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납 마트료시카 이야기의 시작
1.
엄마는 내 방에 들어오면 정신이 없다며 항상 신경질을 낸다. "이거는 어디 있던 거야? 이건 쓰면 제자리에 갔다 놔...! 좀 정리 좀 해!" 나는 제 자리에 두고 방을 치운 것인데도 눈앞에 보이는 게 싫은지 계속 정리를 하라고 한다. 그렇다고 엄마방에 갔을 때 그다지 깨끗해 보이지도 않는다. 화장대에 올려진 스킨, 에센스, 아이크림... 책장에 꽂아둔 엄마가 좋아하는 일본 추리 소설, 에세이... 내방과 무슨 차이지?
2.
준영에 방에는 많은 미술 재료들이 있다. 그림을 그릴 때는 이 재료들이 모두 필요해서 꺼내 놓지만 가족들이 보기에는 이 방은 어지럽고 정신없는 방이다. 준영은 사용했던 붓과 물감을 정리하면서 이것을 정리할 수 있는 화구박스를 구매해야겠다는 생각 한다.
화구박스 안에 넣으니 지저분했던 것들이 그럭저럭 깔끔해 보이기 시작한다. 준영에게는 꼭 필요한 물건들이지만 그 물건들을 사용한 후에는 그 물건들은 방을 더럽히는 잡동사니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림을 그리는 것은 정말 재미있지만 그림을 그리고 난 후에 재료를 화구박스에 넣고 그것을 다시 빌트인 옷장에 넣는 정리의 행위를 반복하는 것이 준영은 지루하기만 하다.
3.
자취를 시작하고 가구들을 새로 사기 시작했다. 좁은 5평의 집에 침대, 책상, 옷장은 기본적으로 필요한데 이 많은 짐을 넣을 수 있을까 문제다. 침대 프레임은 매트리스 밑으로 수납이 가능한 가성비 있는 프레임을 구매하고 자리를 최소화시키는 슬라이딩 옷장을 구매했다. 책상은 문구류를 넣을 수 있는 작은 서랍이 붙어있다. 다이어리와 펜을 서랍장에 넣어 항상 책상을 깨끗하게 유지하고 싶었다. 침대, 책상, 옷장을 사도 물건들이 너 질러 있어서 이케아에 가서 수납 박스를 사 쌓아놨다. 물건을 모두 수납하니 제법 깨끗해졌다.
4.
유튜브에 [수납]이라고 치자마자 무수히 나오는 [수납 추천] [수납 정리] [수납 정리 노하우] [이케아 수납] [다이소 수납템] [수납 꿀팁]... 다영은 잠시 당황한다. '다들 나처럼 물건 넣을 곳이 없나? 다들 뭘 그렇게 수납하려는 거야.' 다영은 잠시 당황했지만 유튜브를 열심히 본다. 요즘 물건들을 정리하지 못해 꽤나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이다. 동영상을 보면서 흰색 스툴박스가 크기 별로 나오는 것이 영상마다 보인다. '저기에 크기별로 결국 넣으라는 거지' 가벼운 스틸 재질의 선반을 사고 그 위에 스툴 박스를 크기별로 넣어 놨다. 그 스툴 박스에는 여러 가지 물건들을 넣어놨다. 자주 사용하지만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파우치, 가위, 박스테이프, 충전기... 물건을 쓸 때는 그렇게 필요한데 방에 굴러다니면 그렇게 더러워 보일 수 없다.
5
대한민국 경기도... .... .... 5단지 509동, 509동 1501호, 1501호 내 방.
거대한 대한민국 사이에 우리는 계속되는 수납이 이루어진다. 대한민국에서 시작된, 아니? 지구에서 시작된.
작은 행성부터 시작된 이야기. 내 작은 방에는 침대, 책상, 옷장 두 개, 서랍장, 책장이 있다. 서랍장 안에는 플라스틱 통이 있고 그 안에는 파우치가 있다. 파우치 안에는 액세서리 박스가 있는데 그 안에는 반지가 들어있다. 이 마트료시카의 최종은 이 반지 아닐까. 행성에서 시작되어 내 방, 그리고 서랍장에서... 반지까지. 마트료시카처럼 크기의 순서에 따라 넣어진 이 과정들. 우리는 수납 마트료시카 속에 살 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