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비앙로즈 Jul 08. 2021

진퇴양난, 방광이 꽉 찼다는 걸 깨달았으나

차에서 내리기엔 이미 늦었고...

출처: hopon-hopoff.vn

가족들과 구정을 맞아 호찌민 시내 야간 투어 버스를 타러 갔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베트남도 한국처럼 구정을 쇠는 나라이고, 1년 중 구정 연휴가 가장 긴 연휴입니다. 하늘길이 막혀 있기 때문에 관광객도 없고, 현지인은 거의 고향으로 떠났을 시기이라 시내에 차가 별로 없고 공기가 깨끗해서 저희 가족에게는 지붕이 없는 차를 타기에 아주 좋은 기회였어요. 더군다나 아이들은 한동안 학교에 가지 못하고 홈러닝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분 전환을 할 필요도 있었죠.


버스를 타자마자 제가 상당히 곤란한 상황인 걸 깨달았습니다. 버스의 운행 시간은 한 시간. 제가 이런 상황에 처해 보았던 게 언제였던가요? 부끄러워 하지 말고 버스가 출발하기 전에 잠깐 기다려줄 수 있는지 물어보고 후딱 다녀와야 했어요. 아니, 애초에 버스를 타러 가기 전에 저녁 식사 먹은 돈가스가 너무 맛있다고 해서 맥주를 곁들이지는 말아야 했을까요. 전 좀 젊었을 적에는 영화관을 아주 많이 다녔습니다. 초보 영화 매니아 시절에는 영화 상영 시간 동안 이동 없이 무사히 감상을 마치고 나오는 방법을 몰랐어요. 카페인이 든 음료를 마시면 일반 음료보다 방광이 ᅥᆷ청난 수위로 빠르게 차오른다는 걸 머리로 알고는 있었어요. 그걸 이론적으로만 알고 실생활에 적용할 ᄌ 몰랐을 때는 제가 마신 음료의 양과 시간 조절이 안 돼서 영화 상영 중에도 화장실을 다녀와야만 했습니다. 영화 상영을 멈춰 달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인데 한 장면도 놓치고 싶지는 않고, 그야말로 진퇴양난이었습니다. 그러다 점점 일반 음료, 카페인 음료, 알코올 음료 등 음료의 종류별로 마실 때 방광이 차오르는 속도를 조절하는 방법을 터득했습니다. 둔한 편인건지 이런 것도 훈련을 해야 했네요. 대용량 커피를 원샷하고도 두어 시간 동안 화장실에 가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참으로 신기해 보입니다. 그런 분들과 함께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하던 중 제 방광의 수위가 한계점에 이를 때까지 참다가 결국 저 혼자 화장실에 뛰어갈 때, 사람이 이렇게 다를 수도 있는 게 신기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루는 여럿이 커피를 마시다가 모두가 저와 비슷하게 ‘방광이 작은 사람’인 걸 알게 되었는데 그게 저에게는 위로가 되었습니다. 위로가 된다는 말도 약간은 안타까웠던 것이, 방광의 용량을 늘리는 방법이란 건 애초에 없기에 그저 자조하듯 서로를 위로하며 농담하는 상황이 우스울 뿐이었어요.


가정주부로 오랜 기간을 살다 보니 화장실은 정해진 시간에 가야하는 곳이 아닌 걸로 제 몸이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여행길에 오르더라도 보통은 버스가 아닌 비행기를 타기에, 긴 시간 동안 화장실에 못 가고 억류되는 상ᄒ이 저에게 생겼던 건 아주 오래 전 일입니다. 너무 오래 전 일이라 잊고 살았네요. 돈가스가 너무 맛이 있어서 술을 마시며 먹고 싶었고, 야경을 감상할 때 약간의 술을 마신 상태면 더 즐거울 것 같은 단순한 생각을 했을 뿐입니다. 홈러닝에 구정 연휴까지 거의 2주 동안 가족들과 24시간 붙어 있다 보니 피곤에 절어서 판단력이 흐려진 상태였습니다. 상황 판단이 잘 안 되는 와중에 혹독하게 그 대가를 치렀습니다. 저희 가족들이 아름다운 시간을 즐기는 동안에.



차는 이미 출발했고, 저는 과연 어떻게 됐을까요?

중간에 내렸을까요, 아니면 결국 실수를 하고야 말았을까요?ㅎㅎㅎ


작가의 이전글 이름을 잃고 살아가는 사람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