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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장훈 Sep 17. 2023

내가 사는 동네가 박살났다.

관평섬 이야기

내가 사는 동네는 참 좋다. 대도시 끝자락에 있어 번잡하지 않다. 차로 5분이면 과수원 꽃내음이 가득한 시골 마을에 닿는다. 저녁 식사 후 아내 손을 잡고 개천 따라 조성된 산책길을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걷노라면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산책길의 목적지는 현대프리미엄아울렛. 아울렛에 입점한 폴바셋 아이스크림을 맛보면 하루 분량의 스트레스가 사르르 녹는다. 자전거를 타고 나가면 금강으로 이어지고 대청호로도 연결된다. 장은 걸어서도 갈만한 롯데마트에서 해결한다. 책이 보고 싶을 땐 동네 가운데 위치한 도서관에 간다. 경부고속도로와 호남고속도로 분기점이 지척이라 전국 어디든 여행을 시도해 볼 만하다. 초등학교를 3개나 품고 있는 아파트 대단지이며 이곳이 저출산으로 신음하는 대한민국이 맞나 싶을 정도로 동네 어디에나 어린아이들의 해맑고 명랑한 웃음이 가득하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먼저 인사해 주고 서둘러 오는 이를 위해 기꺼이 ‘열림’ 버튼을 눌러주는 이웃들의 마음 씀씀이가 고맙다. 


동네 안에서 삶의 거의 모든 필요를 채울 수 있는 곳. 대전광역시에 위치한 이 동네를 대전 사람들은 관평섬이라 부른다. 




9월이 되면서 우리 동네를 슬픔이 가득 에워쌌다. 곳곳에 분노가 넘쳐났다. 초등학교에는 고인을 위로하는 근조화환, 관리자를 비난하는 근조화환, 대한민국 교육현실을 성토하는 근조화환이 빽빽이 서있다. 아이들의 웃음이 넘쳐났던 거리에는 계란 썩은 냄새가 진동한다. 갖은 욕설과 저주를 담은 메모지가 일부 상가를 뒤덮는다. 맞다. 언론의 중심이 된 대전 관평초가 있는 관평동이다.


그저 살기 편한 곳이라고만 여겼던 이 관평섬이 고인에게는 더 이상 도망칠 수 없는 고립된 공간이었다. 행여나 마주칠까 전전긍긍했을 불안감. 어디선가 노려보고 있을 것만 같은 두려움. 비슷한 헤어스타일만 봐도 화들짝 놀라고 유사한 목소리만 들어도 몸이 굳어졌을 거다. 그녀는 우리 동네가 줄 수 있는 그 어떤 혜택도 누리지 못하고 그렇게 스러져갔다.


부디 내가 사는 동네가 박살나는데서 끝났으면 좋겠다. 




교권 추락을 걱정하는, 교권 회복을 약속하는 정치인들이 내건 현수막이 허공에 나부낀다. 

서로를 존중하지 않고 서로에 대한 갑질을 서슴지 않는 이들에게서 어찌 서로를 존중하고 갑질을 근절할 법안과 행정을 기대하겠는가?


교권추락을 넘어 인간존중추락이다. 학교에서 교사의 멱살을 잡던 학생들은 당신의 부하 직원이 되어, 당신의 고객이 되어 당신 멱살을 잡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을 애지중지하며 키운 부모의 멱살도 잡겠지. 


이러다 동방싸가지국이 되겠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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