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수난 시대
바야흐로 교사 수난 시대다. 포털 메인 뉴스에는 공교육 현장에서 벌어진 비참한 소식이 연일 갱신된다. 어제는 해가 갈수록 떨어지는 교육대학의 경쟁률에 관한 뉴스도 보았다. 나조차 제자들에게 자신 있게 교육대학, 사범대학 진학을 추천하지 못한다. 줄어가는 학령인구 탓에 대학 졸업 후 교사되기가 어렵기 때문만은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교사로 품위 있게 살아간다는 게 여러모로 쉽지 않음을 몸소 체험하는 이유에서다.
교육 관련 뉴스의 댓글을 확인한다. 더욱 절망에 빠진다. 학교와 교사에 대한 적대감이 차고 넘친다. 이 모든 사달은 교사들이 자초했다는 거. 공부 잘하는 학생만 챙기는 학교, 기분 내키는 대로 학생을 패는 교사. 드라마, 영화 속에 등장하는 교사는 단골 악역이다. 학교는 차별이 난무하고 비겁하며 부도덕적인 공간으로 그려진다.
교사가 된 나 역시 학창 시절 만난 선생님들이 좋았던 건만은 아니다. 초등학교 6학년 담임 선생님은 교실에서 줄담배를 태우셨다. 어린 마음에도 한 학년이 17명밖에 안 되는 시골 초등학교라 우릴 무시하나 생각했다. 중학교 시절, 박사 학위까지 받고 대학 교수를 준비하시던 역사 선생님이 계셨다. 교무실에 가면 늘 두꺼운 책을 펴놓고 연구하시던. 한 번은 수업 시간에 역사 영화를 보여주셨는데 친한 친구 녀석이 실수로 리모컨을 잘못 눌러 빨리 재생되었다. 갑자기 이성을 잃으신 선생님은 비디오 케이스로 그 친구의 머리를 때렸다. 비디오 케이스가 깨질 정도로. 뭐 대단한 잘못이라고. 그 친구는 고아였다. 그래서 더 분했다. 왜 때리시냐고 따지지 못한 게 지금까지 한이다. 두고두고 그 선생님을 미워했다. 나중에 알아보니 지방 교육대학의 교수가 되었단다.
고등학교 진학 후 꼭 닮고 싶은 선생님을 만났다. 조회시간마다 학생들에게 해줄 좋은 이야기를 준비하셨던 선생님. 학생들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조회를 기다렸다. 자습 시간에는 학생들 못지않게 수업 준비를 위한 공부에 집중하셨다. 시험 결과에 낙망할 때면 아무 말 없이 어깨를 두드려 주셨던 선생님. 그 선생님을 만나고 처음으로 교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대학시절 함께 공부했던 동기들은 교육에 대한 선한 의지가 있었다. 돈보다는 교육이라는 가치를 더 중시했고 교육을 통해 학생들에게 희망을 주며 이 사회를 더욱 살만한 곳으로 만들려는 숭고한 뜻을 지녔다. 돈은 넉넉지 않게 벌어도 가오는 좀 지키며 살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학사모를 던졌다.
최근 친구 아버지께서 상을 당해 모처럼 대학 동기들이 모였다. 모두들 삭막해진 교육 현실에 걱정이 많았다. 컴퓨터를 잘하는 친구는 교사를 그만두고 개발자가 될까 고민 중이란다. 자녀가 있는 친구들은 교사 봉급으로 살아가는 게 너무 퍽퍽하다고 씁쓸해했다. 다들 한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 물정
몰라도 너무 몰랐다고
휴대폰만 켜면 세상 모든 지식을 알 수 있는 시대다. 동기부여도 유튜브 영상으로 가능하다. 학생들의 우상인 일타강사들이 상담도 해준다. 교사들이 설 자리는 점점 좁아져만 간다. 내가 존경했던 선생님처럼 나도 조회 때마다 좋은 이야기를 준비해 가지만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고개 끄덕이며 들어주는 학생은 해가 갈수록 줄어든다. 선행학습으로 무장한 학생들에게 학교에서의 수학 수업은 시시하기만 하다. 육아휴직 중인 나는 내년 3월에 복직해야 하는데 그 시간이 기다려지지 않는다. 돈은 처음부터 기대도 안 했고, 가오마저 깨져버렸다. 공교육 교사로서 자존감을 지키며 산다는 게 쉽지 않다.
그럼에도 세상 물정 모를 때 품던 숭고한 뜻을 아주 저버려서는 안 된다. 어쩔 수 없이 교육 현장을 온라인으로 대체한 코로나 시국에서 역설적으로 학교에서의 오프라인 교육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부모의 손길이 충분치 않은 학생은 온라인 학습 공간에서 헤맬 수밖에 없다. 학습만이 문제가 아니다. 학생들은 열띤 응원으로 하나가 되는 체육대회를 경험해 봐야 한다. 축제를 준비하며 미처 알지 못했던 재능을 발견하고, 무대 위에서의 짜릿한 긴장감도 맛봐야 하는 거다. 함께 과제를 수행하며 협력하는 방법을 배워야 하고, 나와 다른 환경에서 자란 친구와 서로를 맞춰가는 연습도 반드시 필요하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푹푹 찌는 무더위가 가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온다. 우리를 슬프게 하는, 절망하게 하는 답답한 뉴스는 이제 그만 보고 싶다. 교육 현장에도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길.
*배경 이미지: SBS '모범택시' 캡처