. 고등어구이, 모둠 생선구이, 때로는 매콤한 생선조림. 가끔 특별한 날엔 회를 먹기도 하지만, 회에는 늘 한라산 소주가 따라붙기 마련이라 자제하려고 한다. 우리는 와인을 더 좋아하고, 평일 저녁엔 무알코올을 지향한다는 나름의 원칙도 있다.
이런 메뉴가 있는 식당들은 대부분 ‘사계비치’ 근처에 모여 있다. 집에서 차로 10분이면 닿는 거리. 제주로 이사 오기 전까진 이곳의 이름조차 몰랐지만, 이제는 일상처럼 드나드는 공간이다. 사계비치는 해가 질 무렵 특히 아름답다. 관광객도 많고, 바닷바람도 좋다. 저녁을 마치고 나면 우리는 늘 그 근처를 산책한다. 남편은 바닷가에 정박해 있는 보트를 유심히 보는 걸 좋아하고, 나는 조용히 그 옆에서 걷거나, 가끔은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러던 오늘,
문득 내 눈에 강하게 들어온 것이 있었다.
항구 끝자락, 선명한 색감으로 우뚝 서 있는 빨간 등대.
“Was this lighthouse here (등대가 여기 있었어) ?”
나는 남편에게 물었고, 이어 다시 물었다.
“Was it red (빨간 색이었나)?”남편은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The lighthouse has always been here.
(이 등대는 항상 여기 있었어) .”
순간, 뭔가로부터 얻어맞은 느낌이 들었다.
4년을 수도 없이 지나친 이 길목에서, 나는 도대체 뭘 본 걸까. 왜 이제야 이 등대가 보이기 시작한 걸까. 바쁘게 살아서? 백수가 ?
그건 아니다. 제주에서의 삶은 오히려 이전보다 여유롭다. 그래서 더 이상하게 느껴졌다. 왜 이 익숙한 장소에서 이토록 강한 낯설음을 느끼는 걸까.
그때 문득, 마음 한 구석에서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아직 너는 이곳에 온전히 정착하지 못한 거야. 너가 스스로 알잖아. 너를 속이지 마’
생각해보니 나는 여전히 제주를 여행자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몸은 이 섬에 있지만, 마음은 떠돌고 있었던건 아닐까!.
낯선 것을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데에는 시간이 걸리고,
때로는 어떤 계기나 감정이 나를 붙들어 주지 않으면, 오래 머물러도 정착한 것이 아니다.
빨간 등대는 그 자리에 항상 있었다.
내가 외면했을 뿐이다. 아니, 눈을 두었어도 마음이 닿지 않았던 것이다. 이제서야 그것이 보이기 시작한 건, 아마도 내 마음 어딘가가 조금씩 움직이는 것일까!
나는 아이폰의 프리폼 앱을 열어 손가락으로 빠르게 등대를 퀵 스케치 했다.
이 낯선 익숙함, 이 순간의 감정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1~2분 만에 완성된 거친 선의 드로잉이었지만, 나에겐 꽤 의미 있는 기록이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 등대는 늘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고.
나의 눈이, 그리고 나의 마음이 진짜 제주를 바라볼 수 있게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