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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비앙로즈 Jul 12. 2021

가짜 매미 소리가 불러일으킨 기억

호찌민시에는 매미가 없는데..

오감과 연결 지어진 기억은 오랫동안 남아 있다고들 하죠.


바람과 함께 제 코끝에 닿은 옛사랑이 좋아하던 향기는 저를 잠시 그 시절로 되돌려 주기도 하고, 따끔한 바늘 끝의 차가운 촉감은 어릴 적 과학 시간에 잘못 만진 압정 때문에 손에 피를 보았던 초등학교의 교실을 떠올리게 만들기도 합니다.


베트남 저희 집에는 매일 같은 시각이 되면 울기 시작하는 매미가 있습니다. 다른 날보다 특히 감성적인 어느 날, 눈을 감고 있으면 그 소리가 저를 과거의 시간으로 되돌아가게 해 줍니다.





저희 집 가짜 매미



그게 청소기 소리인 건 금방 깨닫게 되지만, 그 순간 제가 있는 장소는 할머니가 계시던 시골집으로 휘리릭 변신을 합니다. 유년에 제가 학교 여름 방학 기간 동안 늘 머물렀던 그곳으로요.



영감이 터지는 놀이터, 할머니 댁



찌는 듯한 더위 속에서 더욱더 맛있어지는 수박과 참외의 기가 막힐 정도의 달콤함,

아담하지만 저와 제 동생에게는 최고의 놀이 공간이었던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의 평상에서의 놀이 시간의 즐거움,

초록의 시원한 자연 속에서 땀을 다 식혀줄 것처럼 세찬 소리를 내며 돌아가던 선풍기의 청량함,

맘껏 뛰놀 수 있고, 구석구석 숨을 곳이 있었던 비밀의 집 같은 공간이었던 마당의 신비로움,

무럭무럭 자라는 작물들 사이로 미로 찾기를 하듯 누빌 수 있던 텃밭의 싱그러움...

모든 것이 그리움 속에 묻혀 있다가 매미 소리와 함께 제 머릿속에 현실처럼 생생하게 펼쳐집니다.


매미 소리는 그렇게 저에게 소중한 기억을 가져다줍니다.

 

어린 시절 저에게 주어진 그 공간과 그 시간이 그때는 소중한 줄 몰랐어요. 사람은 자신에게 주어져 있는 것에는 감사한 마음을 갖기 힘든가 봅니다.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기억이고 되돌아가고 싶은 시간처럼 제 속에 깊이 자리 잡았는지는 나이가 들어가며 하나씩 천천히 깨달아가고 있습니다.


한국에 갈 수가 없으니 진짜 매미 소리를 실제로 들어본 지는 벌써 2년이 넘었네요. 매미 환청을 듣는 그 순간 베트남에는 매미가 없다는 사실이 문득 머리를 스쳐 지나가지만, 제 속에는 소중한 날들의 아련한 기억과 추억이 방울방울 샘솟기 시작하고, 제가 다시 어린아이로 돌아간 듯한 착각 속에 빠져 멍하니 과거의 추억에 젖어 있게 됩니다.


유년의 기억은 누구에게나 소중합니다. 저에게 그런 소중한 기억을 가질 수 있도록 ‘자리를 깔아 주신’ 제 부모님은 어떤 생각으로 저희를 교육하며 살아오셨던 것일까요. 과연 저는 제 아이들에게 유년의 소중한 기억을 어떤 방식으로 남겨줄 수 있을까요. 오늘따라 한국에 계신 부모님이 무척이나 보고 싶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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