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who am i
오늘도 나는 종이에 숫자를 적으며 혼자 중얼거린다. 60, 70.80. 그다음은 뭔가!
중학교 때부터 난 종이에 숫자를 적기 시작했다. 나의 암호 놀이다.
이종환의‘별이 빛나는 밤’을 들으며 나는 종이에 숫자를 적고 또 적는다.
오늘도 도시락 2개를 싸 들고 저녁 자율학습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다.
귀가하면 교복을 벗어던진 채 내일 입을 교복을 만지작거린다.
“이놈의 교복! 정말 귀찮아”. 언제나 난 공부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흰 카라를 매일 다리는 것도 큰 일이다, 다행히 고등학교부터는 교복이 없어졌다.
나는 마지막 교복 세대였다.
나의 숫자 적기 행위는 이런 짜증을 고스란히 받아줬다. 묵묵하게. 친구처럼.
숫자 적기를 하고 난 후 나는 마치 사막의 오아시스를 만나듯 잠시 afl를 정리한다.
그리고 다시 반복한 나의 10대. 20.25.30.20.25.30. 이놈의 2를 언제나 넘기나.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가! 지루하다. 답답하다.
한참을 잊어버리고 살았던 어느 날 나는 다시 숫자를 적어본다.
40, 50, 60, 숫자의 앞자리가 바뀌었다. 40대 초반이었을까!
생각해 보니 20~30대는 뜨문뜨문 숫자를 적었던 거 같다. 가뭄에 콩 나듯이.
40이 넘으면서 본격적인 숫자 적기가 시작된다.
45, 46, 47, 48, 49, 50, 숫자도 더 구체화된다. 그리고 나는 갑자기 숫자 50에서 멈춘다.
나만의 비밀 숫자 50.
그 누구에게도 나의 50에 대한 숫자 비밀을 털어놓은 적이 없었다.
그리고 난 강하게 다짐한다. 이 숫자를 잊지 않으리. 숫자와 약속한다.
펜으로 끄적거린 종이를 휴지통에 던져 버린다.
내 나이 50이 되기 한해 전. 난 상사에게 퇴사를 밝힌다.
졸지에 난 많은 사람들로부터 진짜 배신자가 되었다. 수없이 쏟아지는 전화와 의문점.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이 신사업 조직을 만든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여기저기서 전화가 불이 난다. 상사와의 문제로 갑자기 퇴사를 결심하게 된 것이냐고 묻는다. 물론 그 이유가 나의 퇴사를 조금 앞당겨진 게 사실이었고, 나는 부인하지 않았다.
나는 오히려 감사했다. 나에게 그만둘 이유를 만들어줘서.
25년 동안 교육 시장에서 나는 굵직한 신사업 4개를 성공시켰다.
이제 내가 떠나도 될 만큼 사업은 잘 돌아가고 나한테도 떠날 타이밍이라 생각했다.
사실, 회사는 나 없어도 잘 돌아가는 것을 안다.
언제나 내가 없으면 안 될 것 같은 착각 속에 난 25년을 살아왔지만 그래도 그 착각이 나를 채찍질한 것임을 나는 잘 안다.
50이라고 적힌 이 숫자랑 나는 약속을 지켰다.
25년 커리어를 과감하게 던져버린 것이다. 그것은 다른 시작을 말한다.
그리고 6년이 지난 지금.
나는 매일 나에게 질문한다. ‘who am I’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가?’‘나의 방향성 이 길이 맞는가?’
무엇을 더 준비해야 하는가!.
지인들은 나에게 말한다. “여행도 다니고 스케치도 하고 얼마나 행복해.”
하지만 나는 아직 먼 길을 더 가야 함을 안다. 지치지 않아야 함을 안다.!
가끔은 길을 잃어버리고 헤매며 지친다.
가끔은 내가 어디에 있는지 확인하느라 에너지를 소모하고 지친다.
가끔은 내 방향성이 맞는지도 자문하느라 지친다.
그럴 때마다 나는 다시 종이에 숫자를 적는다.
60. 그리고 57.58.59.
지치지 말고 숫자를 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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